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어머니의 봄소풍

by Jina가다

"네 어머니 되실 분 인상이 좋아 허락한 거야!"

결국 아빠는 백기를 드셨다. 줄담배만 뻐금거리며 테라스에서 한참 서계시던 아빠는 맏딸의 시부모님 되실 분들을 만나보자 하셨다. 결국 시어머님의 따뜻한 말씨와 인상 때문에 결혼이 성사된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낮에 세 군데 병원을 들러 약을 타고 검진하느라 지치신 어머니는 입을 벌리고 곤한 잠을 자신다. 미라를 보는 듯 몸은 비쩍 마르고 굳은 허리와 손마디도 부자연스럽다. 급히 마트에 들러 제철인 숭어회와 도다리 회를 사고 미나리와 야채를 장 봤었다. 초장에 쓱쓱 비빈 회 비빔밥을 한 그릇 가득 드시고는 곤함 때문인지 곧 잠이 드셨다.



차를 타고 근처 대도시 대학병원을 오가는 동안 똑같은 말만 반복하시고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말에 남편은 당황해했다. 내게 민망함 때문인지 어머니에게 버럭 화를 낸다. 큰소리로 야단을 듣는 순한 강아지의 눈이 되어 눈치를 보는 어머니의 눈길이 안쓰러웠다. 남편은 상황을 다시 물으며 의사가 진단하듯 기억력을 테스트한다. 다 알고 있다며 정답을 말하는 귀여운 어머니의 대답에 웃고 말았지만 말이다.



손에는 분홍색 모자를 꼭 잡고서 굳은 몸을 기대어 앉으셨다. 요양사 아주머님 말씀을 들어보니 모자를 세탁해 달라 하셔서 소풍 가는 아이처럼 준비하고 계셨단다. 며칠 전 봉사자의 방문으로 짧은 커트머리를 하셨다는데, 무료봉사라서 맘에 안 든다는 말도 못 하고 모자로 가리려 하셨다. 머리 모양이 잘 어울린다며 달래어 차에 태워드렸지만 모자를 손에 꼭 쥐셨다. 운동하느라 늘어난 신발이 맘에 안 든다며 신발도 사 달라 요구하시는데 정말 소풍 가는 아이의 고집 같다. 신발장에 놓인 메이커 운동화들은 무겁고 색깔이 맘에 안 든다면서 말이다. 결국 남편은 신발가게로 달려가 시골 신발가게 아주머니가 추천해 주는 가볍고 고운 색깔의 운동화를 사서 신겨드렸다. 이도 맘에 안 든다며 투덜거리는 어머니를 달래고 얼러서 병원으로 출발했다.



결혼 후 만나 뵌 어머니는 색깔을 잘 맞춰 옷을 입는 나름의 읍내 멋쟁이셨다. 일본 여행을 함께 갈 때도 좋은 옷가게에서 새 옷들을 준비해서 여행 동안 흰 바지와 붉은 카디건으로 멋진 사진들을 남기셨다. 명절 때면 나름 애써서 옷을 사다 드려도 쉽게 합격을 받지 못할 정도로 나름의 옷에 대한 고집과 패션에 기준이 있던 어머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싸움에도 중재하던 분, 농번기에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넣어 일군들을 모으던 분이다. 인품이 좋아서 표정에 항상 여유가 있고 주변에 항상 사람 손길이 넉넉한 분이셨다. 파킨슨이 찾아온 후 갑자기 바뀌어 버린 환경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굳어가는 몸과 기억력에 자신을 가꾸기에는 한참이나 기력이 부족하다. 짧은 머리를 감추느라 모자를 쓰는 어머니의 모습에 애달팠다.



남편은 어머니께 남도의 예쁜 벚꽃을 구경시켜드리고 싶다고 근처 유명지를 검색을 해 놓은 터였지만 다섯 시간 동안 어머니와 붙어 있으며 지친 듯했다. 며느리는 불가능한 짜증도 그는 입 밖으로 말하지만, 어머니는 그냥 웃으며 받으신다. 그저 아들과 한 공기를 마시며 같은 공간에 있는 시간들이 만족스러우신 것 같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했다.



초봄에만 보이는 두릅을 삶아 초장을 놓고, 미나리를 삶아 나물을 무쳤다. 상추와 깻잎 등 야채를 넣고 드시고 싶다는 사과를 채 썰어 참기름을 휘두른 후. 생선회와 비빔밥을 깊이 있는 사기그릇에 담아냈다. 딸기와 갓 나온 참외로 저녁상을 준비하니 조촐하지만 새콤달콤 피곤을 거둬낼 꿀맛 밥상이다. 바닥까지 다 쓸어 맛있게 드시는 숟가락 소리에 웃음이 났다. 뭔가 착한 일을 하고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남편에게 으쓱거리며 눈길을 보냈다.



남편을 잘 키워서 나에게 주셨다고 시어머니라는 이름에 정의를 내려왔기에 여태 억울함은 없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오늘은 빚을 많이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젊은 날 제법 고왔다는 어머니는 스물에 팔 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어린 시동생들을 키우고 세 자녀를 낳아 삼베를 짜서 자녀들을 교육하셨다. 당신에게도 봄날은 있었을까? 젊은 날을 다 꺼내어 주느라, 병들고 지친 몸뚱이를 누이고 쉬는 침상 하나만 남은 것은 아닌지 서글퍼졌다.



아들과 함께 다녀온 병원 외출이 그저 오랜만에 즐긴 봄나들이가 되어버렸다. 지쳐 잠드신 어머니여! 잠시 어린 날 아들과의 즐거운 추억의 꿈을 꾸시길... 꿈속에서라도 봄 소풍을 즐겁게 다녀오시길...



연분홍 치마 날리며 마음껏 뛰던 날들도 어머니에게 있었음을 기억하며... 나의 봄날이 가기 전에 봄날을 누려본다.



봄날은 간다.


경주...벚꽃 휘날리며 떨어진 꽃잎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