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새벽에 기침을 많이 하시더니,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오전에 센터에서 돌아오셨다. 3일간 오지 말라고 한다. 꼼짝없이 엄마한테 매이게 되었다. 좀 쉬시라고 해 놓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 사이 엄마는 기저귀를 벗어던지고, 침대 위에서 오줌을 지리셨다. 침대커버를 벗겨서 세탁기에 돌리고, 엄마를 대충 시켜서 기저귀를 차게 하고 점심식사를 차렸다. 그래도 잘 드신다. 기분은 가라앉아 있다. 아직도 한나샘을 손님이라고 여기고 편히 계시지 못하는 점에 대해 엄마와 대화를 했다. 나를 도와주고, 엄마를 도와주려고 온 분이니 어떤 일이든 부탁해도 괜찮다고 했다. 설거지를 하고 정리를 좀 하는데, 화장실에 가신다고 일어서신다. 제대로 하시나 보다 하는 마음에 안심하려는데, 기저귀에 똥을 싸 놓고는 변기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변기 위, 허벅지에 다 묻어 있다. 지독한 냄새가 진동한다.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언제까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똥을 닦고 엄마를 씻겼다. 똥 기저귀를 뭉쳐서 문밖 기저귀 모으는 가방 안에 넣었다. 다시 화장실 청소를 했다. 땀으로 범벅이 낸 내 몸도 씻어냈다. 엄마를 TV 앞에 앉혀 놓고 우리 집으로 가서 옥수수 껍질과 옥수수 대가 들어있는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왔다.(아버지가 요양병원으로 가시게 되면서 엄마를 우리 집 옆으로 모셔왔다) 엄마의 기저귀를 넣어 함께 버리기 위해서이다.
똥 묻는 기저귀와 다 먹은 옥수수 대의 냄새는 대단했다. 맛있는 옥수수도 쉬면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행복하게 먹은 음식도 먹고 나면 똥이 된다. 아니, 똥이 되어야 한다. 마법같이 변기물이 똥을 씻어 내렸다고 해서, 쉰내 나는 옥수수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렸다고 해서 없던 것이 될 수 있는가?
엄마는 나에게 진실에 눈 뜰 기회를 주시고 있다. 이 세상의 진면목을 만날 기회를 주시는 거다. 더럽고, 어렵고, 힘든 삶의 일면을 일깨워 주시고 있다.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 제목은 이상하다. 60대 주인공의 삶은 조금도 퍼펙트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추하고 좁디좁은 2층 집에 살면서, 옆집 노인의 빗질 소리에 잠을 깨어 하루 종일 도쿄의 공중 화장실을 청소한다. 밤새 토한 흔적이 있는 대변기와 소변기를 정성껏 닦는다. 점심은 샌드위치로, 저녁은 시장의 식당에서 간단히 먹는 것이 다다. 밤마다 책을 읽다 잠이 들고, 출근길에 듣는 카세트테이프의 옛 팝송과 주말의 선술집에서의 한잔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가족과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있고, 곁에서 시간을 함께 할 가족은 없다. 사실 그는 너무나 가난하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부딪히는 마음들을 정성껏 담아낼 자리가 있다. 때로는 무례하고, 때로는 안쓰럽고,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외로운 마음들에 응한다. 답은 없다. 그냥 함께 한다.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감탄하고 여린 새싹을 소중히 보듬는다. 그 가난한 마음이 퍼펙트한 것이다. 세상을 조용히 응시할 수 있는 고요하고 텅 빈 시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아직 퍼펙트하지 않다. 아직도 너무나 가득 차 있고, 더 채우려고 한다. 노인이 용변 처리가 미숙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는 요양보호사이신 한나샘은 그런 문제로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는데, 난 화가 많이 난다. 퇴직 후에 기대했던 삶과는 너무나 다른 나의 현실을 못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이 비워내고 배워야 한다. 내일은 광복절 휴일이고, 엄마는 코로나에 걸리기까지 했는데도 한나샘은 엄마를 돌보기 위해 오시겠단다.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사랑과 정성 면에서 말이다. 가난해지지 못하니, 배우기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