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by 유소이

내가 아버지를 이렇게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내 곁에 없었던 아버지

그래서 정말 많이 미워했었는데......


아버지를 기억하면 웃음소리가 떠오른다

너털웃음

근심 같은 건 없을 것 같은 커다란 웃음소리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띤 얼굴과 정월초하루'라는 별명처럼 이웃을 챙기던 모습


그리고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말이 생각난다

70년대 동네를 달리던 말을 보는 건 희귀한 풍경이었다

만석꾼의 장손인 아버지는 한 몸처럼 키우던 애마가 있었다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에 앞발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던 그 애는 가세가 기울어 인근 호텔로 팔려갔다

또 하나의 기억은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교단에 서서 지휘를 해야 하는데 옷이 없어 우울해하는 내게 아버지가 처음으로 사준 파란 재킷이 떠오른다

현실감각 없이 무능력한 가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신 재주 많은 아버지

끝내 나와 우리 가족을 버려놓고 떠나가신 미운 아버지


스무 살의 내가 호텔 라운지에서 연주하며 노래할 때 초라한 행색으로 찾아오시던 중년의 아버지

막내딸이 그리우셨는지 반기지 않는데도 열심히 찾아와서는 목소리 한번 듣고 돌아가시던 뒷모습


인생의 파도에 휘말려 오랜 세월을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다

애써 외면한다는 말

불편한 마음에 난 그냥 아버지가 없는 심정으로 살았나 보다


낙오자가 되어 객지로 떠나가서도 아버질 잊고 살았다

요양원 관계자의 연락을 받고 찾아갔을 때 나를 못 알아보시던 아버지......"누구세요" 그 말 이후 아버진 말을 잃었다


그날로부터 1년 동안 먼 거리를 오가며 아버지와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정신줄을 놓으신 아버진 나를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맨발을 어루만지고 작아진 몸에 내 옷을 입혀드렸다


나는 아버지께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날들을 허비했던 것 같다

가장 큰 사랑을 넘치게 받았고 노래할 수 있는 재주도 받았는데 말이다


무명가수인 내게 어느 날 해주셨던 그 말씀

"들꽃도 향기가 깊으면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단다

아가, 우리 아기는 들꽃이야 "

아버지를 작은 항아리에 묻고 돌아오던 날은 세상이 요만해 보이고 그렇게 눈물이 쏟아질 수가 없었다

저렇게 살다 가실 양반이 아닌데...... 조문객들의 쓸쓸한 뒷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도 슬프게 먼 길을 가셨을까


세상에서 제일 특별해 보이던 내 아버지

그러나 현실에서의 그 어떤 어려운 고개에도 함께 서 있어 주지 않았던 분

그래서 원망했다

미워한다고 정해놓고 내 맘을 꽁꽁 묶어놓았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랑한다고 천 번 만 번을 외쳐주신 유일한 분이다

세상 그 누가 내게 그 사랑을 가져다줄까

그걸 왜 아니라고 부정했을까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하면 될 것을 왜 아니라고 억지를 부렸을까


아버지도 아버지 노릇이 처음이었는데 내가 너무 야박했다

난 이제야 아버지가 보고 싶다

너무 그립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있을 때 예쁜 미소로 답해 드리지 못한 것이 깊은 후회로 남았다


나를 최고의 가수라고 여겨주시던 울아버지

그 초라한 영전에 노래 하나 들려드리고 싶다

기타를 치며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박인희의'세월이 가면'을 부르면 작은 별이 되신 아버지가 들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승을 떠나셨지만 내 마음에 살아계시는 아버지.

지친 몸 누이신 거기서 부디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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