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할머니 제사에 꼭 올라오도록 하라는 강한 명령에 남편이 차분히 설득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근무 중인 내 남편 장남이 이제 막 수도권으로 이사하신 8남매의 맏이인 아버지와 대화 중이었다. 남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버지는 1층 아파트 공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셨다.
“이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라면 하는 거지 이 집안을 뭘로 보는 거야”
어떤 일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 채 화장실에 들어갔던 나는 손을 씻다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숨죽여 잠시 멈췄다. 결혼한 지 25년이 되는 지금도 부자간의 대화가 이렇게 밖에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해져 왔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게 수년 동안 꽂힌 아버지의 비수 같던 말들이 선명하게 다시 떠올랐다. 이젠 모두 잊어드려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부딪치지 않는 방법들을 체득하고 피할 길을 지혜롭게 만들어 간다고 뿌듯해하던 오십이 되는 나였다. 슬프고 서러운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는 이 시점에 아버지는 눈에 불을 밝혀주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들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친 거냐. ”
하와이 여행 중 한식당에서 소주잔을 들고 뜬금없는 건배사를 외치자는 할아버지가 창피하다며 화장실로 피하려 하는 중2의 손녀에게 소리를 지르셨다. 그때도 내가 아닌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며 식당을 큰소리로 가득 메우시던 아버지의 성난 얼굴이 떠오른다. 상황을 종식시키려 쥐어짠 눈물로 사죄드리며 아버지의 분노를 가라앉혀야 했다.
머릿속에는 그전에 있었던 다음 회가 이어졌다.
친정 부모님과 여행 중, 새해 첫날 아침 안부전화를 잊고 있다가 북경 호텔에서 시아버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디인지 캐묻는 질문에 거짓말을 못했다. 여행 중이기에 나중 전화를 약속드렸다.
입국 직후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식당에서 밥을 뜨는 동안 전화기를 가방에서 꺼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시아버지의 번호를 검색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사돈어른들 비행기 값도 너희가 낸 것이냐? 지금은 한국 돌아온 거 맞냐?”
무언가를 캐려는 듯 삐딱한 어투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 한 번도 거짓말 한 적 없어요. 여행을 간다고 미리 말씀 못 드린 건 죄송해요.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너무하시잖아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친절하고도 배려하는 어투는 빼고 현재의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려 몸을 곧추세웠다. 눈은 날카롭게 떠서 정면에 앉은 남편을 향했고 정신은 최고로 맑아졌다.
“죄송합니다. 먼저 전화 끊겠습니다.”
입에서 맴돌다가 차마 뱉지 못한 말들이 가슴에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당신들을 모시고 여행했었잖아요. 친정 부모는 우리 돈으로 모시면 안 되는 건가요? 저도 부모님이 귀하게 키워 가르친 딸이라고요. 남편과 저의 돈으로 사용하는 건데 그게 무슨 상관이신가요. 제가 당신의 취조에 왜 죄인처럼 답해야 하는 건데요...’
그날 밤, 아버지를 꼭 빼닮은 남편에게 이성적으로 따지고 사과를 받았던 말들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죄인의 눈과 자세를 하고서 미안하다고만 옆에 서성이던 그의 모습만 떠오를 뿐이다. 15년 전의 일이다.
바깥의 소란이 잠잠해지자 화장실 문을 열고 엷은 미소를 머금고 나왔다. 입은 꾹 다문 채 아침을 차렸다. 마지막 날까지 다툼이 나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했다. 그리고 우리가 시댁을 떠나야 하는 날 분위기 좋은 아침, 요양사 아주머니와 대화 중 입을 열었다.
“여기 아버님은 인품이 좋으셔서 화를 낼 줄 모르시는 것 같아요”
“아유, 우리 아버님 성품 정말 좋으세요... 그래도 하루 한 번쯤은 어머니 때문에 힘드셔서 화를 내시죠. 어제도 호통을 치셨는데요? 너무 무서워서 울 뻔했잖아요. 하하”
웃음과 당황 사이의 표정으로 서 계신 아버지께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 효자 아들에게 그렇게 소리치지 마세요. 제 신랑에게 그렇게 화내시니 정말 속상하더라고요.”
“말을 안 들으니까 그렇지 말을...”
“에이~ 오십을 훨씬 넘은 아들이 아버지 말씀을 어떻게 다 들어요. 호호”
“아버지, 아범은 인천공항에 잘 보내고 부산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아픈 어머니와 바쁜 친척들이 기어이 할머니 제사를 하겠다면, 부산에서 올라와 도우리라고 비워진 마음을 품고 현관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