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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야산다] 시작은 하프다 1

지난날의 달리기

by 악필

이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지 4개월 정도가 지났다. 동기는 그저 허리 재활 차원에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에서였다면 지금은 그때의 마음가짐과는 상당히 다른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제 나이 50. 삶에 있어서도 적당히 반쯤 왔고 나는 또 다른 반을 위한 출발점에 서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그렇게 싫어하진 않았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전화가 없던 때부터 어른들의 심부름을 위해 집 앞 논두렁을 강아지처럼 달려 다니며 지낸 걸로 봐서도 그랬고, 전화가 생긴 후에도 이런저런 물건 심부름 때문에라도 뛰어다니며 나의 순식간의 이동성에 대해, 나의 빠르다는 착각에 취해 자체 도파민을 느끼며 달린 걸 보면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임에도 그 무렵의 LA올림픽 육상경기를 심취해 봤던 걸 생각하면 또한 그랬다. 칼루이스는 나의 영웅이었고 장재근이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은 동급생들에게 몇 명씩 모아 100미터 달리기를 시켰고 그중에서 4명을 뽑아 육상부를 강제 가입시켰는데 나는 턱걸이로 육상부가 되었다. 나는 당시 다리가 휘어(오다리, 당시엔 몰랐다.) 효율적인 러닝이 되지 않았음에도, 선생님은 3등이 아니고 굳이 4등까지 뽑아 내가 원치도 않는 육상부에 가입시키고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선배들은 육상부가 없었던 거로 봐선 우리 때 급조한 거 같았다.)


4학년때는 체육 전문 선생님한테 넘겨져 더욱 무섭고 두려운 훈련은 계속해야 했다. 아침마다 ‘빠따’를 맞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보다 한 시간 일찍 등교해 운동장을 여러 바퀴 돌고 토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식한 시대였다. 심지어 나는 대회도 한 번 못 나갔는데 그랬다(당시는 모두 단거리 중심이었다). 성적도 신통치 않고 이런저런 핑계로 빠지려고 노력하는 걸 보고서 그랬는지 5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육상부에서 해방되었다(육상부가 사실상 해체되었다).


그 뒤로 새로 재미를 붙인 씨름을 하며 군 대회 입상도 했으니 운동 소질이 없었던 건 아닌 듯하나 역시나 부실한 몸매와 영양 부족 등으로 새롭게 기술을 익힌 힘 있는 친구들을 상대하긴 어려웠다.

그 뒤로 운동부는 절대 안 하기로 결심. 공부를 시작했다. 운동보다 훨씬 쉬웠다.


중학교 때도 체육선생님이 동급생들을 일괄적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시키는 일이 있었는데 과거 기억이 떠오른 나는 정말 힘 빼고 천천히 뛰었다. 육상부 시킬 것 같아서. 내 감은 맞았고 선생님도 나의 꾀를 (아마도 체형 때문에) 알아챘지만 그냥 두셨다. 난 운동부가 싫었다.


고등학교 때. 여전히 부실한 체형과 불충분한 영양으로 비실비실한 청소년이었지만 대입을 위한 체력장에서 나의 장기는 나와 버렸다. 오래 달리기가 쉬웠던 것. 마른 체형에 제격이었나 보다.

대학교 때. 나는 이런저런 방황하다 결국 산악부에 들어갔고 장기 산행을 위한 훈련으로 오래 달리기를 했다. 감이 죽은 건 아니었지만 그저 훈련일 뿐이었다.


그리고 히말라야 등반을 가게 되었을 때, 고소 적응과 체력 단련을 위해 달리기를 했다. 많을 땐 아침저녁으로 16킬로씩(400미터 트랙 40바퀴) 뛰며 러너스 하이 비슷한 걸 느껴 보기도 했다.

그 무렵 대학산악연맹 체육대회에서 마라톤 3위 입상은 내가 달리기로 얻은 최고의 성과였다.

그렇다고 달리기가 좋았던 건 아니다. 역시나 그저 훈련일 뿐.


이후 히말라야 등반 중 발생한 부상 회복을 위해 또는 떨어진 체력회복을 위해 종종 뛰는 일은 있었지만 가뭄에 콩 나듯.

졸업 후. 우여곡절 끝에 입사를 해서 약간은 반 강제적으로 하프마라톤을 한 참여한 적이 있다. 한 19년쯤 전. 막판 5킬로쯤 전에 걷다 뛰며 간신히 완주하긴 했다. 기록은 2시간 정도. 그 뒤로 한 번 10Km를 참가한 이후 달리기는 접었다. 무릎에 무리가 간다는 자체 판단과 마라톤은 몸을 망친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 뒤로 돈을 들여 가끔씩 헬스장도 가고 골프도 치며 산 게 운동의 전부. 결혼 육아 시기에도 가끔 동네 천변을 걷거나 달리기는 했지만 본격적이지도 않았고 그저 소화를 시키고하자는 수준에 불과했다.

나이가 들어가고 허리에 이상이 와 다시 등산을 하며 몸이 회복됨을 느끼긴 했지만 달리기 없이 지속할 수는 없었다.


달리기의 중요함을 알았지만 또 얼마 하지 못하고 하다 말다를 반복했다.

당시 나의 페북에 썼던 내용(202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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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야 산다>

한때, 나름 건각의 몸을 뽐내던(?) 내가 달리기를 소홀히 한건, 돈을 들여 운동을 하면서부터다.(초반엔 그래도 기본에 충실하고자 러닝머신을 애용했다)

소위 ‘돈 들어가는 운동’에 더 시간을 뺏기다 보니 달리기는 점점 더 멀어져 갔고 몸의 균형은 점점 더 무너져 갔다. 더 많은 돈을 들여 운동을 했지만 훨씬 더 많은 돈을 병원에 바치는 꼴이 되었다.

그래도 한 동안을 달리기 없이 버텼다면 그건 오로지 과거 저축해 놓은 달리기 덕일 것이다.

달리기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

달리기의 바탕 없이는,

등반도, 골프도, 수영도, 심지어 음주나 독서도, 그 외 무엇도 몸의 균형을 오래 유지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사상누각일 뿐.

미세먼지가 양호하다면,

지금 당장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안양천으로 달려가야 한다. 달려야 산다.

Back to the ba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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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중요한 건 역시 실천이다. (악필, 202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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