귀차니즘이 아니라, 번아웃

싫어서가 아니야

by 와이

침대에 누워 있었을 뿐인데, 세상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해야 할 일은 쌓였지만 손끝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은 늘 무겁고, 마음은 잠기듯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나를 게으르다 했고, 나도 그렇게 믿으려 했다

“미쳤다 나 요즘 너무 게으르다.” 그렇게 웃어넘기면서도, 사실은 웃는 게 너무 힘들었다.


예전엔 뭐든 트렌드를 빠르게 알고 있어야 했고, 뭐든 도전해야 살아있다고 느꼈다

‘지금 멈추면 뒤처질 거야.’ 그 말이 늘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래서 피곤해도 참고, 아파도 미뤄가며 버텼다.

남들이 ‘대단하다’고 말해줄 때마다, 그 말이 나를 지탱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말들은 내 몸을 조금씩 갉아먹던 칭찬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게 버거워졌다.

해야 할 일 앞에서 자꾸 한숨이 새어 나왔고, 단순한 문자 답장조차 미뤄졌다.

사람 만나는 게 귀찮고, 밥 먹는 것도 귀찮고, 이불 밖은 너무 차갑고,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다.

그래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통째로 흘려보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나를 다그쳤다.

“이건 귀차니즘이야. 정신 차려.” “제발 일어나서 하자 해야 돼!!!!!!”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억지로 일어나 보기도 했다.

머리는 해야 한다고 외치는데, 몸은 따를 생각이 없는지 몸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무리 자도 피곤했고, 아무리 쉬어도 회복되지 않았다.

그제야 느꼈다. 이건 단순히 게으른 게 아니라, 내가 고장 나고 있다는 걸.


어느 날 운전하다가 비친 찰나의 순간 나를 보게 되었는데, 눈 밑이 퀭했고, 표정엔 생기가 없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철렁했다.

‘이게 나였나?’ 예전에는 바쁘면서도 웃었고, 힘들어도 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버티고 있었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시간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그때서야 인정하게 됐다. 이건 귀차니즘이 아니라, 번아웃이었다.


게으름은 ‘하기 싫어서 멈추는 것’이라면, 번아웃은 ‘이제 더는 할 수 없어서 멈추는 것’이었다.

둘의 차이는 단 하나, 마음의 연료가 남아 있느냐 없느냐였다.

나는 이미 연료가 바닥난 상태였다.

불은 꺼졌는데, 그 앞에 여전히 서 있는 느낌.

차가운 재만 남은 곳에서 계속 불을 피우려던 내 모습이 이제야 선명하게 보였다.


번아웃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마음에 스며든다.

괜찮은 척하며 버티던 날들 사이로, 피로와 무기력이 서서히 파고든다.

그래서 더 알아차리기 어렵다.

언제부턴가 “괜찮아”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고, 웃음이 습관처럼 붙는다.

그 안에 진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억지로라도 괜찮아야 할 것 같아서.


사람들은 말한다. “그냥 쉬면 돼.”쉬는 걸로만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번아웃은 단순한 휴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쉬는 법을 잊은 사람에게 “쉬어”라는 말은 오히려 더 잔인하게 들릴 때가 있다 아무리 쉬어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머리는 여전히 일 생각을 하고, 가슴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쉬고 있는 내 모습이 더 초조하게 느껴지고,

‘나는 왜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지?’라는 자책이 따라온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다르게 쉬는 법을 배웠다.

‘해야 하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하고 싶은 일’을 아주 조심스럽게 찾아봤다.

다시 책을 펼쳐보기도 하고,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커피 향이 좋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그날은 일단 성공이었다.

세상에 대한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던 마음에, 조금씩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오는 날


예전 같으면 이런 나를 답답해했을 거다.

“너무 느려졌잖아.” 회복에는 속도가 필요 없다는 것, 조금 늦게 가도 괜찮다는 걸 중요한 건 다시 시작할 힘을 찾는 거니까.


이제는 나를 다그치지 않는다. 하기 싫은 날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괜찮아, 오늘은 그냥 이대로 있어도 돼.” 그렇게 말해준다.

누구에게나 멈춤이 필요한 시기가 있고, 그건 나약함이 아니라 회복의 신호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아직 완전히 나아진 건 아니다.

가끔은 여전히 무기력에 잠기고, 가끔은 예전처럼 나를 몰아세운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된통 앓고 나서 알게 되었다

“괜찮아, 지금은 멈춰도 돼.”


그리고 그 말이, 요즘의 나를 다시 살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게으름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멈춤이었다.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한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누워있어도,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이 생겼다면 , “괜찮아, 그건 게으른 게 아니야.”


뒹굴뒹굴 떼구르르르르... 하루이틀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쉬어봐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