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연휴가 좋은 점은 딱 한 가지.
나 뿐만 아니라 모두 다 같이 쉬기 때문에 (웬만하면) 아무에게서도 전화/메일/문자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 연차를 쓰는 날은 내가 휴가든 아니든 회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굴러가지만..
연휴는 모두 일시정지 상태인 만큼, 그 기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책감 없이 합법적으로 쉴 수 있다.
이번 연휴는 권장휴가까지 모두 쉬었더니 무려 9일동안 회사에 가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연휴/휴가가 길 때에는 그 기간을 매우 알차게 보내야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에 휩싸이곤 한다.
이 습관을 고쳐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연휴 첫 날의 나는 마치 새해목표를 세우듯 9일간의 To Do List를 써내려갔다. 8일차인 오늘, 내가 적었던 야심찬 포부들을 쭉 훑어보며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그래도 꽤 많이 실천했음을 깨닫는다. 애초에 모든 것들을 다 이뤄낼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9일 내내 침대에만 늘어져서 잠만 자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입사 후 나는 긴 연휴가 주어질 때마다 1순위: 쉼/수면 → 2순위: 회사 업무 F/up → 3순위: 개인 일상 재정비 순으로 연휴를 보내왔다. 즉, 그동안 밀린 수면을 보충한 후에는 평일에 다 마무리 하지 못했던 회사 일을 조금이라도 미리 처리해두거나, 일과 시간에 미처 자세히 읽어보지 못했던 업무 자료들을 보거나 했는데, 이번에는 회사 다니는 동안 내팽겨쳤던 내 일상과 삶을 재정비하는데 좀 더 집중하려고 했다. 연휴를 활용해 친구도 만나고, 평일에는 갈 수 없었던 병원도 가고, 취미로 연습중인 악기 개인레슨 상담도 받으러 가고, 계속 미루기만 했던 운전학원 연수도 등록했다. 브런치도 써야지 써야지 마음만 먹다가 드디어 이 글을 발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제' 영역에 신경을 많이 쓴 연휴이기도 했다. 이제 사회초년생 타이틀을 슬슬 벗어날 때가 되었지만 돈 관리나 투자에 있어서는 여전히 백지 상태였기에, 이번에 쉬면서 신규 계좌도 개설하고 통장도 쪼개고 카드별 계좌도 다시 조정하면서 월급 관리 계획도 새롭게 세워보았다. 그동안은 하나의 통장에서 모든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는데 이제는 급여통장과 생활비 통장을 분리해서 좀 써보려고 한다. (다만 아직 투자 수익률이나 전체 자산 관리 틀은 정비하지 못했는데 이건 주말이나 그 다음 짧은 연휴를 활용해서 간간이 해나가야겠다)
사실 평일에 일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일이 내 현생의 우선순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 회사 일은 모두 납기가 정해져있고, 그 안에 해내지 못하면 결국 내 밥줄이 위험해지니까.. 그러니 그 과정에서 내 개인 일상의 재정비 작업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물론 혹자는 '워라인'을 이야기하며 일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일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단계까지는 못 갔다 ㅎ) 은행 대출이나 병원 진료 등 정말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 아니면 대부분의 것들은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회사 일에 파묻히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신경을 못 쓰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운동이나 외국어 공부, 독서 등이 있겠다) 결국 그로 인해 죄책감 느끼거나 후회하는 건 '나'라는 걸 알면서도 실천이 어렵다. 그럴 때마다 '대체 그 놈의 회사가 뭐길래...' 하는 생각도 자주 든다. 많은 상담사와 전문가들은 회사 스트레스를 유독 많이 받는 사람들에게 '회사는 그저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조언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어쩌면 그냥 이런 현실을 모두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내가 어떤 마음을 먹든, 어떤 행동을 하든 회사가 내 삶의 우선순위인 건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어떻게 보면 회사는 내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수단이기 때문에, 회사 일이 내 삶의 1순위가 된다는 것은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냥 그런 현실을 나 스스로 받아들이기가 싫었던 것이다. 받아들이는 순간, 내 소박하고 잔잔한 일상은 '회사'보다 항상 덜 중요한 것이고, '회사'에 잠식당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될까봐 그게 두려웠던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정답이 어디있겠냐만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앞으로의 회사생활을 이어나가야할지는 나 스스로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해 늘 제자리를 맴도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간간이 연휴가 주어지고, 그 연휴동안 미처 챙겨보지 못했던 내 삶의 일부분을 재정비해나갈 뿐이다.
무얼 선택하든, 내 자신에 대한 '죄책감'만 갖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