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백신 접종을 완료하셨다는 시어머님의 전화 목소리가 밝게 들린다. 주간 보호센터에서 돌봄을 받으시는 어머니께서 매일이 즐겁다 하시니 다행이다. 매일 아침 여행을 가듯 차비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감사하다.
8년 전 시아버님의 칠순을 맞아 3대가 떠났던 가족 해외여행은 마지막이 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는 기회도 없었지만 너무나 고생스러운 여행의 기억으로 더 이상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시부모님의 건강이 허락되지 않는다. 2년 전의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신 아버지와 파킨슨병으로 어렵게 걸음을 걸으시는 어머니는 요양보호사의 방문과 주간보호센터의 도움을 입고 계신다. 두 분이 서로 의지하며 도와야 하는 노년이 된 상황이다. 하와이의 화려한 패턴 셔츠를 입고서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와 하나우마 베이(Hanauma Bay)를 함께 누리시던 젊은 노년은 언제였던가 싶다. 앨범을 넘기다 보니 울고 웃었던 하와이 추억들이 넘실댄다.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5박 6일간의 11인 단체여행은 지금 와서 생각해도 기적 같다. 국제결혼을 한 시동생의 가정과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동원해서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일들만 있을 줄 알았다. 맏며느리인 나는 부모님의 아침식사를 위해 고추장, 된장, 밥, 국물 등 포장된 한국 음식들을 쇼핑해서 26인치 대용량 캐리어에 가득 채웠다. 칠순을 맞으신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주고 싶은 충성심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한 겨울 두꺼운 외투는 인천공항에 벗어두고 가벼운 몸으로 도착한 하와이는 5월 따뜻한 봄날처럼 포근했다. 알라모아나 비치에 이르자 연평균 26도라는 온화한 날씨와 맑은 공기부터 행복하게 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노인들의 천국’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호텔 건너 노부부들이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으며 누리는 모습은 미래 선진국의 모습이었다.
세 개의 각 호실을 사용하면서 아침식사 때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방에 모이는 따로같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거대한 알라모아나 센터와 월마트를 쇼핑하고, 하와이 본섬의 대표 관광지인 다이아몬드 헤드를 하이킹했다. 저녁은 맛있는 식사와 훌라 공연이 함께 한 선셋 크루즈 여행이었다. 칠순여행이기에 할아버지와 온 가족이 함께 누린 특권이었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흥겨운 훌라 공연이 절정에 이르고 마지막은 당시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훌라댄서들 사이에 열정적으로 합류한 서방님은 애국자가 된 것처럼 싸이의 모습으로 멋지게 춤을 추었다. 가족들은 모두 기립하여 박수를 치며 한 껏 웃을 수 있었다. 흥이 잦아질 무렵 크루즈에서 만난 하와이의 붉은 석양은 맏며느리의 무게와 고됨도 잊게 해주는 보약 같았다. 감동적인 풍광에 그 정도의 고생은 괜찮은 것 같았다.
일본인 동서가 가고 싶었던 모아나루아 가든에 들러보고 태평양 전쟁 기념관이 있는 진주만에 들러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의 슬픔이 있는 이 섬에 한국과 일본인이 한 가족이 되어 화합을 도모하고 있었다. 느리고도 진지한 박물관 관람과 체험이었다.
