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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03. 2021

제주, 우리가 사랑했던 겨울

작년 폭염주의보로 뜨거웠던 여름날이었다.

1년 동안 고려해왔던 필름 카메라를 사러

명동 지하상가에 있는 중고매장에 가서

카메라를 구매했다.

요즘 현대사회의 핸드폰 속 사진 기능이

너무 좋아져서인지 필름 카메라의 소장 가치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이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구매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필름 카메라만의

담길 수 있는 특유의 색감과, 휴대폰 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에서 느낄 수 없는 설렘을 주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흔히들 말하는 필름 카메라는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의 의미를 시간과 기다림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고 배워가는 중이다.

제주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나는 계절마다, 또는 흐르는 시간마다 변덕스럽게

 늘 바뀌어만 가는데 바다는 한결같다.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바다 위에는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떠다녔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 보니, 인간이란 자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느낄 수 있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앞에 서있으면

내가 그동안 고뇌하고 간직해온 나의 근심과

걱정거리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들이었는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웅장하고 높고 빛나는

현대식 건축물을 보는 것보다, 산과 바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작은 생명체들을

바라볼 때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인간의 보살핌으로 오래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렴 필름 카메라라도 내가 마주한 제주 감귤밭의 풍경은 직접 나의 시야로 바라본 것만큼

담백하게 담아낼 수 없었다.

겨울에 유독 빛나는 초록 이파리와 동글동글 쨍한

주황빛을 가진 귤의 조화로움을 떠오르면

제주가 가장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고등어회 맛집 '미영이네' 앞 부둣가에서

흰 살 생선이라는 특유의 알레르기 질환 때문에

바다가 껴있고 회가 유명한 지역을 가도

등 푸른 생선인 고등어나, 횟집에서 처음에 주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기 일쑤였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미영이네'라는 식당에서

고등어회를 처음 먹게 되었다.

혹시 몰라서 비상용 알레르기 약을 챙기긴 했지만,

고등어는 등 푸른 생선인지라 기도가 붓는

 느낌이라든지, 어떠한 반응도 나타나지 않아

괜찮았었다. 처음 시도해본 음식이었지만,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제주도에 오면 꼭 가봐야 할 명소 중 녹차가

유명한 곳인, '오설록'이 아닌 '산노루'라는 곳에 왔다.

오설록은 서울에서도 흔히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새로운 카페를 검색해 오게 됐다.

여행을 갔을 시기에는 서울에 있는 카페 전체가

테이크아웃만 허용됐기 때문에, 카페에 들어와

먹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행복을 가져다줬다. 특히나, 차를 타고 오지 않으면 찾기 힘든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그리 많아 여유롭고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제주도에 왔기 때문에 녹차를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킨 말차 아이스크림 라테와

말차 파운드케이크,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고른 아이스크림 라테. 가맹점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녹차라테와는 다르게 진한 맛이 났다.

그리고 이곳에서 화장실을 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녹차 연구소가 있었다. 녹차에 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말차를 생성해내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산노루에 갔다면 카페 내부에만 있지 마시고,

꼭 한번 화장실을 가보길 추천합니다!

예상치 못한 공간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늘 아름다웠던 곳에 함께였던 우리의 '레이'

제주도에 3번 정도는 와봤지만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다 형식적이고 계획적이었다. 제주도에 오면 꼭 한번 가봐야 한다는

관광객들이 붐비는 식당을 가고, 관광명소에

가서 단체사진을 찍고, 여행 마지막 날에는

제주 특산품을 산다든지 철저하게 코스가 짜인 준비된 여행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바라본

제주도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여행'이라는

 개념은 새로웠다. 보기 좋게 인간에 의해 정리 정돈된 꽃길보다, 이미 너무 유명해져 버려 지점별로 위치한 고깃집보다 골목골목 차곡하게 쌓인 돌담길과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작은 간판이 있는 식당들이

 더 진한 기억과 인상을 남겨줬다.

제주도를 갔다 온 지 벌써 7달이 다 되어가지만,

포스팅을 하면서 제주에서 보냈던 모든 시간들과

 제주의 공기까지도 아직 또렷하게 남아있다.

사람들은 대게 행복했었던 기억들보다 힘들었었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며 살아온다.

힘든 시련은 내 의지와는 달리 언제든 찾아올 수 있지만, 그 순간마다 제주에서 보냈던 우리가 사랑했던

겨울을 떠올리며 삶을 버틸 수 있는

 크나큰 원동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새삼스레 또 감사하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어느 계절에도 쉽게 융화되고

소중한 기억을 선물해 준 제주의 겨울아,


이번 겨울은 유난히 마음이 따뜻했던

겨울이었던 거 같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에 사랑하는 사람과

늘 오고 싶어 했던 곳에서 덕분에 너무 행복했어.

다시 만나는 날까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아파하지 말고 제주만이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지켜내며 잘 있길 바랄게.

고마워,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자:-)


+ 한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블로그에 포스팅된

음식점들에 관한 후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

담겼을 뿐 '광고성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긴 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하며 제주의 어여쁨을 함께

채집했던 나의 첫 번째 필름 카메라와

그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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