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종료 보고서: 우리 브랜드는 왜 졌는가

1부. 시즌 종료: 먼저 지난 시즌 성적표를 까라

by 문건우


시즌이 끝난 팀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뭘까. 팬 입장이라면 답하기가 쉽다. 그냥 마음껏 화를 내면서 욕하면 된다. 이 정도로 망한 팀이라면 이미 한 시즌 내내 욕을 하면서 봤겠지만, 그럼에도 도무지 분이 풀리지가 않는다.


도대체 겨울 동안 뭘 했길래 이 모양 이 꼴인가. 이게 팀인가. 진짜 돈 받고 야구하는 놈들이 이따구로 밖에 못하면 왜 야구 선수를 하고 있는가. 싹 다 2군에 보내고 2군에 있는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어도 이거보단 잘할 것 같다. 1군에서 조금만 잘하면 팬들이 좋아해주고, 떠받들어주니까 무슨 아이돌이라도 된 것 마냥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갔다. 정신머리가 썩어빠졌다. 팀은 지고 있는데 더그아웃에서 자기들끼리 희희낙락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게 팀인가 싶다.


라는 욕을 어디선가 얼핏 들은 것 같다. (내가 했다는 건 아니고, 팬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쌓인 답답함이 있으니 그 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래 우승하지 못한 팀을 응원하는 사람이라면 그 권리는 거의 연금처럼 쌓여 있다. 올해도 왜 여기까지였는지, 도대체 이 팀은 언제쯤 달라질 건지 말하다 보면 밤이 너무 짧다.



그런데 단장은 그렇게만 있을 수는 없다. 팬은 겨우내 욕을 하면서도 결국 봄이 오면 다시 내 팀을 응원하게 된다. 그게 팬의 자리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구단이 팬을 늘 호구로 취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장은 팬의 자리에서 오래 머물 수 없다. 시즌이 끝났다면 그에게는 바로 올해를 잘 끝내야 하는 중책이 생긴다. 이건 단순히 경기 일정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한 시즌 동안 이 팀이 어떤 상태였는지, 무엇을 착각했고 무엇을 끝내 보지 못했는지를 정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리’라는 말이다. 시즌이 끝난 팀은 바로 새로워지려고 하면 안 된다. 물론 빨리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을 제대로 보지 않은 변화는 전력 보강이라기보다 기분 전환에 가깝다. 그래. 많이 봐줘서 꼴찌팀에게도 기분 전환은 필요할 수 있다고 치자. 꼴찌한 것도 서러운데 분위기도 다운되면 기분 안 좋겠지. 다만 그것만으로 팀이 강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꼭 알아둬야 한다.


그렇기에 단장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보고서다. 시즌 종료 보고서라는 말은 자칫 딱딱하게 들리지만, 나는 이 말이 꽤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한 시즌을 지나온 팀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한 번 봐야 한다. 올해의 성적이 잠깐의 부진이었는지, 오래된 약점을 여전히 고치지 못한 것인지도 봐야 한다. 보고 싶은 장면만 모아서 “그래도 올해는 진짜 가능성 있었다”라고 말하는 건 쉽다. 반대로 다 망했다고 화풀이하듯 갈아엎는 것도 쉽다. 어려운 건 그 사이에서 진짜 상태를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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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도 이 순서를 자주 놓친다. 브랜딩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많은 사람은 바로 눈에 보이는 것부터 손대고 싶어 한다. 디자인을 바꾸거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새로 잡으면 뭔가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마음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점검 없이 진행된 변화는 그냥 노동일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데 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신생 브랜드라면 이런 열정으로 일단 자기 얼굴부터 만들어야 한다. 처음 세상에 나가는 팀은 이름을 알려야 하고, 사람들에게 어떤 팀인지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미 몇 시즌을 치른 브랜드는 다르다. 그 브랜드에는 지나온 시간이 있다. 잘된 기억도 있고, 애매하게 넘긴 순간도 있고,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버린 방식도 있다. 그런 브랜드가 처음 시작하는 팀처럼 겉모습부터 만지면 정작 봐야 할 문제가 뒤로 밀린다.



브랜드가 잘 안 풀린다. 그래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다. 지금의 문제를 단번에 바꿔줄 것 같은 쉬운 것부터 고친다. 바꾸고 나면 이전보다 브랜드 같아 보이고, 뭔가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살짝 좋아진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결국 같은 문제가 다시 발목을 잡는다. 브랜드가 계속 망하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오랜 기간 우승을 못하는 야구팀도 매번 새로운 걸 만들어내면서 뭔가를 하는 것 같지만, 정작 야구는 그대로지 않는가. 딱 그 꼴인 것이다.


물론 새롭게 뭔가를 바꾸는 게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정돈은 당연히 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첫 번째가 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정말 제대로 브랜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시즌이 끝난 팀이 기록지를 보듯, 먼저 브랜드도 지난 시간을 봐야 한다. 제발 겉만 그럴싸하게 하지 말고. 진짜 제발.


이건 기분 좋은 작업이 아니다. 나도 안다. 자신이 오래 붙잡은 방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이 했다면, 그냥 접어라. 사업을 할 자격이 없다.) 당시에는 그게 맞아 보였고,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내려놓기 어렵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은 꽤 끈질기다. 그런데 오래 했다는 사실이 그 방식을 계속 데리고 갈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시즌 종료 보고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정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단장은 자기 팀을 사랑할수록 더 냉정해야 한다.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라고 해서 무조건 남길 수 없고, 한때 좋은 활약을 했다고 해서 계속 중심에 둘 수는 없다. 반대로 지금 욕을 먹는 선수라고 해서 무조건 버리는 것도 좋은 판단은 아니다. 중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상태다. 이 팀이 다음 시즌에 강해지려면 무엇을 인정해야 하는지 봐야 한다. 그리고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열심히 하는데 계속 같은 자리라면, 더 열심히 하기 전에 먼저 멈춰라. 무엇을 더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잘못 보고 있었는지부터 체크해라.


나는 여기서 “우리 브랜드는 왜 졌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질문은 남 탓을 하지 말자는 뭐 그런 뻔한 도덕적인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책하라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자책을 멈추기 위한 질문에 가깝지 않을까 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말은 얼핏 솔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부족하다는 말은 너무 크고 흐리다. 대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계속 막혔는가”라고 물어라. 감정이 아니라 운영의 문제가 아닌지를 냉정하게 봐라. 운영의 문제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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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이 끝났다는 건 실패의 선언이 아니다.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미 몇 시즌을 치른 브랜드라면, 새로 만들기 전에 먼저 돌아봐야 한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괜찮았던 척하지 말고, 안 된 것을 전부 운이나 상황 탓으로 넘기지도 말고, 한 번은 제대로 봐야 한다.


우리 브랜드는 왜 졌는가.

이 질문 앞에 앉는 순간, 브랜딩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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