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랜드를 야구단처럼 운영하기로 했다

프롤로그

by 문건우


바야흐로 야구 관중 1000만 시대. 티켓은 1초도 안돼 동날정도로 야구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제 한국에서 야구는 단순한 하나의 프로 스포츠를 넘어서 일종의 한국 문화가 된 정도인 것 같다. 봄이 오면 개막을 기다리고, 여름이면 순위표를 보며 욕을 하고, 가을이면 누군가는 미쳐 날뛰고 누군가는 내년을 말한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최소한 자기 주변에 야구 때문에 기분이 오르내리는 사람 한 명쯤은 알고 있는 시대가 된 셈이다.


나는 꽤 어릴 적부터 야구를 접했는데, 배경에는 고향 탓도 한몫, 아니 두몫, 세몫쯤 했다. 나는 부산 사람이다. 물론 지금 사는 곳은 서울이지만, 으레 많은 부산 사람들이 그렇듯 내 소울은 여전히 부산에 가깝다. 그리고 부산 사람들은 야구를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광적으로 좋아한다. 옛날부터 구도 부산이라고 불릴 정도이니 말 다했지 않은가. 나라고 다르진 않다. 종교에는 모태 신앙이 있다면 스포츠에는 모태 응원팀이 있다. 나 역시도 30년을 넘게 우승하지 못하는 애증의 팀을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응원하는 중이다.


이렇게 한 팀을 오래 응원하고 야구에 진심이 되면, 더 이상 야구를 하나의 공놀이로만 볼 수 없게 되어버리는 수준에 이른다. 처음에는 이기면 좋고 지면 화가 나는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그라운드 뒤편이 궁금해진다. 이를테면 팬들은 다 아는 문제를 프런트는 정말 모르는 건지 같은 것들 말이다. 경기는 하루에 끝나지만, 팀은 하루 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오래 응원한 팬들은 몸으로 안다.


그런 점에서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야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홈런이나 끝내기 안타가 아니다. 물론 그런 장면도 좋다.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의 소리라던지 9회 말에 관중석이 한꺼번에 일어서는 장면이나 마무리 투수가 마지막 공을 던진 뒤 포수와 끌어안는 순간을 싫어할 야구팬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성 야구팬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 진짜 재밌는 순간은 리그가 끝나고부터 시작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바로 〈스토브리그〉다. 지금도 야구를 보다가 답답할 때면 늘 그 드라마를 다시보기 한다. 사이다 같은 전개와 통쾌한 결말, 특히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모 팀을 이렇게 오래 응원하다 보면 우승을 오랜 기간 못하고 있다는 그 서사가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야구를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경기 장면보다 더 매력적인 건 구단이라는 하나의 팀이 어떻게 다시 짜이는가를 보는 일이다. 구단 비하인드 스토리랄까. 그리고 그곳엔 그 구단을 이끌어가는 리더, 바로 '단장'이 있다.



브랜드 단장님1.png



단장은 경기장에서 공을 던지지도 않고 배트를 휘두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그의 일이 화려해 보이지 않다. 팬들이 원하는 결정을 항상 해줄 수도 없고, 모두가 아끼는 선수를 끝까지 데리고 갈 수도 없다. 이런 모습들이 누군가에게는 냉정하고 현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게도 만들지만, 결국 그가 가장 많은 것을 바꾼다.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압박과 몇 년 뒤를 봐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계속 선택해야 한다. 비싼 선수를 데려올지, 가능성 있는 신인을 기다릴지, 지금의 감독을 믿을지, 팀의 색깔을 완전히 바꿀지 결정해야 한다. 그 결정들은 경기장 조명 아래에서 박수받지 못할 때가 많지만, 팀의 미래는 대체로 그런 조용한 결정들 위에서 바뀐다.


그래서 나는 단장이 야구단을 꾸려나가는 일련의 과정들과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과정이 (오히려 같으면 같았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은 브랜드를 키운다고 하면 가장 먼저 광고, 콘텐츠, 로고, SNS 같은 것을 떠올린다. 물론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제각각 움직이면 브랜드는 팀이 되지 못한다. 광고는 광고대로 돈을 쓰고, SNS는 SNS대로 예뻐지고, 상품은 상품대로 존재하는데 이상하게 매출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쁘게 뛰고 있는데, 팀이 강해지는 느낌은 없다.


특히 작은 브랜드일수록 이런 문제에 더 자주 당면할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대표 혼자 감독, 선수, 코치, 운영팀, 홍보팀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일이 중요해 보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블로그가 문제인 것 같고, 내일은 광고가 문제인 것 같고, 모레는 SNS를 안 해서 뒤처지는 것 같다. 만약 누가 숏폼이라도 하고 있다 치면 숏폼을 해야 할 것만 같다. 또 누가 뉴스레터가 좋다고 하면 뉴스레터를 추가해야 할 것만 같다. 그렇게 계속 새로운 전략을 추가하지만, 정작 이 브랜드가 어떤 팀인지 묻는 시간은 없다.


자주 지는 팀에게 필요한 건 그저 작전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왜 계속 비슷한 방식으로 지는가'이다. 야구도 그렇지 않은가. 매번 선발이 5회를 못 버티는데 타격 작전만 바꾼다고 팀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득점은 하는데 늘 8회에 무너지는 팀이라면 문제는 타선보다 뒷문에 있을 수 있다. 브랜드도 비슷하다. 조회수는 나오는데 문의가 없다면 단순히 유의 문제가 아닐 수 있고, 문의는 오는데 결제가 없다면 상품보다 신뢰가 먼저 무너져 있을 수 있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계속 같은 자리에서 막힌다면, 그건 전략 하나의 실패가 아니라 팀 구성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브랜드 단장님3.png



브랜드를 야구단처럼 본다는 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브랜드를 더 냉정하고도 애정 있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냉정하게 본다는 건 안 되는 것을 안 된다고 말하는 일이고, 애정 있게 본다는 건 아직 가능성이 있는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일이다. 좋은 단장은 둘 중 하나만 하지 않는다. 무조건 기다리지도 않고, 무조건 갈아엎지도 않는다. 기록을 보고 객관적으로 구단을 파악한다. 때론 팬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실현해준다. 그렇게 모두를 하나로 만들고, 머지않아 강해질 팀의 시간을 생각한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도 그런 눈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제목을 〈브랜드 단장님〉이라고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금 장난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 제목이 꽤 진지하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를 키우는 사람은 결국 자기 팀의 단장이어야 한다. 특히 돈도 사람도 많지 않고 이름 없는 작은 브랜드라면 더 그렇다. 작은 팀일수록 한 번의 영입이 중요하고, 한 번의 방출이 아프고, 한 번의 판단 착오가 오래간다. 그래서 팀의 상태라든지 우리에게 필요한 포지션, 다음 시즌의 가능성처럼 '너희 팀'보다 '우리 팀'을 더 많이 봐야 한다.


결국 단장이 하는 일은 하나다. 계속 남들을 따라만 가기 전에 한 번쯤은 멈춰서 자기 팀을 다시 보고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지금 뛰고 있는 것들,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것들,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가능성들, 그리고 다시 돌아오게 만들고 싶은 팬들까지 전부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또 같은 방식으로 지고 싶은가."


이 질문 앞에서 불편해지는 브랜드라면, 이미 스토브리그는 시작된 것이다. 경기가 없는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팀이 왜 지는지 끝까지 보고, 다음 시즌에도 같은 방식으로 지지 않게 만드는 시간이다.


이 책은 그 시간의 기록이다.

이제 스토브리그를 시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