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에 한 번씩 돌아오는 시어머님의 파킨슨 질환 정기검진을 위해 남해고속도로를 달렸다. 이번에는 방학으로 본가에 온 막내아들이 함께 해서 든든한 마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선물 하나를 더 포장해서 가는 듯 손자를 보여드릴 수 있어 흥겨웠다.
보성 시골집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보니 어머니 혼자만 선풍기 앞에 앉아계셨다. 앞마당을 지나 빈 외양간을 돌아가니 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서 잡초를 뽑고 계신다. 오랜만에 눈에 들어오는 풍성한 여름 밭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들깨로 밭의 절반이 가득했고 절반은 고추가 빨갛게 매달려 익고 있었다. 아버지는 커다란 수박을 보란 듯 앞에 서계셨다. 팔십이 다 되신 어르신이 말로 자랑하기에는 쑥스러우셨나 보다. 마트에서만 보던 커다란 수박이 바닥에 얌전히 앉아 줄기에 매달린 모양에 행복한 웃음이 나왔다. 매일같이 다리를 끌고 이곳에 오셔서 즐거움을 한가득 길어가셨을 아버지를 생각했다. 마음속 놀란 정도에 과장을 더해서 탄성을 질렀다.
“우와~!! 아버지 너무나 멋진 밭인데요^^ 이걸 다 키우셨다고요? 들깻잎이랑 고추는 집에 가지고 갈게요~^^”
서둘러 아들 녀석을 불러 할아버지의 농작물들을 구경시켰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절제하면서도 새어 나오는 미소가 가득했다.
3년 전 누런 소들로 가득했던 외양간이 눈에 들어왔다. 송아지가 태어나서 엄마소 옆에서 다리를 세우는 모습을 아이들과 구경하기도 했었는데... 서른 마리가 넘어 외양간이 북적하고 항상 바쁘시던 아버지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외양간의 지붕을 수리하시던 중 낙상으로 인해 경추 손상을 입게 되셨다.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수술 후 꼼짝없이 병상에서 시간을 보내시던 세월이 1년 동안 지속되었었다.
당시 부산과 광주를 매주 두 번씩 오가며 부모님을 도왔던 일들이 기억난다. 고속버스 안에서 매번 울며 다녔던 나의 상황은 잠시 피곤과 안타까움으로 집에 돌아오면 끝나는 일이었다. 정신이 온전한 가운데 마비된 몸을 나누시기까지 아버지는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을까... 시간이 흘러 이제야 그 마음들이 헤아려진다.
재활병원 내에서도 기적이라 불릴 만큼 놀라운 반전을 일으키신 우리 아버님은 정말 의지의 한국인이시다. 남자 요양사를 고용해서 음식까지 떠먹여 주는 섬김을 받으시던 분이 걷게 되셨으니 말이다. 손을 움직이고 다리를 끌어 보조기구를 움직이기까지 병원 체력단련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셨다. 물리치료 과장님의 특별한 훈련으로 낮은 언덕을 오르고 넘어졌다 일어나는 연습을 하기까지는 1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매번 병문안을 갈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해내시는 아버지께는 박수와 칭찬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대로 병상을 지키며 세월을 보내는 재활병원의 환자들과는 달리 아버지는 시골집으로 돌아오셨다. 장애인을 위한 기구가 설치된 자동차를 새로 뽑으시고 수영장을 등록하셨다. 그리고 오후에는 규칙적으로 잔디와 모래사장이 있는 공원으로 가셔서 걷기 훈련을 하셨다. 집에는 실내 자전거와 운동기구를 설치하시고 매일같이 앉고 일어서는 운동을 진행하셨다. 아버지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해서 운동으로 마친다. 뜨거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 상관없이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성실하게 진행해 오신 건강관리는 건강해진 육체로 보여주고 계셨다.
넓던 논밭을 팔고 아끼던 소들을 모두 처분하기까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싶다. 두 해동안 집 앞의 텃밭은 빈 채로 유지되었었다. 부지런하신 아버지는 요양사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모종을 심고 씨를 뿌리셨다. 한 여름의 푸른 깻잎과 붉은 고추가 풍성한 밭을 보고 있자니 감동이 몰려왔다. 장애와 절망이 몰려와도 멈추지 않는 아버지의 열정과 부지런함에 나는 위대한 수업을 받고 돌아왔다. 무엇이든 도전하고 연습하는 자에게 결과는 분명히 보인다는 것을 말이다.
밭 사이사이를 돌며 깻잎을 따고 청홍고추를 끊어 바구니에 담으면서 잠시 농부가 된 듯 행복했다.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