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이 되어 :

그 어느 날의 기록

by 와이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듣고, 버스 안에서 무너진 어느 날의 기록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버스 창밖의 세상이 무심하게 흘러가던 그 순간, 내 귀에 흐르던 노래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그날은 첫 소절부터 울컥했던 걸까요?

약해빠진 마음에 큰 바위를 확 던지듯.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던 버스 좌석 위에서 나는 갑자기, 조용히,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코로나시대여서 마스크가 얼굴의 반을 덮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수도꼭지 열린 거 마냥 콸콸 쏟아졌고, 추잡스럽지만 코에서도 광광 흘렀습니다.

그 눈물은 꾹 참아온 고통과 두려움과 억울함의 집합체였던 거 같습니다

소리도 없이, 쾅— 하고 내 안의 무언가가 내려앉는 기분.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에 울지 말아요

.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


나의 사진 앞에서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은 멈춰요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세상에서 아무도 몰랐겠죠?

그날, 내가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는지 나도 몰랐어요.

항암을 마치고, 세포를 이식하고, 모든 치료가 끝나고 이겨냈다는 말을 들었을때 이제 진짜 끝났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역시나 끝은 아니었어요. 이식 후유증이 찾아왔고, 그건 죽을 것처럼 아픈데, 죽지도 못하고 살아 있어야 하는 날들이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내가 내게 계속 묻던 말. “나는 왜 아직 여기 있는 걸까.”"난 왜 살아난 걸까"

"넌 살수 밖에 없는 운명이야 내가 널 살렸어"라는 남편의 말이 정말 미울 지경에 이르렀고,

모질지만 생각 없이 내뱉던 말 "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왜 살려낸 거야."

이렇게 아프면서 까지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아니 살고 싶었지만 아픈 이 느낌이 너무 구역질 나게 싫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보면 “그래도 이겨냈잖아.” “이제 괜찮은 거 아니야?”"이제 좀 긍정적으로 살아 부정적으로 사니까 그런 병에 걸렸던 거야" 이런 말들을 짓거리 곤 했습니다. 하.....

그러니 저는 점점 더 부정적인 생각과 시선만 가득해졌습니다


그 말들 속에 나는 점점 갇혀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겨낸 사람답게 살아야 할 것 같았고, 괜찮아야만 할 것 같았고, 무너지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사실,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게 더 두려웠습니다.

죽을 만큼 아팠던 그날보다 살아 있어야 하는 오늘이 더 무서웠습니다.

아무도 내 아픔을 몰라주는 그 외로움이, 더 아팠습니다.


그날 버스에서 들은 노래는 그 모든 감정을 무너뜨리고, 내 마음 깊숙한 곳을 톡— 하고 건드렸습니다.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당신 곁을 맴돌아요.”

그 가사 속의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의 시선이지만 그 순간의 나는, ‘살아 있는 나’가 아니라 이미 떠난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살아내고는 있지만 살고는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바람처럼 흩어지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날, 나는 버스 안에서 천 개의 바람이 될 뻔한 나를 다시 한번 다독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노래를 들으면 마음 한가운데 바람이 붑니다.

아프고도 살아 있는 내가 가끔은 이렇게, 눈물로 버텨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살아내고 있습니다


무너졌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 순간 무너진 나를 일으켜 준 무엇이 있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