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니, 나는 아무것도 한 것 없어. 센터 사람들이 말하더라. 일할 사람들은 줄 섰다고.”
“네?? 어머니 집에는 올 사람이 없어요. 한 사람 도우러 왔다가 두 사람을 돕는 일인데 누가 와요? 아무도 올 사람 없어요. 아주머니께 잘하세요...”
“네가 중간에서 좀 알아봐라. 센터장에게 전화 넣어보든지. 다들 나만 죄인처럼 얘기하네...”
“내일 아주머니 오시는지 보고요...”
“아빠는 미란이에게 전화해서 나랑 못 살겠다고 하더라. 내가 죽던지, 요양원으로 빨리 들어가든지 해야 할 것 같다. ”
“...”
“알았다. 끊는다.”
서울로 이사하신 후 몇 차례 반복되는 전화다.
시골의 집과 전답을 정리한 노부부는 종합병원이 가깝고 자녀들의 집이 가까운 수도권을 고집해서 세 달 전 이주하셨다. 3년간의 설득과 기다림에도 아버지는 당신의 계산과 고집대로 일을 진행하셨다. 아버지의 의지가 확고하고 독립된 생활을 할 것이라는 의견이 주고받아진 후, 부모님의 이사를 도왔다. 오래된 친구들 그리고 정든 고향과도 이별을 고하고 형제들과 자녀가 있는 도시로 용감하게 발을 내딛으셨다.
어머니께는 시골에서 1년간 지속하셨던 주간보호센터를 연장해서 가장 좋은 곳으로 선택했다. 하루 세 시간씩 요양보호사님을 신청해서 도움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시골에서 도움을 주셨던 요양사님들과 다르게 도시의 여사님은 선이 분명하고 언행도 조심하신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영양식으로 반찬과 간식까지 준비해 주신다. 새벽 6시 반에 출근하셔서 어머니의 등원을 돕는 9시 반까지 쉬지 않고 집안일을 하시는 듯하다. 말동무가 없는 아버지께도 도시의 많은 정보들을 제공하며 도움을 주는 분이다.
내가 만나 살펴보았던 여사님은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따뜻한 분, 정말 고마운 분이다. 명절을 앞두고, 봉투와 남편이 해외에서 가져온 작은 선물을 부모님이 보지 않는 곳에서 전달했는데 한사코 봉투는 거절하셨다. 작은 핸드크림만 큰 감사로 받는 여사님이 멋져 보였다. 시골에서 은근히 봉투를 요구했던 경우들이 있어 속상했었는데 이번에는 규칙을 준수하는 분이라 마음이 편했다. 사실, 규칙을 지킬 때 상호 간에 마음이 편한 일이다.
몇 주 전, 다시 부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도 여사님은 여전히 새벽에 문을 열고 들어와 부지런히 집안일을 시작하셨다. 그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부엌은 비워드렸다. 어머님의 씻고 입는 등원 준비를 도와드리고 우리 부부의 식사는 신경 쓰지 않도록 미리 말씀드렸다. 세탁기를 돌리려 했으나 여사님이 계획표대로 정해진 요일들이 있다는 말에 모든 것을 멈추고 그분의 살림에 주도권을 존중했다. 자신의 신념이 있다는 것은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는 중인 것이다. 서로 정확한 선을 지켜주는 것이 나는 오히려 좋다.
파킨슨으로 인해 예전에 점잖게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가끔씩 말실수를 하신다. 몇 차례 속상함과 분노가 일어 견디기 힘들었던 나였기에 여사님의 속상한 마음이 짐작되었다. 병의 특성을 알고 나서는 어머니의 간섭과 말실수는 한 귀로 듣고 흘린다. 그리고 자꾸만 당부를 드린다.
“고맙다고 하세요. 예쁘게 말해야 모두들 어머니를 좋아해요. 아버지께도 고맙다고 자꾸 말하세요. 어머니를 다 챙겨주고 도와주니 얼마나 고마워요... 요양사님께도 뭐든 고맙다 하세요. 센터에서도요. 아셨죠?”
“알았다 알았어...”
머릿속에는 아침에 있었을 법한 상황들이 추측되고 상상되었다. 한 발자국 물러 생각하니 우리 모두가 밀당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잠시 걱정을 내려놓았다.
시아버님이 어머니를 다루려고 겁주는 말씀이셨을 것도 같고,
여사님이 어머니를 고분고분하게 하려고 아버지께 주는 압력일 것도 같다.
그리고 아버님이 나를 다루는 연락망 일 수도 있다.
아... 왜 시댁일은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일까?
내일 아침 여사님이 꼭 출근했기를 기도하게 된다.
이른 아침 전화드리니... 달그락 거리는 부엌의 소음과 어머니의 안정된 목소리가 전달된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