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공정하다고 믿는 이유

이상적 부모 신화와 사회화

by 하루찌
자녀는 부모를 신뢰한다.


1. 이상적 부모 신화


인간 존재는 필연적으로 '이상적 부모 신화(Ideal Parent Myth)'를 내면화하며 성장한다.


여기서 '이상적 부모 신화'란, 개인이 세계에 대해 기본적인 신뢰와 공정을 기대하는 심리적 구조로서, 이상적 부모, 이상적 가정, 이상적 자녀라는 세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 의미 체계를 의미한다.


무력한 존재로 태어난 인간은, 생존을 위해 외부 세계(특히 부모적 대상)를 신뢰해야만 한다. 즉 살기위해 우리는 부모는 옳다는 신화를 만들어 세상을 믿는 것이다.


이상적 부모 신화의 세부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이상적 부모: 무조건적 보호와 공정한 보상을 약속하는 타인.

2. 이상적 가정: 규범 준수에 따라 예측 가능한 보상을 주는 질서.

3. 이상적 자녀: 이상적 부모와 자녀의 기대에 부응함으로써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존재.

요컨대, 이상적 부모 신화는 이상적 가정과 이상적 자아를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삼중 구조를 이룬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초기 보호자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를 필요로 한다. 이 신뢰는 부모 개인을 넘어서, 세계 일반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이상적 부모 신화는 필연적으로 이상적 가정이라는 구조적 환상을 산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상적 가정은 규범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는 구조다. 이 구조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개인이 규범을 내면화하고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이상적 가정의 존재는 이상적 자녀라는 자기상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공정한 가정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나 자신이 그 기준에 부합하는 존재여야 사랑받고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 규범을 낳는다.


자기 규범은 개인으로 하여금 이상적 자녀가 되려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한다. 이 노력은 이상적 가정과 이상적 부모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다. 따라서 이상적 자녀의 자기 이해는 이상적 부모 신화를 강화하고 재생산한다. 내가 노력하고 규범을 따르는 한, 세계는 공정하게 보상할 것이라는 신념이 끊임없이 재확인되는 것이다.


세 요소는 순환적으로 상호강화되며, 개인의 기본 신뢰 구조를 형성한다.

[이상적 부모]
↓ (무조건적 보호, 공정성)
[이상적 가정]
↓ (규범과 보상의 체계)
[이상적 자녀]
↻ (기대 충족을 통해 이상적 부모 신화 강화)


2. 신화는 가족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사회화란, 개인이 이상적 부모 신화를 기반으로 사회 규범과 기대를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초기에는 부모라는 구체적 존재를 통해 신화가 작동하지만,

점차 그 신화는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사회화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노력은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

규범 준수는 안정된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존재는 조건부로나마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정

사회적 규범은 본질적으로 '이상적 가정' 신화를 모델로 삼아 개인에게 전달된다. 가령 학교에서는 높은 시험 점수가 규범 준수와 노력의 보상처럼 제시된다.


3. 좋지만 가짜 신화


이상적 부모 신화는 인간 존재에 다음과 같은 기능을 제공한다:

행동 동기화 기능: 개인은 보상을 기대하며 규범을 따르고, 사회에 통합되려 한다.

의미 부여 기능: 세계는 무작위적이고 부조리한 곳이 아니라, 일정한 규범과 목적을 가진 곳이라는 환상을 제공한다.

심리적 안정 기능: 실패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세계가 선의로 응답할 것이라는 기대를 통해 심리적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 신화는 본질적으로 허구적이다. 세계는 실제로는 완전하게 공정하거나 예측 가능한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4. 영원한 원칙은 없다


인간이 성숙해가면서 경험하는 모순은 다음과 같다:

규범을 따르더라도 보상이 오지 않을 수 있다.

선의가 배신당할 수 있다.

노력과 결과가 무관할 수 있다.

이런 현실은 이상적 자녀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좌절로 이어지게 하고, 이상적 부모 신화가 실제 세계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서히 드러낸다.


이 좌절이 축적될 때, 모순의 자각은

최초에는 단편적이고 국지적이지만,

점차 일반화되고 존재 전체를 뒤흔드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 부모 신화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5. 기대가 무너지고, 생존의 논리가 깨질 때


신화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보호자가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호자나 사회가 내 생존과 무관해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대 불충족 발생: 개인은 규범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을 받지 못한다.

생존 자원 통제 인식 붕괴: 보호자(사회)가 절대적 자원 통제력을 상실했거나, 대체 자원 획득 경로를 인식하게 되었거나, 보호 체계 자체가 임의적이고 불완전하다고 체감되었을 경우, 개인은 더 이상 보호자를 절대적 존재로 보지 않는다.

결과: 실패는 자신의 불완전성 탓이 아니라 세계(부모-가정-사회)의 결함 탓으로 해석된다. 이상적 부모 신화는 붕괴하고, 개인은 세계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상실한다.


6. 붕괴 이후: 존재론적 전환


이상적 부모 신화의 붕괴는 단순한 심리적 실망이 아니라, 개인이 세계와 자기 존재에 대해 근본적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는 존재론적 전환점이다. 물론 이러한 무질서를 수용하지 않고 의존 상태로 퇴행하는 경우도 있다. 다 큰 성인이 배우자나 부모를 과하게 의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를 직면하면 붕괴 결과, 인간은 다음과 같은 심리적, 존재론적 무중력 상태로 던져진다.

개인은 더 이상 외부 세계에 의미와 구원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세계에 대한 근원적 신뢰(Basic Trust)가 무너진다.

세계가 무의미하고 무질서하다는 인식이 생겨 불안을 증폭시킨다.

"이상적 자아"가 규범 준수를 통해 완성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지면서 자아 이미지에 균열이 발생한다.


이 붕괴 이후 인간은 두 갈래의 길에 서게 된다. 하나는 무너진 세계에 절망하여 무력화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의 무의미를 인정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려는 길이다. 전자의 경우 삶의 소망을 잃게 되고, 후자의 경우 창조적 삶에 발을 딛게 된다. 지금, 한번쯤은 용기를 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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