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바로 아버지도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해서 시간이 없어요.”
“그래도 점심은 아들하고 한 끼 해야지. 나이 더 들면 그렇게 못한다.”
“아이고 예 그럽시다. 저기 설렁탕집으로 갑시다요.”
주차장에 차가 들어서자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 설렁탕 세 그릇을 주문했다. 잘 걷지 못하는 어머니를 남편과 양쪽에서 부축해서 현관문에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사장님께 앞치마를 부탁하고, 가위와 집게를 들어 어머니의 뚝배기에 들어있는 당면과 고기를 잘게 가위질했다. 소금과 후추를 넣고 밥을 말았다. 비쩍 마른 체구에 파킨슨으로 손을 떨면서도 어머니는 입술을 쭉 내밀어 뜨거운 국물을 연신 마셨다. 그리고 쉼 없이 숟가락질을 했다.
“어머니 말씀대로 밥을 먹고 가길 잘했어요. 저희도 샌드위치로 때우려다 덕분에 맛있는 설렁탕을 먹었네요.”
국물도 남기지 않고 한 그릇을 다 비운 어머니를 보며 놀래기도 했고,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고집을 피워 지체된 상황이 원망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남의 말이 뭐가 그리 중요해 자녀들을 곤란하게 하는가 싶으면서도, 입장을 바꾸니 그럴 수 있겠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 같다. 내 아이들의 일이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요청을 들어주었을 나다. 가까운 친구가 부탁했어도 흔쾌히 배려해 줄 나였지 않을까.
병원 진료를 마치고 어머니를 요양원 내부까지 잘 모시는 남편의 뒷모습이 듬직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부모에게 잘하는 아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절친한 효자 청년에게 결혼 후에는 그러지 말라고 조언을 했던 과거 일이 기억난다. 그런데 아내에게 더 잘하는 효자라면 이제 찬성하고 싶다. 너무 이기적인가 싶으면서도 지금은 남편이 부모에게 잘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인다. 아마도 청년 자녀들이 있어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게 되어 그런가 싶다.
시부모님이 병원에 갈 때는 휴가를 내어 동행하고, 부모님의 불편한 전화는 본인이 다 받아낸다. 아내에게 짐을 넘기지 않으니 옆에 있는 나는, 그의 옆에 동행하는 일이 힘겹지 않고 가벼워졌다. 25년이 흐르는 동안 눈물과 논쟁 가운데 이루어진 평화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연습을 계속하고 훈련한 덕분이기도 하다. 물론 그 훈련은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부모보다 배우자를, 타인보다 가족을 배려하는 일 말이다
병원에 가기 위해 혼자 점심을 먹고 대기 중인 시아버님을 모시러 가면서 30여분 남편과 대화가 이어졌다.
“가족에게 잘하는 당신 모습이 좋아 보이네.”
칭찬받는 어린애 마냥 남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만지작 거린다.
편한 복장으로 준비를 마친 아버지는 양손에 지팡이를 의지해 절룩거리며 뒷좌석에 올랐다. 장애인용 스티커가 붙은 아버지의 가스연료 소나타로 이동한다. 대학병원에서는 지상에 여유 있게 주차가 가능하다. 아버지는 낙상과 반신 마비 이후 장애인 차량을 사용하며 평소 병원과 교회 등 원하는 곳은 운전해서 이동한다. 아버지의 다리가 되어주는 까맣고 빛나는 녀석이 기특하다.
아주대 신경외과에서 오랜 시간 대기했다. 의사와 면담을 하고 약국에 들렀다 나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아버지는 밖에서 저녁을 먹고 갈까 물으신다. 시댁 근처 유명한 감자탕 집으로 들어갔다. 해장국 세 개를 시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니 배려가 감사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을 때는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은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저녁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하루 동안의 피곤함이 다 씻기는 듯했다. 식사 후 아버지는 남편에게 계산서를 넘기신다. 남편에게는 주차장에서 차를 빼오도록 하고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가며 웃으면서 아버지께 말했다.
“수고했다고 아버지께서 밥을 사주시는 줄 알았어요.”
옛날 그 무서운 카리스마의 아버지가 더 이상은 아니다. 아버지도 이제 며느리를 조심스러워하신다는 것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러니 오십이 넘은 며느리는 일부러 웃으면서 하고 싶은 말 정도는 전달한다.
지팡이를 짚고 나오는 아버지 뒤를 따르며 자동문을 함께 통과한다. 남편이 몰고 오는 차가 도착하는 동안 도로변 좌우 안전을 체크한다.
불을 끄고 침대가 없는 시댁 작은 방바닥에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누인다. 남편과 나란히 누우니 속상함이 자꾸만 입 밖으로 나온다. 시부모님의 불편한 행동들이 보이면, 남편은 죄인의 자세로 조용히 듣기만 한다.
“며느리가 오면 불편해한다는 요양사 이모님을 쉬게 해 주고, 지난번 그만둔 요양사 이모님은 밥도 사주신다는데... 며느리는 장 봐서 냉장고도 채워놓고 집안일하고 병원도 따라가는데... 고맙다는 말씀도 없고, 나는 뭐 자원봉사자인가? 요양사는 돈 받고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거잖아. 나는 수고했다고 우리에게 저녁을 사주시는 줄 알았지. 섭섭하다 여보. 요양사에게 줄 물 건너온 커피도 가져오라셔 놓고...”
“그러게...... ”
“가족끼리 잘하자. 가족에게 더 예의를 지키고, 더 잘 하자 여보.”
결혼 후 명절이면 친정이 아닌 시댁을 먼저 가야 했던 시절이 조금씩 변화되는 요즘이다. 자녀들과 며느리를 어려워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 중간인 과도기에서 현재의 변화를 눈으로는 보면서도, 현실은 내게까지 이루어지지 않는 시기를 살아간다. 내 마음에 상처는 받지 않도록, 웃으며 표현을 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이런 불평을 들어주는 남편이라 다행이고, 가끔 할 말을 웃으면서 돌려 말할 수 있는 중년이라서 다행이다. 어찌 되었든 가족 간에 서로 예의를 지키고 귀한 손님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으면 좋겠네. 80이 넘으신 부모님들은 바뀌기 어려우니 50대인 우리 부부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계속 바뀌려 해야겠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 요양원에 계시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고맙다. 오늘 수고가 많았다."
파킨슨으로 자신에게만 온통 집중하시던 어머니가 옛날 그 다정하던 목소리로 전화하셨다. 아, 그냥 피곤과 짜증은 다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