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씨릉섬에서 만난 바다의 숨결

거제 칠천도 출렁다리를 건너며 걷는 작은 힐링 여행

by 허정호

거제 칠천도 출렁다리를 건너며 걷는 작은 힐링 여행

2026년 2월 28일.

거제의 동백꽃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바람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별 그대 동백숲길’을 향해 출발했지만, 거제대교를 지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칠천도의 출렁다리가 문득 떠올랐다. 그렇게 여행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칠천도로 향했다.

거제시를 지나 연초면 삼거리를 지날 때 ‘대금산’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오래된 기억이 스쳤다. 20여 년 전, 진달래가 피는 봄이면 몇 해 동안 빠짐없이 찾았던 산이다.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올해 봄에는 다시 한번 대금산의 진달래를 만나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곧 칠천대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미리 눈여겨보았던 식당이 오른편에 나타났다. 아직 점심시간이 조금 이르지만, 괜히 배가 고파지는 기분이었다. 토요일이었지만 주차 자리가 몇 군데 남아 있어 어렵지 않게 차를 세울 수 있었다. 근처에는 제법 큰 카페도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씨릉섬으로 이어지는 출렁다리는 다른 곳과는 조금 달랐다.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다리는 바다와 섬 풍경과 잘 어울리며 한층 더 멋스러워 보였다. 경사진 다리를 오르며 걷는 느낌도 색달랐다. 약간의 아찔함이 더해졌고, 내려올 때는 다리의 흔들림이 발끝에 전해졌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쪽빛으로 빛나는 바닷물이었다. 맑고 깨끗한 바다는 그 자체로 마음을 맑게 해 주었다.

씨릉섬에는 재미있는 전설도 전해진다. 죄를 지어 이곳으로 쫓겨난 옥녀가 무료한 세월을 달래기 위해 거문고를 타면, 섬이 즐거워 “씨릉 씨릉” 소리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섬을 ‘씨릉섬’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듣다 보니, 정말 어딘가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나무 길을 지나 걷다 보니 황토길이 나타났다. 돌아가기에는 번거로워 그대로 걸음을 옮겼지만, 전날 내린 비 때문에 길은 이미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결국 신발에는 황토가 잔뜩 묻어버렸다. 잠시 난감했지만, 그것도 여행의 한 장면이라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황토길을 피해 걸음을 옮겨 거문고광장에 올랐다. 그곳에서 큰북광장까지는 시멘트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걷기가 한결 편안했다. 길을 따라 펼쳐진 울창하고 우람한 소나무 숲이 우리를 반겼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소나무들도 옥녀의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함께 즐거워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큰북광장에서 몽돌해변으로 내려가는 쉼터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바람에 실려오는 소나무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바닷가로 내려가 보니 이곳저곳 떠내려온 쓰레기들이 조금 아쉬웠지만, 잔잔하게 펼쳐진 해안은 여전히 포근하고 정겨웠다.

이어 초록바람쉼터로 향했다. 거리는 400m 남짓 짧았지만, 소나무 숲이 우거진 이 길은 씨릉섬에서 가장 힐링되는 구간처럼 느껴졌다. 쉼터 전망대 주변에는 동백꽃이 곱게 피어 있었고,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다시 큰북광장에서 달빛마루 전망대로 올랐다. 3층 구조로 만들어진 전망대는 약간 흔들려 마치 또 하나의 출렁다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괜히 다리가 후들거려 오래 머물지 못하고 서둘러 내려왔다.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며 집라인 놀이기구를 잠시 타 보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오색숲길을 따라 물빛광장을 지나 다시 출렁다리로 이어졌다. 섬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어느새 마음까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점심은 칠천대교를 건너며 봐 두었던 식당에서 해결했다. 평범한 백반이었지만 생선과 시래기국, 그리고 해산물 반찬까지 더해져 소박하면서도 든든한 한 끼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차를 칠천량해전전시관으로 돌렸다. 그곳에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크게 패했던 칠천량 해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역사 속 아픈 장면이 마음 한켠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전시관 공원에는 홍매와 동백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붉은 꽃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그 쓰라린 역사의 기억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날의 여행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바다와 숲, 그리고 작은 전설과 역사가 함께 어우러진 조용한 하루였다. 씨릉섬의 바람과 소나무 향기, 그리고 쪽빛 바다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다시 걷고 싶은 길로 기억될 것 같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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