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친해질수록 동굴이 좋아진다

에세이

by 주단

요즘 글 쓰는 일이 의무처럼 느껴지면서, 자꾸 동굴 속을 찾아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글 쓰기도 바쁜데, 모임이랄지 사람 만나는 일이 왠지 번거로운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거다.

그렇다고 사람을 대하기 어려워한다거나 모임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대학 입학 후 첫 아르바이트를 아버지가 일하시는 출판사에서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영어교재 교정 보는 일을 하면서, 사무실 안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놀란 듯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는 말 한마디 안 해서, 입에서 군내 안 나느냐는 소리를 듣던 아이가, 밖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람들과 잘 사귀냐면서.

그때 깨달았다. 내가 사람들과 빨리 쉽사리 친해진다는 것을.


출판사 일을 하시는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접하고 살았다.

좀 더 커서는 글 쓰는 일, 특히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글로 분석하는 일에 심취하면서, 입을 닫고 살게 되었다.

말로 상처받고 상처 주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글을 쓰고, 그 글로 사람들의 심리를 해부하다 보면,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사람들의 실수 대부분은 말에서 일어난다.

글은 맘에 안 들면 고치고 다시 쓰는 일이 가능하지만, 말은 내뱉는 순간, 주워 담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이 많아질수록 상처 주고 상처받는 일이 빈번해진다. 그리고 그에서 미움과 불화가 생겨난다.


이를 깨달은 때부터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되도록 말을 줄이고, 주로 듣고 반응하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포인트를 찾아, 웃기는 말을 해서 배꼽 빠지게 해 주면, 사람들은 나와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인지 나는 친구 만드는 일에 급급해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과 쉽사리 친해질 수 있었으므로, 사람들과 멀어지는 일에도 별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다. 또 만나면 되니까.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쉽게 친해지는 내가 요즘, 글 쓰는 일을 의무화하기로 하면서, 사람 만나는 일을 극도로 줄이게 되었다.

생각하고 글 쓰고, 그 글 고치고 다듬기에도 바쁘고,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그렇다고 엄청스레 부지런히 쉴 새 없이 끊임없이 줄곧 열심히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일도 하고, 글도 쓰고, 먹고 살찌고, 쉬기도 해야 해서 바쁜 것이다.


MBTI는 내가 외향적인 e 라는데, 동굴을 좋아하는 은둔자인 내가? 싶다.

e성향은, 사람들 만나는 데에서 원기를 충전한다는데, 나는 읽고 글 쓰고 생각하며 충전한다.


어쩌면 글이라는 것도, 사람들과의 소통, 그것도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안전한 소통창구이기에 내가 택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사람들과의 대화이거나, 글을 통한 소통이거나, 사람을 좋아하고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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