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이 흐르면서 추석명절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추석

by Jina가다

시댁 잔디밭에 주차 후 가장 먼저 살펴보는 곳은 아버지의 화단이다. 맨 앞에 서서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대추나무는 올해도 주렁주렁 탐스런 대추알을 많이도 맺었다. 한 알씩 아래로 떨어지는 대추들을 받아주는 보호망이 넓게 버티고 있다. 다리가 불편해졌지만 부지런한 시아버지는 여전히 농작물을 능숙하게 다루신다.


오후에는 아버지 밭에서 농작물 수확하는 특권들을 누려본다. 큰 바구니를 들고 밭으로 가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 고구마 줄기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고구마 순 줄기들을 거두어들인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농산물을 챙겨갈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를 알게 되었다.





트렁크에 무조건 채워주시던 쌀과 고춧가루 그리고 배추와 양파 등의 농산물들은 거절하지 못해 신혼집으로 들고 와 짐이 되곤 했다. 김치 위를 덮은 하얀 곰팡이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서 처분한 일도 여러 번이다. 야채가 물러지고 고춧가루는 눅눅해져서 쓰레기통으로 숨긴 일도 수차례였다. 물론 지금은 주시는 대로 담아와 소분해서 저장하거나 이웃들에게 나눠먹는 요령이 생겼다.


파킨슨으로 2년째 아프신 어머니는 더 이상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간장을 담그실 수 없다. 남도의 맛깔난 솜씨를 지닌 시어머님의 김치와 장들은 깔끔하고 맛이 깊다. 마트에서 고추장과 된장을 구입할 때면 어머니 표 양념들이 그립기도 하다.


추석날 아침, 샘터가 보이는 부엌문을 열어젖히니 보슬비가 내리면서 가을바람이 시원하다. 밥통에 하얀 쌀밥을 안치고 대문을 열고 논둑길로 나섰다. 어제는 넓게 꽃잎을 펼치고 있던 붉은 가을꽃은 또르르 꽃잎을 말고서 비를 맞는다. 가을 태풍을 잘 버텨온 황금빛 가을 나락들이 마을 앞 논마다 가득이다. 길 가에 심긴 단감나무에서 노란빛을 살짝 띤 단감 한 개를 따서 손에 쥐었다. 딱딱하고 매끈한 느낌이 기분 좋다. 시댁에 와서 잠시 아침 산책을 누릴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발걸음을 돌려 아침식사를 준비하러 집으로 향했다. 마루턱에 걸쳐 앉으신 시아버님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눴다. 어제저녁, 많은 기대로 부담을 주시는 할아버지의 대화에 아이들이 힘들어한다고 웃으며 살짝 말씀드렸는데 밤새 고민하셨나 보다. 이런 시간들이 오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세월은 신념과 아집이 강하신 아버지를 변화시켰다. 불편함과 불만으로 어렵던 맏며느리도 바꾸어 놓았다. 점점 서로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더 정돈해서 내놓을 수 있는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중이다.


어머니가 아프시면서 명절 음식은 간소화되었다. 소쿠리 가득 굽던 세 종류의 전과 양푼 수북이 채우던 잡채는 시댁에 들어가는 길, 읍내 대형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과일과 반찬들도 종류와 양을 줄이라면서 살림을 시작하신 시아버지께서 특명을 내리셨다. 처음에는 정말일까 믿을 수 없었는데 그냥 믿고 진행했다. 정말이었다. 난 이럴 때도 말을 잘 듣는 며느리이니까. 하하

매년 늦잠을 자던 아이들을 성급히 깨워 산소에 데려가시던 할아버지는 잘 쉬었다가 외가에 가도록 배려해 주신다. 할아버지와 함께 모내기를 하고 벌초를 하며 고분고분 순종하던 아이들이 커갈수록 굳은 표정과 잔소리를 참고 있는 모양새가 당신도 어려우셨나 보다. 아버님이 마음을 조금씩 바꾸고 이해해 주시니 중간 입장에 서 있는 내게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 아이 모두 기꺼이 시골 행에 매번 동참해 주니 말이다.


딸만 셋인 친정 부모님의 명절이 억울해 신혼 초에는 참 많이도 싸웠다. 시골 장남인 남편은 완고하신 시아버지께 명절에 관한 나의 제안을 한마디도 올리지 못했다. 그저 명절이 되면 시누이가 빨리 도착해서 바통을 터치해 주길 간절히 바라며 애가 탈뿐이었다.


동생들이 결혼을 하게 되자 맏이인 나는 친정의 질서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과 설 명절 저녁식사 때는 친정의 가족들도 모두 모여서 즐거운 명절을 만들어야 한다고 남편과 제부들에게 선포했다. 남편이 시아버님께 강한 어조로 친정의 소식을 전달해 드린 후로는 명절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친정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날 후로는 시댁에 일찍 도착해 명절 준비를 끝내고 당일에는 친정행이 가능하도록 부지런히 일하고 움직였다. 시부모님 두 분이 아프시게 된 후로는 오히려 점심을 챙겨드리고 조금은 천천히 짐을 싼다. 며느리로서 순서와 입지가 억울하기만 했던 지난 세월들은 이제 좀 더 무뎌지고, 흐르는 상황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25년이 흐르는 동안 시댁의 일로 속상함과 눈물도 많았지만 오히려 어른이 되게 한 세월이었다. 이제는 내가 시댁과 친정이 되어 남은 세월들을 보낼 날들이 다가오겠지. 아버님이 마음을 열어주시고 조금씩 변화된 것처럼 나는 그 보다 좀 더 일찍, 좀 더 넓게 마음을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명절이 다가와도 불편함으로 두근거리기보다는 흘러가는 세월로 여길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다.



이제는 정이 든 시골집...


비가 내리는 시골 가을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