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새벽 ktx를 타고 서울 출장을 가던 남편은, 금요일에 휴가를 냈다. 그리고 토요일 밤에 녹초가 되어 내 곁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자신이 젊은 청춘이고 튼튼한 무쇠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도시로 이사한 시댁에 혼자서도 들러 모든 심부름을 하고 돌아온다. 맏며느리는 큰 행사와 부모님의 병원일로 필요할 때만 동행하게 한다. 자신의 부모님을 알아서 책임지려 애쓰는 그가 고맙고 애잔하다. 나중 알고 보니 서울에 간 내내 보행에 장애가 있으신 시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고 온 듯하다. 아가씨와의 카톡내용을 우연히 보고 알았다.
그는 벚꽃 구경을 하러 매일 산책 떠나는 아내를 보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했던 것 같다. 연신 꽃 사진을 찍어대며 환호하는 아내를 보며 좀 더 젊은 날 고생하셨던 어머니를 기억한 것 같다. 그가 전한 이야기를 통해 그의 착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여기 어머니랑 찍은 사진 있는데 보여줄까? 저장할래?”
“어, 아가씨 네도 같이 갔네? 자기는 어쩜 꽃구경 시켜드릴 생각을 했어?”
“미애 부부가 요양원에 온다길래, 먼저 어머니 모시고 근처 벚꽃 명소로 가서 그리 오라 했어.”
"잘했네."
“벚꽃 보러 간댔더니 가족들이 뭐라는 줄 알아? 아버지는 어머니가 벚꽃이 뭔지도 모른다 하시더라. 그리고 미애는 엄마가 그런 거 안 좋아한대. 그래서 내가 한 소리 했어. 엄마도 꽃을 좋아하는 여자라고.”
목소리가 커진 남편은 다시 차분한 어투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꽃구경하는데 어머니가 자꾸 눈물을 흘리시더라.”
“좋아서 그러셨겠지. 아들딸이랑 함께 꽃구경 가서 감격하셨나 보다.”
“자신의 처지가 서러우셔서 우신 거 아닐까?”
“그러실 수도 있었겠네. 기저귀를 착용하고, 걷지도 못하니...”
“지난번 보다 더 못 걸으시더라고. 식당에 같이 가서 곰탕도 드셨어. 송 서방이 점심 샀어.”
“잘했네.”
나보다 세 살 많은 남편의 머리를 여러 차례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면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얌전히 동작을 멈춘다.
시어머니는 스물두 살에 옆 동네에 살던 가난한 8남매 장남에게로 시집왔다. 전라도 작은 시골집에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삼베를 짜서 대가족을 돕고 삼 남매를 키웠다.
파킨슨과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그녀는 항상 자신의 주머니에 돈을 굴릴 줄 아는 여자였다.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면서 며느리의 생일에는 봉투를 건넬 줄 아는 배려심 깊은 그녀였다. 노인대학에 갈 때면 목걸이와 반지를 끼고 빨간 립스틱도 발랐다. 함께 해외여행을 떠날 때면 오일장이 열리는 시내에서 예쁜 패턴이 들어간 옷을 한 벌씩 준비해 입는 나름의 멋쟁이였다.
남편의 사진 속에 보인 그녀는 짧은 커트머리 백발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는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농사지을 때와는 달리 하얘진 얼굴과 뼈만 남은 기다란 몸은 휠체어 공간마다 사지를 걸쳐 올렸다. 기저귀가 불룩 튀어나온 사진에 눈길이 가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어머니를 꼭 닮아 예쁜 아가씨와 잘 생긴 남편이 그녀의 휠체어 뒤에 서서 활짝 웃고 있다.
오십이 넘으니 여자인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시에 올라가 주간보호센터를 갈 때, 몇 군데 벗겨진 알 큰 진주목걸이를 하고 등원하더니 다음날부터는 불편해서 하지 않았다. 도시의 예쁜 할머니들 옷과 세련된 행동이 눈에 먼저 보이던 어머니, 그녀도 여자였다. 요양보호사가 아침에 밥을 하러 와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눌 때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싫어하던 그 마음도 이해한다. 내 남편은 온전히 나에게만 웃어주고 다정하게 해 주기를 바라는 여자인 것이다. 요양원으로 옮긴 후에도 남편을 기다리는 그녀, 외출할 때면 몇 벌 없는 중에도 옷에 신경 쓰는 그녀...
아이처럼 자신만 생각하게 된 그녀가 가끔은 불편하다. 그래도, 아직 여자이고 싶은 그녀의 질투 섞인 말들이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여자라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직 남편이 혼자서 밥을 해 먹고 빨래를 하며, 홀로 고생한다 생각하면서 불쌍히 여긴다. 자꾸만 내게 아버지 반찬과 국물을 챙기라고 잔소리를 더한다. 그리하겠다 대답하며 당신 마음 편하도록 우리 부부는 입을 다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