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직업이 뭐야? 나는...

구스구스덕

by 문건우


나는 게임을 거의 안 한다. 정확히는, 이제는 거의 안 한다가 맞는 소리일 것 같다. 어릴 때는 그래도 좀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실력이 후지다보니(?) 점점 안 하게 됐달까. 남자들은 참 웃긴 게 웬만한 장난이나 욕은 아무렇지 않은데, 유독 "게임을 못한다"는 말에는 그렇게나 긁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어쩌면 게임을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아예 게임을 하지 않는 걸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스타크래프트 시절엔 다들 그랬듯 PC방에서 꽤 시간을 보냈고, 리그 오브 레전드가 한참 유행할 때도 잠깐 발을 담갔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내 컴퓨터에는 게임이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못한다는 건 핑계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건지, 딱히 대단한 이유는 없다.


게임을 고르는 기준은 꽤나 단순한 편이다. 그렇다고 남자랍시고 게임에 영 관심이 없는 편은 아니라서, 일단 보기에 재밌어 보이면 한번 들여다보는 정도는 된다. 옛날엔 게임 방송, 한 때는 트위치, 요즘은 치지직 스트리머들이 하는 걸 보면서 간접적으로 즐기는 경우도 많다. 되려 직접 하는 것보다 보는 쪽이 더 편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는 어느 정도 알게 된다. 조롱에 재능이 있는 친구가 말한다. "게임도 못하면서 그런 건 왜 봄?" 니보다 잘함. 그리고 게임 실력이랑 관심은 별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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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임은 한철 반짝하고 사라지고, 어떤 게임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이 플레이한다. 뭐 콘텐츠가 좋아서라든지, 업데이트를 꾸준히 해서, 입소문이 퍼져서 등 여러 이유들이 있긴 한데,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오래 살아남는 게임들을 보면 단순히 재밌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게 뭔지를 생각하는 게 때론 게임을 직접 하는 것보다 솔직히 더 재밌을 때가 많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게임을 못해서가 아니다. 아무튼 아니라고.)


브랜드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의 직업병 같은 거다. 뭘 봐도 왜 이게 되는지, 왜 저건 안 되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게임도 마찬가지고, 식당도 마찬가지고, 유튜브 채널도 마찬가지다. 숫자가 잘 나오는 것들에는 대부분 이유가 있다. 운도 있지만, 운만으로는 오래 못 간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다 보면 결국 비슷한 데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브랜드든 게임이든 그 비슷한 한 포인트를 잘 설계한 쪽이 오래간다.


한때, 아니 지금도 게임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라면 무조건 한 번씩은 하는 게임이 있다. '구스구스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흔히 알고 있는 마피아류. 게임으로 치면 어몽어스의 아류작 느낌이 많이 나는 게임이다. (그래서 '구스구스덕', 줄여서 '구구덕'의 애칭이 바로 '덕몽어스'다.) 어몽어스는 코로나를 등에 업고 사람들의 관계 구성 욕구를 자극해 대박이 난 게임 중 하나다.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게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면 무조건 한 번쯤은 들어본 게임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 어몽어스는 마피아 게임의 온라인판 정도로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임포스터라고 불리는 마피아가 있고 크루라고 불리는 시민들이 있다. 그리고 임포스터를 찾아내면 끝. 이토록 간단한 게임이 한때 엄청난 유행을 휩쓸었다. 다만, 이 유행은 코로나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는 게 문제지만.


그리고 구스구스덕은 이 어몽어스의 컨셉을 거의 똑같이 가져온 게임이다. 그러나 구스구스덕은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다. 바로 구스구스덕에는 '직업'이란 게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건 미팅이나 소개팅이 아니라 직업을 물어보는 한 게임에 대한 이야기다.





구스구스덕은 거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역할을 배정한다. 시민에 해당하는 거위부터 마피아에 해당하는 오리는 기본에다 그 역할들 안에서도 더 다양한 직업이 세분화되어있다. 심지어 어느 편도 아닌 중립 역할도 있다. 다시 말해 어느 편이든 이 판에서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카드를 들고 시작한다는 말이다. 내가 이 판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에 유퀴즈에서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이 출연하셔서 한국인의 특징을 정리해주신 걸 봤다. 혹시 안 봤다면 꼭 보길 바란다. 난 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진짜로. 무튼 한국인은 관계를 굉장히 중시하는데, 그 안에서도 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욕구가 강하다고 하셨다. 그냥 같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 관계 안에서 내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고 싶다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구스구스덕이 딱 그 포인트를 정확히 정확히 자극한다. 괜히 한국에서 유독 많이 하는 게임인 게 아니다. 관계 안에서 내가 주인공이고 싶은 사람들한테, 이 게임은 처음부터 직업을 쥐여준다. 판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이미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몽어스가 임포스터가 아닌 라운드에서 빠르게 지루해진 건, 대부분의 사람이 배경으로 남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구스구스덕은 그 자리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강한 자가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기야!"

영화 「 황산벌」의 김유신 장군은 말한다. 맞다. 그리고 살아남은 것에서 그 이유를 배워야 한다.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들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좋은 제품을 파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고객이 그 브랜드 안에서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이고 내가 이 씬의 주인공인지를 설계한다. 그래서 이런 치밀한 설계들은 매 순간을 나만의 순간으로 기억되게 만든다. 그리고 이 기억들은 브랜드 자체의 이미지가 되고, 장면이 된다. 그 장면이 구체적일수록 사람은 더 오래 남는다.


사람들한테 자신만의 역할을 주고 주인공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게 해라. 아무리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한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리고 어우러져 같이 잘 사는 (그중에서도 내가 쪼끔 더 잘 사는) 멋진 나를 꿈꾼다. 그리고 내 꿈은 언제나 내가 주인공이다. 브랜드가 할 일은 그 꿈을 선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살아남은 게임에게 배우는 살아남는 브랜드 노하우다.


말 나온 김에 구스구스덕이나 한판 하러 가야겠다.

나랑 한 판 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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