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수
화장품을 하나 질렀다. 아니, 질렀다고 표현하기에는 그저 화장품에 2만 원 남짓되는 돈을 투자했을 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평균 남자인 나, 문건우. 화장품에 2만 원이나 되는 돈을 쓰는 것은 갤럭시로 갈아탈까 말까를 정하는 것만큼이나 일생일대의 결정인 것이다. 이렇게 중대한 결정을 내린 것은 마침 바르던 로션을 다 썼기 때문도 있고, 할인을 왕창 받아오기로 유명한 모 유튜브 채널에서 마침 화장품 세일을 했기 때문도 있다. 그만큼 화장품에 무심한 편이다.
아무리 브랜드를 잘 알아야 하는 게 직업인 나라고는 하지만, 화장품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잘 안다고 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뭔가 어린 시절 '세일러문'을 봐도, 봤다고 말할 수 없었던 꼬마 남자애들의 마음이랑 비슷하달까. 다른 일반인 여성들도 화장품에 관해서라면 보통 나만큼은(아니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진대, 한 줌의 지식만을 더해 전문가인 척하는 꼴을 상상하자니 정의의 이름으로 날 용서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이런 나조차 이름만 들어도 이미지가 그려지는 몇몇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설화수'다.
솔직히 이 브랜드 화장품 성분이 얼마나 좋은지, 아니면 인식이 어떤지, 누가 주로 쓰는지까지도 잘 모른다. 우연히 화장품 패키지를 본다고 해도 "예쁘네, 잘 만들었네" 하고 넘길 정도다. 혹시나 선물할 일이 있으면 잠깐 기억할지는 몰라도, 결국 내 건 안 사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이번 전통 가마를 모티브로 한 리미티드 패키지, 심상치 않다. 갖고 싶고, 선물하고 싶다.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에게 주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마음의 호수 위 큰 파도를 일으킨 메타모포시스는 필시 소소한 잔물결이었을 터. 그저 예쁜 굿즈를 내놓아서가 아닌, 그동안 설화수가 집요하게 쌓아온 그들의 컨셉과 이미지, 장면과 순간들의 결과인 것이다. 사실 이 브랜드가 팔아온 것은 화장품이 아니다. 그냥 '설화수' 그 자체를 팔아왔다. 설화수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제품보다 먼저 분위기가 떠오르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전통적인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하나만 대보라고 하면, 솔직히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올라오는 건 늘 설화수다. 그건 오래 해서도 아니고, 비싸 보여서도 아니다. 이 브랜드는 자기 얼굴을 정확히 안다. 자기 얼굴이 제일 잘 나오는 각도까지 안다는 점이다. 사람도 셀카 잘 찍는 사람 보면 대충 감이 오지 않는가. 그 뭐라더라. 요즘 말로 왼얼사라고 하나. 나도 어제 처음 들은 말이라서 오늘 글에서 꼭 써먹고 싶었다. 무튼 설화수가 딱 그렇다.
어떤 브랜드는 한국 전통을 말하면서 한복 색 하나 얹고, 매듭 하나 달고, 괜히 캘리그래피 비슷한 걸 올려놓고 끝난다. 이러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딱 안다. '아, 또 전통 코스프레 들어가는구나.' 설화수 얘들은 안 하면 안 했지 그런 식으로 대충 하지 않는다. 이쪽은 아예 집을 짓는다.
북촌을 가볼 일이 있다면 '설화수의 집'을 가보길 추천한다. 가서 내 이름을 대고 추천받고 왔다고 해보길 바란다. 물론 그래봤자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웬 미친 사람이지' 하는 표정 정도까지는 덤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브랜드치고는 매장이 대단히 아름답다. 아니 브랜드라는 걸 빼놓고 봐도 몰입이 될 만큼 우아하다. 현려(絢麗)하다. 윤미(潤媚)하고, 단화(端華)하다. 마치 이런 옛 단어로 그 모습을 예찬해야 할 것만 같다. 공식 설명부터 한국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동시대적으로 해석한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는 1930년대 한옥과 1960년대 양옥을 이어 붙여 하나의 집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매장이 아니라 집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 있다. 전통을 구경시키는 게 아니라, 전통이 이미 생활 안에 들어와 있다는 식으로 보여준다.
도산공원 앞에 있는 플래그십도 가볼 만하다. 이쪽은 아예 랜턴을 메타포로 잡고 들어간다. 브랜드 하나가 북촌에서는 집이 되고, 도산에서는 등불이 되는 걸 보고 있으면, 이쯤 되면 화장품 회사라기보다 공간 연출팀이 본업 아닌가 싶어진다.
전통을 재료로 쓴다고 다 같은 전통 브랜드가 아니다. 누군가는 전통을 장식으로 쓰고, 누군가는 전통을 자세로 쓴다. 애써 한국적인 걸 보여주려 하기보다, 한국적인 것이 이미 자기 안에 정리돼 있다는 느낌. 그래서 힘을 안 주는데도 힘이 있다. 브랜드가 주는 인상이라는 건 결국 이런 데서 갈린다. 아무리 설명문을 백 줄 써봐라, 한 번 보는 것만 못하지.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니라.
사실 소비자는 브랜드 철학을 다 기억하지 않는다. 한국의 미학이 어쩌고, 동시대적 해석이 저쩌고, 홀리스틱 뷰티는 또 뭔지... 이런 말들은 다 듣는 순간만 그럴듯하다. 진짜 남는 건 장면이다. 브랜드를 떠올릴 때 머리에 같이 켜지는 공기, 상상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공간, 따라오는 빛의 느낌, 선물로 받으면 괜히 자세를 좀 고쳐 잡게 되는 그 기분.
그리고 설화수는 화장품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라, 화장품이 놓일 세계를 먼저 만들고 있었다.
어디까지 유염(柔艶)해질지는 모른다. 또 그때는 어떤 놀라움을 줄 지도 기대된다. 그들의 집요하고 일관된 목소리와 장면을 다같이 향유하는 것. 이 정도면 브랜드가 아니라 약간 성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