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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업지망생 May 10. 2023

생산적인 일을 위한 첫 글

<부엌일 파헤치기> 들어가며...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3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신청한 열 달간의 육아휴직 중 2주가 흘렀다는 얘기다. 물론 어린이집 졸업식 이후 “졸업을 했는데 왜 또 어린이집에 가야 해요?”, “음, 생각해 보니까 내가 어린이집을 너무 오래 다닌 거 같아요.”라며 집에 있기를 강력히 주장한 아이 덕분(?)에 육아휴직 전 열흘 정도는 연가를 사용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즉 회사에 발길을 끊은 지는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셈이다.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의 삶이 어떻게 바뀔까 하는 기대감은 밥, 청소, 육아의 끝없는 반복으로 지쳐갔던 경력단절 시기와 다를 바 없다는 실망감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중이다.


 아이가 다섯 살이었던 여름, 5년 만에 재취업에 성공한 이후 나는 나를 위한 연가를 사용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는 등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연가를 아껴두었던 것이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갈 때는 한 시간씩 지참 또는 조퇴를 썼다. 나에게 연가 1일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여덟 번의 기회를 말했다. 간혹 시댁의 제사 음식일을 돕기 위해, 또는 극심한 생리통이나 두통 때문에, 또는 대학원 졸업시험을 보기 위해 반차를 내거나 여름휴가로 가족 여행을 가기 위해 연가를 사용한 정도이다. 그런데 이제 육아 휴직이라니.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면서 지참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전업주부라니. 늦잠자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꿀잠을 위해 1시간 지참을 쓰느냐, 연가를 아끼기 위해 아이를 깨워야 하느냐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라니 이 얼마나 감개무량한가. 나는 마치 하루도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집에 있었고, 집안일을 했고,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한 달의 생활을 정리해 보면 아이는 (전혀 걱정이 없었던 바는 아니나) 예상했던 대로 학교에 잘 적응을 하고 있다. 어린이집을 같이 다닌 친구들과는 다른 반이 되었는데도 새로운 반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고, 선생님도 좋은 분 같다고 한다. 영어 학원도, 체육관도, 피아노 학원도 잘 다니고 있고 방과후 수업도 재밌다고 했다. 남편도 손꼽아 기다렸던 본인의 육아휴직을 승진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포기한 사람치고는 열심히 회사에 다니고 있다. 더욱이 고마운 것은 내가 전업주부가 되었음에도 깔끔한 집 상태나, 정갈한 밥상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며칠 전, 함께 저녁을 먹던 중 “다들 자기 일을 잘 하고 있으니 나만 잘하면 되겠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일단 돈도 못 벌면서, 집안일을 그리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 묘한 민망함이 마음 한켠에 자리한 탓이다. 남편은 아이만 잘 챙기면 된다며 격려했지만, 가정을 돌보는 일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한 가지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밥’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정말 밥 하나만큼은 열심히 했다. 여전히 집 안은 어느 구석 하나 정리된 곳이 없을 정도로 어지럽기는 하나 반찬가게는 가급적 이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실천하며 열심히 밥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식집의 12첩 반상같은 것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그냥 매 끼니를 ‘먹었다’ 또는 ‘해결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밥상이다. 이게 뭐가 대단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밥을 먹기 위해 밥을 준비하는 일은 매일매일 해내야 하는 일종의 과업이다. 이것은 출근해서 매일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보다 훨씬 골치아프고 힘든 일이다. 오늘 하기 싫으면 주말로 미뤄도 되는 빨래나 청소 등의 집안일과도 차원이 다르다. 밥을 하는 일은, 매일매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 일 안에 얼마나 많은 고뇌와 피땀눈물이 숨겨져 있는지를. 과거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과 점심 도시락을 자식 수대로 챙기고, 일하고 퇴근하시면 옷도 갈아입을 새 없이 저녁식사를 준비하셨던 어머니들에 비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밥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조차 밥을 해보기는 했을까? 만약 가족들을 위한 밥을 하고 있다면 참 고생이 많다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고,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먹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고 있다면 그 입 다물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들은 밥을 하는 일에 관한 글이다. 요리책이나 요리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조리법, 재료손질법, 재료보관법, 영양정보 또는 요리 꿀팁 등을 선보일 의도는 전혀 없다는 뜻이다. 엄마가 해주신 또는 할머니가 해주신 특별한 음식에 얽힌 추억을 담을 생각도 없다. 또한 유명 맛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집에서 뚝딱 해치우는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을 통해 바쁜 누군가를 대리만족시켜줄 감성 에세이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 글에는 요섹남이나 요섹녀 따위는 없다. 파스텔톤의 각종 베리류나 싱그럽게 물기를 머금은 채소 이미지 또한 없다. 그저 밥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40대의 아줌마가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하면 가족 중 누군가가 음식을 ‘먹’는다고 할 때, 그 음식을 ‘먹이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잡다한 일들에 관한 글이다. 먹이는 일은 어떤 일인지, 그 안에 어떤 매커니즘이 존재하는지를 파헤치기 위해 (아니, 조금이라도 엿보기 위해) 이 글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 글이, ‘생산적인 일’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일말의 민망함을 덜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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