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연금술사, 철학을 만나다

부조리, 흐름, 존재, 아름다움

by 하루찌

서론


『강철의 연금술사』(2003년 애니메이션판, 이하 ‘구강연’)는 단순한 성장담이나 영웅 서사를 넘어선 깊은 철학적 세계를 품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삶과 죽음, 구원과 부조리, 세계와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특히 구강연은 고전적인 권선징악이나 구원의 약속을 따르지 않고, 부조리한 세계를 흐름 속에서 응시하며 인간 존재의 하찮음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 글에서는 『강철의 연금술사(2003)』를 ‘부조리’, ‘흐름’, ‘존재’, ‘아름다움’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석할 것이다. 구강연은 삶의 부조리를 극복하거나 구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구원이 없는 세계 속에서도 부조리를 끌어안고 존재를 긍정하는 인간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또한 세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으로 파악하며, 인간 존재를 그 일부로 위치시킨다. 이 과정에서 구강연은 부조리와 쇠퇴, 모순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독특한 미학적 감수성을 제시한다.


따라서 이 글은 구강연이 보여주는 인간 존재의 철학적 의미를 밝히고, 그것이 현대인의 존재감각과 어떤 접점을 가지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우리는 부조리한 세계를 미적으로 수용하고,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긍정하는 인간상을 통해, 구강연이 제시하는 삶의 철학에 다가가게 될 것이다.




본론 1. 세계의 부조리와 존재의 하찮음


구강연은 인간 존재를 특권화하지 않는다. 세계는 인간의 의지나 도덕성에 의해 움직이지 않으며, 인간은 그 흐름 속의 작은 파편일 뿐이다. 작품 속에서 연금술은 인간이 세상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상징하지만, 결국 연금술조차도 거대한 흐름과 에너지 보존의 법칙, 부조리한 세계의 일부로 종속된다.


세계는 의미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구강연의 세계에서는 삶과 죽음, 선과 악, 성공과 실패 모두가 어떤 절대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인간의 노력이나 선의가 반드시 구원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며, 악행이 반드시 응징받는 것도 아니다. 등가교환이라는 신념조차 작품 후반에 이르러 “인간이 만든 환상일 뿐”이라는 냉정한 선언을 통해 무너진다. 이처럼 구강연은 세계를 본질적으로 부조리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 부조리 속에서 인간 존재는 극히 하찮다. 생명은 쉽게 소모되고, 영혼은 흐름 속에 흩어진다. 인체 연성의 대가로 잃어버린 신체 조각들은 소멸하지 않고 문 너머 어딘가에 흩어져 존재하지만, 그것이 인간 개인의 의미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존재는 세계 속에서 소멸하지 않고 흐를 뿐, 그것이 인간 중심의 서사나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


구강연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세계는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인간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 점에 불과하며, 그 하찮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로소 삶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본론 2. 흐름으로서의 세계


구강연은 세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변하고 흐르는 존재로 그린다. 이 세계는 어떤 절대적 진리나 고정된 중심을 지니지 않는다. 존재는 태어나고 사라지며, 물질과 에너지는 변형과 순환을 반복한다. 인간 역시 이 흐름의 한 조각일 뿐이며, 영혼조차 고정된 실체가 아닌, 소멸과 변이의 흐름 속에 위치한다.


작품 속 ‘문’은 이 흐름의 상징이다. 인체 연성을 시도할 때 연금술사는 자신의 일부를 문 저편에 넘긴다. 이때 신체의 일부나 영혼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다른 층위로 흘러 들어간다. 소멸은 단절이 아니라 흐름의 다른 양태일 뿐이다. 따라서 구강연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변형이며, 존재는 고정되지 않고 형태를 달리할 뿐이다.


이러한 세계 인식은 인간에게 거시적 시야를 요구한다. 흐름을 이해하려면 특정한 순간이나 개별 사건에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자신의 삶, 고통, 소망을 절대화하지 않고, 더 큰 흐름 속의 일부로 바라봐야 한다. 부조리한 세계에 저항하거나 의미를 강요하는 대신, 세계 전체의 흐름을 긍정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구강연의 세계에서 흐름은 인간에게 심판이나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흐름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세계에 맞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와 함께 흘러가는 존재가 된다. 이때 인간은 비로소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게 된다.




