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아홉 시, 아침 불국사 주차장을 지나 언덕을 오른다. 왼편 하얀 벚꽃 무리는 이미 꽃잎이 떨어져 연둣빛 이파리들을 채우고 있다. 오른편 시멘트로 이어진 언덕부터 보이는 겹벚꽃 나무. 도톰한 꽃봉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 뒤로 자동차를 주차하고 서둘러 언덕을 오르는 이들. 아침 지하철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니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 모양이다. 오전 열 시부터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서둘렀다는 말도 들린다. 눈을 들어 언덕 너머로 대형 버스의 행렬이 이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국사 겹벚꽃의 인기는 더해지는구나.
어젯밤에 보았던 꽃송이보다 더 꽃잎을 열었다. 꽃나무는 봄날 종일 힘쓰고 있나 보다. 24시간 고속촬영 카메라로 찍어 보여주는 자연 다큐멘터리가 기억난다. 모았던 꽃잎이 순식간에 피어나는 영상. 겹벚꽃 나무 산책길을 천천히 걷는다. 작년 완전히 개화했던 큰 봉오리들을 기억하면 아직은 멋진 때가 아니라며 사진을 아끼려 했다. 절제하려 애써도 멋진 꽃송이와 어우러진 장면이 보일 때면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낸다.
꽃나무 가지 사이에 얼굴을 내밀고 사진을 찍는 부부,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주는 젊은 아가씨들, 혼자서도 온갖 표정을 지으며 셀카를 찍는 사람들. 꽃잎 사이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넓게 펼쳐진 잔디 언덕을 돌아 걷다 보니 낯선 언어로 대화하는 무리가 보인다. 다른 나라 승복 갖춘 이들이 함께 둘러앉아 꽃동산을 즐긴다. 불국사 순례단일까.
“응아 응아, 으응 으응~” 비음으로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대화가 신기하다. 약속된 언어와 글자로 나라마다 다른 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성경 속 바벨탑이 기억나는 순간이다. 불국사 꽃 잔치가 외국인 눈에도 멋진 관광지로 여겨진 사실에 반갑다.
작년 4월, 경주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불국사 꽃동산에 올랐다. 새벽 6시에 숙소를 나와 우산을 들고 걸었다. 비가 내리는 토요일 새벽이라 아무도 없을 것 같았는데, 어린아이들 손을 잡고 꽃구경을 끝내고 내려오는 젊은 부부를 마주쳤다. 일찍 일어난 아이들 덕분이라는 관광객 부부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미소 지었다. 서너 종류의 새소리만 어우러져 음악처럼 들리는 꽃길에는 조심스러운 내 발소리만 크게 울렸다.
축축한 공기에 어우러진 분홍 향기에 홀린 듯 입 밖으로 감탄만 흘러나왔다. 내려가는 길, 같은 마음으로 꽃길을 올라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그래, 어디든 관광은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것이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건물들을 설명하던 한국인 가이드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말했다. “관광은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것이 현명해요.”
유명 관광지 경주에서는 아침과 저녁에나들이를 즐긴다. 경주 시민 1년 차인 나는 아직 소풍 중.
작은 카네이션이 나뭇가지마다 척척 앉은 것처럼 풍성한 모양, 내일이면 분홍 솜사탕이 한 줌씩 가지 끝마다 걸린 모양이겠다. 아마도 목화 같은 꽃송이로 하늘을 가릴 것 같다. 비 오기 전 잿빛 하늘이지만 어여쁜 분홍은 자체 발광 중이다.
어김없이 시기를 따라 꽃 피고 열매 맺는 자연의 섭리가 놀라울 뿐이다. 창조자의 손길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