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기저귀

맏며느리도 철이 들어갑니다.

by Jina가다

기저귀를 주문했다.

이번에는 지난번 말씀드렸던 비데 물티슈도 배달 상품에 포함시켰다. 마트에서 기저귀 사는 것이 어렵다는 시아버지를 위해 인터넷 주문을 했다. 쿠팡에서는 한 달 전 구매 기록이 남아 쉽게 장바구니에 담고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어머니 것으로 중형을 선택했다. 20여 년 전 아이들의 기저귀를 사 본 이후로 크기와 개수를 위해 이렇게 자세히 살펴보기는 처음이다.

‘너희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어떻게 하냐. 자식들을 힘들게만 하네 “


“아녜요. 곗돈으로 매달 주문해 드릴 테니 맘 편히 사용하세요. 밤에는 아깝다 생각 마시고 기저귀로 꼭 갈아입으세요.”


‘기저귀’라는 주제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몰랐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대학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수치심으로 기저귀를 거부하던 분이었다. 낙상 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어머니는 혼자 화장실 출입이 금지되었던 환자였다. 병원에서 아무 표정 없이 어머니에게 기저귀를 채우며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여사님들의 능숙한 손길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자신을 다루는 손의 압력과 분위기에 눌려 나중에는 아기처럼 고분고분해졌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이제 집으로 복귀했지만 파킨슨으로 온몸을 어렵게 끌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뼈만 앙상히 남은 노인은 이제 부끄러움이 사라진 지 오래다. 가끔 만나는 며느리 앞에서도 팬티와 기저귀를 스스럼없이 내린다. 오히려 내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스스로 처리하도록 잠시 기다릴 뿐이다. 시댁을 떠나오던 명절날 잔소리를 하는 이는 오히려 며느리였다.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은 위험하니 무조건 기저귀를 아까워하지 말고 사용하라고 신신당부드렸다.


매달 혈연으로 이어진 세 가정에서는 아이들 학원비만큼의 돈을 한 통장에 모아 부모님께 드린다. 요양보호사님과 어머니 주간보호센터 비용을 함께 나눠 짐 질 수 있어 다행이다. 부담되는 금액이지만 아이들에게 학원비를 줄 때 당연히 지출했던 그 마음을 불러오니 괜찮다. 자식에게는 그 무엇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그런 마음이 되자고 마음먹은 후로부터 편하다.


시부모님이 내 아버지와 어머니로 마음 깊이 수긍된 적은 없다. 시간이 흘러도 ‘parents-in-law’라는 단어가 내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법적인 아버지, 법으로 연결된 어머니... 결혼 25년 차가 되는 내게도 부모님들에게 무조건 복종했던 옛 맏며느리 모습은 너무나 큰 부담이다. 그저 서로 예의를 갖추고 관계로 인한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쓰는 중이다.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하기에 시댁을 챙기고 돕는다. 이제는 힘이 없고 연약해진 노인들이 되었기에 부족한 부분을 할 수 있는 만큼 채운다. 선을 넘는 요구는 남편과 의견을 조절한 후 남편을 통해 시댁 일을 조정하도록 한다. 내가 나서서 싸우거나 내 목소리로 주장하는 어리석을 일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철이 들고 내 위치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지난날처럼 시아버님의 큰소리와 야단을 무릎 꿇고 듣지 않는다. 큰소리가 나기 전에 자존심 강하신 시아버님의 마음을 여러 차례 헤아려보고 공감의 말을 먼저 한다. 실수한 일에 대해서는 깔끔하고 예의 바르게 사과드린다. 나는 어느새 시아버지를 피할 줄도 알고, 웃으며 섭섭한 말을 건넬 줄도 아는 노련한 며느리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쉽거나 편하지는 않다.


깐깐하고 계산이 정확하신 아버님이시지만 계산 없이 냉장고를 채워드리고 기저귀를 주문해 드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겨난 것은 요령만이 아니다. 그냥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일어나고 과거를 용서하는 착한 마음도 생겨난다. 이 모든 것이 또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는 계산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냥 늙어가는 부모님이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비위가 약한 내가 음식을 흘리며 드시는 어머니와 마주 앉아 음식을 먹는다. 마음으로 끝까지 거부했던 어머니 목욕을 시키는 것도 이제는 수월해졌다. 마른 장작처럼 주름진 시어머니의 몸에 거품을 바르며 아기를 다루듯 입으로 순서를 미리 알려준다. 나도 언젠가는 그녀처럼 온몸이 굳어가는 노년이 될 것이라는 서글픔을 삼키고 그냥 웃는다.



잠들기 전 기저귀로 갈아입으며 슬픔이 일기도 할 그녀를 생각한다. 내 남편의 어머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