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살던 나는, 수도권에 있는 연구소에 면접을 보기 위해 인천에 살던 언니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3 대 7로 가르마를 타고 앞머리를 이마에 딱 붙여 일명 '깻잎머리'를 만들었다. 머리카락을 고정하기 위해 다른 때 바르지 않던 젤도 발랐고, 뒷머리는 깔끔하게 틀어 올려 언니의 보석 달린 집게핀을 꼽았다. 6살 차이가 나는 언니가 청바지에 후줄근한 티를 입고 있던 내게 선심을 썼다. 큰언니의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을 빌려 입을 기회를. 갈색 니트에 토끼털 조끼를 입고, 무릎을 덮는 갈색 골덴 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검은색 스타킹에 검정 구두를 신었다. 처음 입는 치마였다. 거기에 화사하게 보이기 위해 언니의 진한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나는 전신 거울 앞에 서서 흡족해하며 입가에 힘을 주어 웃었다. 태어나서 가장 멋 부린 날이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단, 조건이 6개월 계약직이었다. 그곳은 내가 살던 세상과 많이 달랐다. 국가기관 연구소다 보니 연구원들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나오거나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석사, 박사급 학벌을 가지고 있었다. 지방대를 나온 나는 6개월 계약직으로 들어갔지만, 운 좋게도 그곳에서 6년을 일했다.
연구소 사람들은 대부분 이직하지 않고 퇴직할 때까지 있었다. 지금까지도 멘토인 첫 사수를만나러 종종 방문했었다. 나와 띠동갑인 사수는 깻잎머리를 하고 온 숙녀가 많이 컸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그 말이 듣기 싫지 않았다. 내 삶을 아낌없는 조언으로 응원해 주는 분이었고덕분에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
함께 일했던 연구원 중, 정이 많던 J 연구원이 있었다. 당시 내가 일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 보일 때면 싱거운 농담으로 나를 풀어주려고 애써주었던 고마운 분이 있었다. 한번 뵙고 싶었는데 갈 때마다 출장으로 자리에 없어 만나지 못했었다.
10여 년 만에 보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다. 마스크를 하고 안경을 껴서 더 그랬다. 다시 한번 인사를 하니 내 목소리를 듣고는 너무나 놀라고 나를 반가운 얼굴로 반겼다.
J 연구원은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아이는 몇 살인지,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 쉴 틈 없이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그간 고생 많았겠네."
그의 말 한마디에 15년 세월이 스쳤고 그간 애씀에 대해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 둘키우면서 일 것이 쉽진 않더라고요."
퇴사 후 거쳐갔던 회사에 대해 물었고,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연구소에 있을 때 중소기업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이직하게 된 것, 몇 년 일하다가 다시 대기업으로 회사를 옮기고, 임신을 하면서 대학교 연구소로 이직해, 지금은 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10년째 강의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연구원은 한마디 했다.
"잘 풀렸네~."
잘 풀린 걸까? 나는 겸임교수라는 직함이 이내 걸렸다. 지금도 여전히 계약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연구소에서도 6년간 계약직으로 있었다. 우리는 함께 일했지만, 나는 그들과 달랐다. 회를 거듭해도 6년간 직급이 없었다. 그냥 진우 씨였다. 같은 공간에서 일했지만 물과 기름처럼 우리는 섞일 수 없었다. 정규직 TO가 날 기미가 없어, 다른 회사를 찾아 내 발로 그곳을 나왔었다.
'잘 풀렸다'라는 말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나는 되물었다.
"잘 풀린 건가요?"
그는 내 표정을 읽었고,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진심을 다해 예를 들며 설명했다. 차츰 갈 길 잃은 대화를 나눴다. 공통 주제가 없었지만 서로의 말에 귀 기울였다. 50대 중반이 된 그의 눈가와 목에 생긴주름이 보였다. 지난 세월을 느껴졌고 나도 같은 처지지 싶었다.
J연구원은 한 시간 동안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줬다. 어쩌면 나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그는 야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내게 귀한 대접으로 연구소 입구까지 마중 나와 내가 차를 빼는 것을 도와줬고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그렇게 내 나이 마흔 중반, 그의 오십 중반에 우리의 인연을 또 끝맺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을 하면서 흐릿한 울컥함이 올라왔다. 안개에 갇혀 앞이 안 보이는것 같은 느낌이랄까? 처음 느끼는 이 감정인지 어떤 건지 몰라서 되새김질되었다. 반겨준 것에 대한 따뜻함 같기도 하고, 아직도 불분명한 현실에 대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젊었던 우리의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생각은 계속되었다. 생각 끝에 남는 건 아련함뿐이었다. 그러던 중 '싱어 게인 2' 무명가수인 <53호 가수>의 '언젠가는'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젊은 날엔 젊음을 잊었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내가 초등학생 시절 달달 외우며 불렀던 노래, 가사가 깨달아졌다. 24살에 첫 출근을 했던 그때, J 연구원은 30대 중반이었다. 우리는 젊었지만 젊다는 걸 모른 채 그와 나의 6년은, 그렇게 얽혀있었다.
내가 연구소를 떠날 당시 서른 살의 마지막 모습으로, J 연구원과도 인연이 끝났었다. 15년이 지나 만났지만 우리 헤어진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함께 나눈 젊은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성장에 대한아픔이 갇혀있던 그 시절이 떠올라아련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연구원님을 또 언제 보게 될까? 10년 후쯤 만나게 되더라도, 40대 중반인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며 만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