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엄마를 닮고 싶진 않다.
엄마가 알게 된다면 많이 서운할 테니 엄마한텐 비밀.
엄마는 6남매 중 첫째로 동생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다 보니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왔고 요령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 먹고살기 힘든 형편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6남매나 되다 보니 엄마는 동생을 대신해 학업을 일찍 포기하고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동생들을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 한다. 하지만 엄마의 그 희생은 줄곧 엄마의 약점이 되어 따라다녔고 이후엔 자식인 나의 약점으로 이어졌다.
자식조차 부모의 희생을 매번 감사하고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동생이라고 언니, 누나의 희생에 매번 감사하고 미안해하랴. 사실 동생들이 엄마에게 그리 희생해달라 강요한 적도 없으니 이모, 삼촌들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에 대한 회의감과 서운함이 쌓여갔을 테고 그것은 갱년기를 기점으로 동생들과 나에게로 표출되곤 했다. 엄마의 서운함 토로를 한바탕 듣고 난 이모, 삼촌들은 중간에 껴있는 나에게 연락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나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다. 때론 둘 사이의 문제로 시작한 것들이 '딸인 네가 잘해야지'로 끝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본인 먼저 챙겨가며 살아오지 못한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희생을 완벽히 당연스럽게 여기지도 못해 쌓아 놓고 서운해하는 엄마가 답답했다. 애매하게 착한 사람이 제일 괴롭다고 했던가. 엄만 희생이 요구됐던 환경이기도 했지만 충분히 피해 갈 수 있을 때조차 희생하는 쪽을 선택하곤 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이 오면 어김없이 본인의 희생과 솔선수범을 선택하는 쪽이었고, 그 책임은 온전히 혼자 지면서 힘들어했다. 그리고 바보 같은 선택의 책임은 결국엔 자식인 나에게까지 이어지곤 했다. 그래서 그런 엄마가 때론 너무 원망스러웠다.
더군다나 자존심이 매우 강해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엄마는 단기적인 문제를 장기적인 문제로 키우는 편이다. 예를 들면 급하게 현금이 필요하다 하면 나에게 물어보면 될 것을 본인의 오래 든 보험을 깨버리는 식. 아무에게도 부담주기 싫어 한 이러한 해결 방식은 결국엔 자식인 나에게 장기적인 부담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나도 엄마를 닮았는지 남에게 싫은 소리 혹은 부탁을 굉장히 어려워하는 편이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처럼 일 키우지 말고 적당히 도움받으며 살아가자고 되뇐다. 무조건적인 의존은 문제지만 우린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보니 도움을 받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유년기와 젊은 시절엔 어린 동생들을 위해, 이후엔 자식인 나를 위해 살아온 엄만 생활력도 강하고 부지런하다. 아마 학업을 일찍 포기하지만 않았더라면 어디서든 한자리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 자신을 위한 삶보다는 누군가를 위해서만 열심히 살아온 엄마는 막상 기회가 주어졌을 때조차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는 법이 뭔지 몰라 힘들어했다. 종종거리며 살아온 엄만 은퇴하고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듯했다. 나 역시 쉬는 날에도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안심이 되는 스타일이지만 그럴 때마다 억지로라도 제동을 걸어본다.
그리고 나는 이런 엄마를 보면서 다짐했다.
받아낼 생각이라면 애초에 주지 말기
누구보다 내 인생 먼저 생각하기
소중한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베풀 줄 알아야 하지만 너무 다 줘버리고 서운해 말기
적당히 도움받고 살기
일은 적당히 요령껏
똥은 피할 수 있음 피해가기
쉴 땐 잘 쉬기
잘 쉬는 나만의 방법을 찾기
어떤 심리학 책에서 '딸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애쓰다 진이 다 빠진다.'라는 글을 읽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4-5년 전 강박적이다시피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해보던 시기가 있었다. 해보지 않았던 운동, 취미, 문화생활 등 여러 방면에서 시도를 하면서 당시 내 주변인들도 역마살 끼었냐고 할 정도였다. 무언갈 배우는 것에 있어서도 도장 깨듯이 해치우고 다녔었다. 원래 좋아하던 책도 여유를 가지고 읽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두 권은 읽어야 한다'라는 식의 숙제처럼 읽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남들은 열정적이라던가 바쁘게 산다고 감탄하곤 했지만 돌아보면 정말 즐기면서 했던 게 아니라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니 물론 사회초년생으로서 열정에 기반한 것도 있었지만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엄마가 더 이상은 무언갈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취미를 가져봤으면 좋겠고,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살았으면 한다. 더 이상 자식인 나를 위해서도 살지 않았으면 한다.
보통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서운함을 느낄 때 그런 말을 하곤 한다. '내가 널 위해 어떻게 살았는데!' 하지만 듣는 자식 입장에서는 황당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죄책감이 든다. 자식은 날 위해 부모에게 희생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건 모두 부모 자신의 선택이었다. '자식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게 내가 좋고 마음이 편하니까'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서운함을 토로하지 않아도 자식들도 안다. 부모가 날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 왔음을. 하지만 알아준다한들 인생의 억울함이 풀릴까.
나는 세상의 부모님들이 조금 이기적이라 생각될 정도로 본인의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멀리 보면 그게 자식들에게도 더 좋은 일이다. 부모와 자식은 가족이지만 한 사람은 아니다. 운명공동체도 아니다. 적어도 자식에게 '내가 너 때문에 희생했다'라고 뒤늦게 억울해할 일은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결국엔 부모 스스로 행복해야 자식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