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입장권

by 전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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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관리비와 도시의 기록

도시의 산책자가 있다. 그는 빌딩과 카페, 층간소음과 분리배출, 구두수선과 MRI, 목련과 플리마켓을 같은 무게로 응시한다. 전영관의 새 시집 『에덴 입장권』은 그 산책자가 도시의 일상을 ‘오늘의 기록’이라는 시선으로 더듬으며, 상품과 제도, 계절과 사물의 표면에서 오늘의 감정과 삶의 모습을 채집한 기록이다. 여기서 ‘에덴’은 구원의 언어가 아닌 거래로 발급받는 입장권의 형태로 주어지며, 행복은 결제와 환불, 배달과 반품, 관리비와 공지사항의 문장들 속에서 문득 흔들리는 목련처럼 피어난다.

이 시집의 특별함은 거창한 담론을 내세우지 않고 생활 속 단어들로 세상을 재측정한다는 점에 있다. 택배, 안마의자, 분리배출, 프레임, 서랍, 구두수선 같은 사물들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감정의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작동한다. 시인은 “타인의 슬픔에 참견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기준을 세우되, 그 문턱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인다. 방백처럼 낮은 톤, 때로는 건조한 유머, 명제와 이미지가 교차하는 문장들이 그 머뭇거림의 리듬을 만든다.


생활어와 도시의 장면들

표제작 「에덴 입장권」은 시집 전체의 관문이다. 부동산 중개인의 ‘달콤한 제안’은 “후미진 집을 한적하다고/ 비좁은 거실을 청소하기 편하다고” 포장한다. 현실의 팍팍함이 수사로 미화되는 순간, 시는 그 언어를 그대로 전시하여 아이러니로 전환한다. “고독은 일인 가구의 관리비 같은 것”이라는 문장은 이 시집의 미학을 압축한다. 이는 고독을 비용으로 환산하는 차원을 넘어, 혼자 살아가는 삶에서 고독이 관리비처럼 필수불가결하게 부과된다는 구조적 조건까지 드러낸다.

이러한 태도는 「오후의 크로키」에서도 확인된다. 야쿠르트 이젤, 체육관 전단지를 나누는 할머니, 스콘 부스러기를 터는 여자 같은 장면은 장황한 설명 대신 디테일 몇 개로 포착된다. “노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히치하이킹” 같은 낙차가 큰 비유가 장면 위에 얹히며 관찰과 윤리가 교차한다. 시집은 세태를 고발하지 않고,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참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태도를 보여준다.

자동차와 의료기기도 중요한 소재이다. 「정기검사」는 차량 점검과 관련된 단어들을 질병의 은유로 바꾸는 데서 멈추지 않고, 병과 기계 점검이 서로를 비추는 구조를 보여준다. 기계는 병처럼 진단되고, 병은 기계처럼 점검된다. 절망은 “아팠던 곳이 모두 다 기억나는 일”로 정의되는데, 이는 고통과 기억이 붙어 있는 방식을 시적 장치로 환원한 것이다.

「수동태」에서는 안마의자가 공범, 동지, 카운슬러로 불리며 물건이 인간처럼 호명된다. 동시에 인간은 물건처럼 수동적으로 놓인다. 인간의 수동성과 기계의 수동성이 겹쳐지며,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추상적인 진술은 곧 흘러가지만, 구체적인 손의 행위는 독자의 감각에 오래 남는다. 어루만지고, 닦고, 붙이고, 뜯는 반복이 바로 살아 있는 시간의 증거다.


침묵의 문법

교환과 연대의 장소들 또한 이 시집의 무대를 이룬다. 플리마켓, 책방, 피로연 같은 공간에서 돈의 가치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나눔의 감각이 드러난다. 「플리마켓」은 슬픔과 상처가 얼어붙어 더는 괴롭히지 못하는 곳을 북극의 빛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고통을 중지하는 장면이 아니라, 상처마저 거래와 나눔의 장 속으로 끌어올려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역설적 힘을 드러낸다.

「마르크스 책방」은 풍자와 유머가 빛나는 작품이다. “가장은 실외기 같은 존재”라는 한 줄은 가장을 비꼬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담함을 감당하는 노동의 그림자를 인정한다. 이 아이러니는 차갑지 않고 따뜻하다.

식물 또한 중요한 표현 방식이다. 「목련」은 하얀색의 폭발과 침묵의 기술로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그러나 “최고의 묘사는 침묵”이라는 선언은 어떤 절제의 미학을 넘어, 언어가 목련의 압도적 감각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자각에 가깝다. 「매화 알람」과 「해빙」은 계절이 오고 감정이 녹는 과정을 발송과 기술의 은유로 번역한다. 시인이 그리는 자연은 초월적인 배경이 아니라 생활의 작동 방식이다.

이러한 문체의 핵심은 생활어와 명제가 교차한다는 점이다. 생활어가 현재성을 확보하고, 그 사이사이에 “고독은 관리비” 같은 명제가 봉합선 역할을 한다. 나열이 길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 항목에서 낙차를 만들어 감정의 균형을 잡아준다. 무엇보다 설교가 아닌 습관의 윤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손의 동작이다.

결국 이 시집은 불행을 고발하거나 행복을 선전하지 않는다. 대신 불행의 체류 시간을 줄이고 행복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생활의 기술을 보여준다. 에덴은 약속된 낙원이 아니라 잠깐 열리는 생활의 틈 속에서 드러난다. 『에덴 입장권』은 과잉을 경계하는 눈, 명제와 이미지가 맞물리는 리듬으로 도시의 기록이 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 에덴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참견하지 않으면서도 무관심하지 않은 주의 깊은 태도 속에서 잠깐 열린다.

전영관 시인의 작업이 갖는 의의는 만만치 않다. 그는 세계를 웅대한 서사나 추상적 이념으로 재단하지 않고, 생활의 사소한 단어와 장면에서 시의 본질을 길어 올린다. 그의 시는 일상의 사물을 감정의 바로미터로 바꾸고, 언어의 습관 속에서 감각을 새롭게 세운다. 『에덴 입장권』은 도시의 사소한 풍경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이며, 오늘의 시가 지향해야 할 미학적 절제와 사유의 날카로움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성취다.


2025년 8월 20일 출간

펴낸곳/ 청색종이

지은이/ 전영관

118*184mm

172쪽

양장

정가 12,000원

ISBN 979-11-93509-18-0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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