외국인들이 가득한 진주만 박물관에서는 주변을 살피며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을 챙기느라 항상 긴장을 하고 있는 나였다. 박물관 한쪽에서 소란한 다툼이 있어 고개를 들어보니 아버지의 놀란 모습이었다. 박물관을 구경하던 중 손녀인 줄 알고 반갑게 7살 여자아이의 손을 잡은 아버지는 유괴범으로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아이의 부모는 사무실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고 아버지는 출동한 경찰들에게 조사를 받게 되었다. 당시 점심시간 술을 한 잔 하셨던 아버지는 아주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남편은 침착하게 아버지와 동행하며 조사에 성실히 변호했다. 두 시간이 넘어서야 자유롭게 되신 아버지는 해외에서 겪은 놀람과 자녀들 앞에 당황스러움으로 눈동자를 떨구고 계셨다. 겉으로 표현은 안 하셨지만 자존심이 강하신 아버지의 여행은 피곤과 절망이 배가된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조용한 하와이의 해변을 종일토록 누렸다. 샥스 코브에서 스노클링을 하느라 신난 아이들은 신기한 하와이의 바닷속을 구경했다. 자연생물들을 잘 보호하고 있던 그곳에서는 해안에 오르는 바다 거북이와 바다 위로 고개를 내민 향유고래도 구경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늦은 오후, 젖은 아이들을 마무리하고 서둘러 할아버지의 생신 잔치를 하러 한국식당으로 향했다. 하와이에서 강호동의 삼겹살 가게를 발견하다니 웃음이 났다. 식당 입구에는 강호동의 큰 사진과 포스터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아버지도 어제의 어려움들은 다 잊고 소주 한 잔과 삼겹살에 여행의 고단함을 잊으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께 드리는 생신축하 인사말들이 오가고 즐거운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삼겹살은 지글지글 익어가고 곁들여진 콘치즈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모두들 음료 잔을 들고서 할아버지를 위한 건배를 하려는데 할아버지의 취한 목소리와 제안은 당황스러웠다.
“강호동을 위하여~!! 자, 같이 해. 강호동을 위하여~!!”
“...”
갑작스레 부끄럽다며 화장실로 향하는 중2의 딸을 보신 할아버지는 엄마인 나를 향해 큰소리로 훈계하셨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어? 도대체 어른을 대하는 태도가 이게 뭐냐?”
길어지는 할아버지의 꾸중에 식당 단체석에 앉아있던 우리 10명은 모두가 야단을 듣는 모양새가 되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 상황을 빨리 멈춰야만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주변의 다른 테이블 손님들과 일본인 동서 그리고 상처받을 딸아이의 마음을 보호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꾸중이 억울하면서도 아버지의 치솟은 서글픔이 이해되기도 했다. 맏며느리인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온갖 슬픈 감정과 힘들었던 여행의 무게를 담은 눈물을 쏟아냈다.
“속상하셨죠? 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잘못 가르쳐서 그래요.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엉엉”
"......"
당황해서 입을 다무신 아버지와 미안함이 가득한 딸의 긴장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눈물은 계속 흐르는데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손녀 간의 55년 세월의 빙산은 중간에 낀 세대인 엄마의 뜨거운 눈물로 잠시 녹아내렸다. 눈물을 닦고서 웃는 얼굴로 아버지께 술 한 잔을 드리며 가족들의 식사는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아직도 그 아찔했던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남편을 불러 와이키키 해변으로 향했다. 죄인이 되어 사죄하는 남편의 품 안에서 마음 편히 실컷 울 수 있었다. 하루를 남긴 4일간 여행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정성껏 데워 준비한 카레라이스를 드시는 아버지는 며느리 쪽을 쳐다보지도 못하셨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며느리는 커피까지 여유 있게 누리는데 말이다. 힐튼 호텔 해변 모래사장에서 마지막 여유까지 누린 우리 가족들은 편안하게 여행을 마무리했다. 동서네 가족들을 일본으로 먼저 보내고 인천공항에 돌아온 우리들은 하얀 눈으로 가득 덮인 주차장에 멈춰 섰다. 펼쳐진 여행 앨범의 마지막 사진은 자동차 위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신난 세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다. 앨범에 보이는 사진들처럼 우리의 3대 여행은 즐거웠다고 기억되면 좋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할아버지도 양보와 이해를 많이 배우신 것 같다. 어려운 손자 손녀들을 가까이 만나고 겪어보면서 말이다. 할아버지도 당황스러운 일과 부끄러운 일들은 처음이셨기에...
아버지의 팔순 여행에는 더 멋진 가족여행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꿀 수도 없는 꿈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아이들도 성숙했고 할아버지와 엄마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말이다.
요술램프 지니가 소원을 말해보라며 한마디 툭 던진다면, 하와이로 떠나던 날 아침의 공항으로 보내주길 부탁하고 싶다. 무엇이든 들어줄 듯한 푸른 지니의 웃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