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거주지의 중요성은 그 익숙함만큼이나 피부로 와닿기가 참 어렵다. 주거지를 옮겨보고 전과 후를 비교하며 비로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조금씩 알게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자의든 타의든 거주지를 자꾸 바꿔 경험하는 것도 좋은 배움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편. 한 집 한 집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 버티려고 한 기억은 지금의 삶을 만족하고 감사해 하는 동력이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중간중간 덜컹거리기는 했으나 어쨌든 삶이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기에 망정이지 아차하는 순간 멘탈을 잃어버렸으면 또 어쨌을까. 아찔하다.
그렇다고 이제 겨우 50줄에 들어선 내가 남은 삶을 편하고 발전적으로 살 거라는 보장은 없다. 남은 삶에 어떤 위기가 올지도 모르고 불행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게 두려워 앞날을 걱정만 하며 살 수도 없는 법. 그저 피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견디고 대응하며 살 뿐이다. 지름길도 없고 편한 길도 없다는 것. 고생한 만큼 어려운 일이었던 것 만큼 얻는 것도 기쁨도 그만큼 컸다는 것. 그 동안 여러 우리 집을 겪으며 배워 온 것 아닌가.
어찌 보면 허름한 집에서 태어난 것은 낮은 출발점에서 시작한 산행처럼 올라갈 가능성이 그만큼 많은 것이니 그 또한 행복한 일 아닐까. 인생은 절대적인 높이가 행복을 결정하거나 삶의 의미를 다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성취감. 삶에서 남는 유일한 가치가 아닐까 한다. 소시민으로서 짧은 인생 경험으로 내가 생각한 삶의 의미다. 이게 곧 행복 아니겠나. 그 점에서 내가 어디서 출발하는냐는 그저 출발점의 문제 혹은 다양성의 문제일 뿐 삶의 의미를 가르는 척도는 되지 못한다. 내가 출발한 이후 내가 어떻게 살아 삶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성장하느냐와는 별개니 말이다.
하튼 나의 앞으로의 집은 또 어떨지 나는 아직 모른다. 결국 나는 죽게 되어 있으니 요양원이 생전 마지막 집이 될 수도 있고 집이 아닌 객지가 나의 마지막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 나는 편안해질 것이고 지난 기억도 회한도 기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내가 될 것이다.
지금의 나의 집도 잠시 스쳐 지나가는 그저 잠깐의 공간일 뿐이다. 그저 존재하는 지금을 감사할 뿐이고 언제든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해보니 지금의 이 공간이 그렇게 좋고 행복할 수가 없다. 대충 그럼 살만 한 것 아닌가.
집은 내가 자고 쉬고 밖에 나가기 전 정비를 하는 공간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갈기갈기 찢긴 맘을 다스리고 위안을 얻고 고요함을 음미하며 회복하는 공간이다. 그러고 나면 또 다시 힘이 생기고 세상에 나가 당당히 그리고 별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또 하루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집은 중요하다. 삶을 온전히 유지하려면.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화려할 필요도 클 필요도 없고 그저 내맘 온전히 풀어 놓고 정비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것도 죽기전 아주 잠시 뿐일 테니. 그런 점에서 나는 나의 우리 집, 나의 공간을 사랑한다. 끝. (악필, 202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