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내동, 봄이 먼저 피어 있던 홍매화 언덕에서
진주 내동, 봄이 먼저 피어 있던 홍매화 언덕에서
지난번 통영 동백카페에 함께 갔던 목사님 부부가 내동에 홍매화가 잘 피었다며 평일에 한번 가보라고 했는데 잊고 있었다.
휴일을 맞아 딸이 모처럼 KTX를 타고 내려왔다.
토요일을 함께 보내고, 일요일 아침은 늦잠으로 채우고 있는 딸을 보며 아내가 말했다.
“점심 먹고 내동에 매화 구경 갈까?”
딸도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에 사다 두고 남아 있던 떡국떡으로 점심을 끓였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한 그릇을 먹고 나니 마음도 가벼워졌다.
내비게이션에 ‘내동면 덕산리 948-4’를 찍고 길을 나섰다.
내동삼거리 교차로에 들어서자 차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줄지어 서 있는 차들 대부분이 우리처럼 매화를 보러 가는 길일 것이다.
신호를 몇 번이나 기다린 끝에 겨우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굴다리를 지나자 차들이 길게 멈춰 서 있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차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 많은 차들 속에서 어떻게 들어가란 말인가.’
이미 성질 급한 가족들은 차를 돌려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도 돌아가야 하나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앞차를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차들은 길가 빈 공간이 생기면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갔다.
주차된 차 사이로 사람들은 걸어가고, 그 사이로 또 차들이 비집고 올라가니 길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신강마을 입구에서 2차선 도로는 끝나고 좁은 시멘트 길이 이어졌다.
목적지까지는 약 800미터.
한쪽에는 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고, 앞서 간 차들은 빈 곳을 찾아 멈추다 보니 정체는 더 심해졌다.
‘절대 회차 금지’라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길이 좁아 올라오는 차량으로 내려가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때 길 아래쪽으로 붉게 펼쳐진 매화밭이 눈에 들어왔다.
앞차는 농장 입구에서 가족을 내려주고 위쪽으로 올라가 주차를 했다.
나도 매화밭 입구에 잠시 세워 아내와 딸을 먼저 내려주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주차 공간 하나가 비었다.
차를 세우고 내리려는데 야쿠르트 아줌마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앞으로 당겨주시면 차 한 대 더 댈 수 있어요.”
차를 조금 더 앞으로 밀었다.
내리자 그녀는 고맙다며 밝게 인사를 건넸다.
그 짧은 인사가 왠지 모르게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농장 입구에서 내려다보니 숨이 잠시 멎는 듯했다.
1만 평이 넘는 완만한 언덕이
붉은색, 분홍색, 하얀색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산책로 입구에서 바라보니 사람들로 길이 가득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화려한 꽃물결이 출렁이는 것 같았다.
홍매화는 이미 만개해 짙은 붉은빛을 토해내고 있었고
청매화는 이제 막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진한 매화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마음까지 꽃으로 물드는 기분이었다.
이곳의 매화는 인위적으로 꾸며진 정원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모여 살아온 나무들 같았다.
농기계가 다니던 길을 산책로로 만든 듯 경사가 완만해서
누구나 천천히 걸으며 꽃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마 매화 묘목을 키워 판매하려고 심어 두었던 나무들이었을 것이다.
그 나무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고 있으니
농장 주인에게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 들어왔던 입구로 돌아와
꽃으로 수 놓인 언덕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아쉬움이 남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3일 후, 수요일.
아내가 말했다.
“언니, 형부 모시고 한 번 더 가보자.”
처형과 형부를 태우고 다시 매화 농장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차는 막히지 않았다.
원강마을 입구까지 한 번에 도착했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시작되는 곳에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지만
우리는 농장 입구를 지나 조금 위쪽에 주차할 수 있었다.
차에 내려 매화농장으로 걸었다.
왼쪽 밭에는 감자를 심고 검은 비닐을 덮어 놓았고
오른쪽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매실나무들이 하얀 꽃을 가득 피운 채 우리를 맞이했다.
먼저 내려간 아내와 처형 뒤로
형부가 검은 비닐봉지를 뒤적이며 말했다.
“이거 먹어봐!.”
미니 뻥튀기와 땅콩강정이었다.
봄바람 속에서 먹는 그 소박한 간식이 이상하게도 더 맛있었다.
3일 전과는 풍경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홍매화는 살짝 지기 시작했지만
그 짙은 색감은 여전히 화려했고
청매화는 만개해 서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어쩌면 아직 손질되지 않은 모습이라
더 자연스럽고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
처형은 좋은 곳에 데려와 구경시켜 줘서 고맙다며
붕어곰탕 한 그릇을 사주었다.
따뜻한 국물을 먹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봄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족과 함께 걸으며
꽃을 바라보는 순간 속에
이미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