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늦은 봄의 약속, 거제 동백숲을 걷다

꽃은 적었지만 바다는 더 깊었다

by 허정호

늦은 봄의 약속, 거제 동백숲을 걷다

몇 번이나 거제의 동백꽃구경을 계획했다가 시기를 놓치곤 했다.

“내년 봄에 가보자.”

그렇게 마음을 접어두었는데, 올해 동백꽃 개화가 늦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드디어 오늘, 거제로 향하기로 했다.

지심도나 내도로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뤘다. 오늘은 거제의 동백숲길 두 곳을 걸어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에 **별 그대 동백숲길(도장포 1길 50-4)**을 입력하고 차를 몰았다.

옛 거제현 관아가 있던 거제면 소재지를 지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여기서 점심 먹고 갈까?”

맛집을 찾으려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마침 장날이었다. 큰길 양쪽으로 길게 난전이 펼쳐져 있어 어디까지가 시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장터의 활기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작은 축제처럼 느껴졌다.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케일잎과 겨울초 두 봉지를 샀다. 국밥집과 횟집은 눈에 많이 띄었지만 정식집이나 비빔밥집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몇 번을 돌다가 결국 한 돼지국밥집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황태콩나물국밥을 주문했다.

황태와 콩나물이 듬뿍 들어간 국물은 맑고 시원했다. 담백한 맛이 속까지 풀어주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싸늘한 비빔밥보다 났다. 잘 선택했네” 하고 웃었다.

도장포 유람선 주차장에 차를 살며시 세워두고 가져온 사과와 배로 간단히 간식을 했다. 주차장 건너편 집들이 모여 있는 쪽을 올려다보니 오른쪽 언덕에 동백나무숲이 보였다. 이곳에 몇 번이나 와봤지만 늘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오늘에야 그 숲을 보게 된 셈이다.

울창한 동백숲을 바라보며 잠시 멈춰 섰다.

그런데 이상했다. 동백꽃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지?”

호기심 반, 의아함 반으로 데크길을 따라 올라갔다. 입구에는 **‘별 그대 동백숲길’**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고, 좁은 골목길 바닥과 담벼락에는 동백꽃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구경 온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동백나무숲 안으로 들어가자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 나무마다 모습이 달랐다. 어떤 나무에는 꽃이 하나도 없고, 어떤 나무에는 몇 송이만 달려 있었으며, 어떤 나무에는 아직 꽃봉오리만 맺혀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이곳의 동백나무들이 대부분 수령 300~400년이 넘는 고목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큰 동백나무들이 이곳에 있었구나.’

그 생각이 들자 숲이 새롭게 보였다. 모두 보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관리의 손길이 충분히 닿지 않는 듯해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유난히 붉은 꽃을 많이 달고 있는 나무 앞에서는 카메라 셔터가 자연스럽게 여러 번 눌렸다.

우리는 동백나무가 있는 골목 이곳저곳을 천천히 헤매며 숲을 즐겼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인 우제봉으로 향했다.

해금강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유람선 매표소를 돌아 산책길로 들어섰다. 유람선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과 갈라지는 지점에서 왼쪽 ‘힐링 동백숲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걸었다.

입구의 동백나무들도 역시 꽃은 많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꽃이 유난히 화려했다고 하는데 올해는 ‘해걸이’라도 하는 듯했다. 간간이 꽃을 많이 달고 있는 나무도 있었지만 대부분 꽃은 없었다.

우제봉으로 오르는 길 양쪽으로 동백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서 있었다. 숲길은 아름다웠지만 산책로에서는 꽃봉오리 하나 찾기 어려웠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힘들다며 돌아가는 젊은 부부도 간간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10여 분쯤 오르니 길이 완만해졌고, 숲 사이로 맑고 시원한 공기가 흘러들었다. 그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200m의 더 올라 우제봉에 도착했다.

1Km의 산책길 여유롭게 걸어서 30분이 걸렸다.

눈앞에 시원한 남해 바다가 펼쳐졌다.

가까이에는 해금강이, 오른쪽으로는 형제섬과 쥐섬, 소병산도와 누렁섬이 멀리 바다 위에 아름답게 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신을 벗고 우제봉 데크 전망대를 천천히 걸었다. 발밑으로는 나무의 온기가 느껴지고, 눈앞에는 쪽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해금강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남겼다.

돌아오는 길, 바람의 언덕에서 학동몽돌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14번 도로의 동백숲에서도 화려한 동백꽃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동백꽃이 없어 조금은 아쉬운 거제 나들이였다.

하지만 우제봉에서 바라본 거제의 쪽빛 바다, 그리고 도장포 '별 그대 숲길'에서 만난 보물 같은 수백 년 된 아름들이 동백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여행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꽃은 적었지만

그날의 바다와 숲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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