본론 3. 구원 부정과 삶의 긍정


구강연은 전통적 서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원’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이 작품에서 인간은 자신의 노력이나 선의, 고통을 대가로 어떤 절대적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 인체 연성의 실패, 현자의 돌의 잔혹한 본질, 그리고 등가교환이라는 신념의 붕괴는 모두 세계가 인간에게 구원을 약속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특히 구강연은 삶을 부조리 속에서 그대로 끌어안는다. 부조리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적 조건으로 제시된다.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는 정신을 강조한다. 이는 부조리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긍정을 의미한다. 삶은 구원받지 못했기에 오히려 스스로 긍정되어야 한다.


구강연에서 제시하는 긍정은 단순한 체념이나 무기력한 수용이 아니다. 그것은 부조리를 부정하지 않고, 부조리를 끌어안은 채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다. 인간은 구원을 통해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모순된 상태 그대로 삶을 긍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완성해 나간다. 이 긍정은 상처와 쇠퇴, 소멸을 포함한 삶 전체를 수용하는 데서 출발한다.


결국 구강연은 인간이 구원을 포기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진정한 삶을 긍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실존적 자기 긍정이며,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존엄성이다.




본론 4. 부조리한 아름다움


구강연은 부조리한 세계를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조리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정신적 태도를 제시한다. 이 작품에서 아름다움은 완전함이나 조화로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 쇠퇴, 모순, 소멸과 같은 부조리한 조건들을 끌어안는 데서 아름다움이 발생한다.


쇠퇴하는 영혼과 죽음으로 향하는 육체는 이 세계의 본질을 반영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완벽한 몸(현자의 돌에 의해 유지되는 육체)은 단조롭고 기계적이며, 자연스러운 쇠퇴를 통한 진정한 아름다움을 결여한다. 구강연은 부조리를 제거한 상태를 구원이나 이상향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부조리와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상태야말로, 인간 존재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부조리한 아름다움은 세계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합일적 감각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세계를 극복하거나 정복하려 하지 않고, 흐름 속의 하나로서 자신을 받아들인다. 이 수용은 체념이나 무기력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성과 세계의 부조리를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그 속에서 고유한 빛을 발한다.


구강연은 이렇게 묻는다. “넌 정말 부조리를 싫어하고, 구원받고 싶니?” 이 질문은 구원을 동경하는 인간 내면의 약함을 찌르면서, 동시에 부조리 속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 부조리를 끌어안는 정신의 순간에야, 인간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획득할 수 있다.




본론 5. 현대성과의 교차


구강연이 묘사하는 인간상은, 현대인의 존재감각과 깊은 교집합을 가진다. 구강연 속 인간은 부조리한 세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 존재는 흐르고 소멸할 뿐이며, 그 흐름 속에서 인간은 자신만의 의미를 찾거나, 의미 없는 세계 자체를 긍정해야 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는 ‘의미의 상대성’과 연결된다.


현대인은 절대적 가치나 영원한 구원의 약속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적 규범, 도덕적 명령, 종교적 구속력은 약화되었고, 개인은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거나 무의미를 견뎌야 한다. 이때, 구강연이 보여준 인간상—부조리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현대인이 직면한 과제와 정확히 겹친다.


구강연은 명확한 정답이나 구원의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세계 전체를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부조리를 끌어안은 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는 현대인이 처한 존재 조건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태도다.




결론


『강철의 연금술사(2003)』는 부조리한 세계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부조리 속에서 삶을 긍정하는 정신의 힘을 노래한 작품이다. 세계는 인간에게 특별한 의미나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존재는 흐르고, 인간은 그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긍정해야 한다.


구강연은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환상을 해체하면서, 부조리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삶의 존엄을 그려낸다. 이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가장 적극적이고 실존적인 자기 긍정이다. 그리고 이 삶의 철학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준다.


결국, 구원 없는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부조리한 아름다움을 끌어안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인간은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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