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나만의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 2

나와의 대화로 세상의 중심에 서기

by 은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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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작가와의 대화입니다.

읽는 행위는 글자를 해석하는 단순한 활동이지만, 내용에 빠져들거나 주제를 공감하면, 뇌는 다른 세상으로 이동합니다. 호기심에서 확장된 몰입은 도파민을 내뿜고, 감정이 깊은 공감으로 촉촉해지면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읽기에 빠지면 어떤 때는 작가가 내 옆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진심이 담긴 글이 말처럼 들려옵니다. 심장이 벌렁거리게 만드는 사업가부터 꽁꽁 감춰 놨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시인, 고난과 시련은 과정일 뿐이라고 다독이는 인생 선배, 가치관의 가치를 2,000년이 지나도록 설파 중인 사상가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만남이 가능합니다.


주로 그들의 얘기를 듣지만, 가끔은 “맞아, 맞아!”, “그렇지.”라고 맞장구를 치거나, “설마?”, “에이,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같은 반응이 툭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작가의 다른 책이 주변에 쌓일수록, 짧은 반응으로 시작한 대화도 무르익어 갑니다.


이쯤 되면, 작가의 열정과 진실이 온전하게 담긴 책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지혜를 품은 생명체입니다. 이 생명체는 시간의 제약 없이 위로를 건네고, 보지 못하던 곳까지 바라보게 시야를 넓혀 줍니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한 권 한 권을 소중하게 모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읽는 행위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화의 주체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대화를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와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생각과 느낌은 휘발성이 강합니다. 아무리 기분 좋게 충만하더라도 금세 흩어지기 일쑤입니다. 읽기로 샘솟은 생각과 느낌을 움켜쥐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합니다.


지속적인 읽기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합니다. 허나 한 단계 높은 내적 성장을 원한다면 나만의 글쓰기를 추천합니다. 의문에 답을 달고, 막연함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 진정한 대화의 시작입니다. AI를 곁에 두지 않는 내 글로 빈칸을 채워야, 비로소 내 언어가 생깁니다.


글쓰기는 가장 손쉬운 나와의 대화법입니다. 정리가 모여 요점으로, 생각이 모여 관점으로, 느낌이 모여 취향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일정한 형식이나 내용이 없어도 괜찮고, 쏟아내듯이 뱉어내는 글도 좋습니다. 후련한 감정만으로도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글쓰기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끌어모아 차곡차곡 쌓는 작업입니다. 내 글이 단단히 쌓이면 제대로 설 수 있습니다. 제대로 서면 바르게 갈 길이 보입니다.


저의 첫 책은 15년간 활동했던 경복궁 봉사 해설을 근간으로 썼습니다. 궁궐과 관련된 책을 제법 봤고, 15년이라는 경력이 있으니 쉽게 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위한 글쓰기는 달랐습니다. 남들과 다른 창의성이 필요했고, 수많은 자료 조사와 팩트 체크의 반복에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었습니다. 천부적으로 느린 읽기와 더 느린 쓰기로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습니다.


몇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작업이 2년이나 걸렸습니다. 경복궁을 주제로 416페이지의 원고가 완성이 되었을 때, 50% 이상이 새로 공부한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새카맣게 탔던 조각이 몸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된 작업이었지만, 저는 전보다 넓은 시야로, 더 깊이 있는 해설이 가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네이버에 출간 작가로 프로필을 등록했고, 저자 강연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합니다. 작가는 조직의 백그라운드를 가진 구성원이 아니라, 내가 나라는 이름으로 중심을 잡고 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뚝 서서 당당하게 내 길을 가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누군가에게 기대려 했던 마음의 소리가 가라앉기 마련입니다. 그때 내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 됩니다. 온전히 나로 살고, 오롯이 내가 기준이 되는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와 같은 깨달음의 과정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그늘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