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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놓고 기다리기만은 할 수 없으니까

본업과 부업

by 세르게이홍

양육비 끝끝내 받고야 말리란 결심은 변함이 없지만 당장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아이들 학원 하나둘씩 줄여가며 같이 고통을 감내하자 하고 싶지 않아서.

언제까지 메가캥거루처럼 친정부모님께 의지할 수 없어서.

월급을 아끼고 아껴도 계속 마이너스가 나고 있어서.

...

...



여러 가지 이유로 본업 외에 부업을 하나 계획 하고 있다.

브런치를 계속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짜잔! 하며 소개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


나의 첫 직장은 L그룹 해외영업부 였다. 아이템을 밝히는 순간.. 사명이 나와버리니 넣어두겠다. 유학하다 한국에 와서 다시 대학을 편입하고 친구들이 다 지원하는 공채에 따라서 지원했다. 공부를 더 해볼까 중국에 가서 있어볼까 했지만 제일 친한 친구들이 가는 길을 따라갔다.


단 한번도 해외 출장을 가보지 못했다. 입사하니 선배들이 전부다 남자였다.

선적서류나 다른 준비를 도와주는 지원사원들이 있었지만 공채 선배들은 단 한명도 빠짐없이 남자였다. 당시 24살이었는데 아무도 나를 데리고 해외를 가주지 못? 안?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사님 딸하고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나 열심히 일하고 때로는 힘들어서 울고 할 때 이사님 딸은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물론 나보다 훨씬 좋은 대학교였지만...

맨날 애 취급하는 상사와 대부분이 우리학교출신인 부서 선배들 사이에서 일다운 일은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어깨넘어 배우고 듣고 살았던 최초의 일다운 일이 그거라고 부업도 그렇게 찾았다.



물리학에 총량의 법칙이 있다. 결국 전체적 수량과 무게는 같다.

행복도 불행도 인복도 전부.

나는 시가 복은 정말 빻고 빻고 빻아서 우주의 먼지를 구성하는 나노입자보다 못했다.

남편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반제품을 사서 조립이 끝나고 튜닝이 끝나자

엥?!!? 스스로 자유와 행복과 본능을 부르짖으며 우리 모두를 뒤로하고 떠났다.


평생을 살며 인복은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오랜 유학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일들 나쁜사람 좋은사람 만나봤지만 불구대천원수를 삼아 지구종말에 단 둘만 남아있어도 결코 말 한마디 걸지 않으리란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 지금까지 살며 이런 인간들은 처음이었다.

이것은 똥인가 된장인가


극한직업.png





결혼생활을 이어가며 늘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먼저 이혼을 하려 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먼저 이혼하겠다고 가정법원 오픈런이 아니라 전날부터 그 앞에서 1인용 텐트를 치고 자빠져 있었을텐데 말이다.


결혼의 시작은 사랑이다. 백프로 본능과 화학작용이라 생각했다.

연애결혼 이었기에 그 외에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았던게 패인이랄까...


결혼의 유지는 책임감과 애증이다. 완전히 다른 두사람이 함께 사는데 그 어떤 일들이라고 생기지 않으랴. 그치만 증오 뿐이 아닌 사랑약간에 증오약간이 버무려진 책임감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굳이 모셔다 놓고 그 앞에서 선서를 하고 오바육바쌉바를 떨며 결혼식을 하고. 국가에 혼인신고를 한 것에 대한 책임감이다.


특히나 아이가 있다면 나는 폭력이 아닌 이상 정말 이혼을 말린다.

(때리는 폭력년놈들은 바로 헤어지는게 답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날 나쁜날이 다 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단 한면만 볼것이 아닌것처럼 오늘 나쁜 부부사이가 계속 나쁠 수 없다. 서로 적응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나가면 몇십년 뒤, 결국 “그때 참 잘 했다” 라고 마무리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개는 (걔개개걔) 박사과정을 먼저 마치고, 억대연봉의 회사로 이직하고 나자 갑자기 나타난 여자문제.. 하... 그래도 어떻게든 상간소송만 하고 가정을 유지해보려 했는데


응? 이혼소장을 보냈어???

니가? 내가?


그렇게 이혼소송이 시작 됐고, 미친 법덕에 나는 재산분할을 꽤 많이 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양육비는 하하 못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먹고 살기 위해 부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직무따라 계속 커리어가 이어져 나간다는데 난 첫 직무도 “술은 장모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다. 그래서 니네 선배들이 널 데리고 회식을 한다. 해외영업? 결국은 여자가 하면 몸파는거다” 라는 개논리로 지금의 직장에 오게 되었다. 원망은 안한다 27살의 나는 그말에 결국 휘둘려 자의로 회사를 그만두었으니까.


인복덕인지 뭔지, 해외에서 사업하는 대학교동창이 좋은 기회를 주었다.

몸빵만 하면 된다. 자금도 대주고 의사결정도 도와준다. 한국에서 직접 발로 뛰는 일이 어려운 친구라 이런 기회가 왔다.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 잘해야지. 언젠가 브런치에 짠! 이게 내 부업이었어요! 하고 공개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며칠째 브런치를 쭉 써오고 있다. 출근해서 오전에 급한 일이 있었지만 오늘도 퇴근 전엔 짧은 브런치를 남기고 간다. 잘하고 있어! 이번주도 꽉 채워 다 쓰고나면 나도 정말 연재를 해볼까 싶다.



오늘은 소송에서 좀 멀어지나 숙제가 없나 했더니 좀 전에 강제집행사건에 보정명령이 나왔네..

하루도 벗어날 수가 없구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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