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개발과 자기혐오 사이 그 어딘가

교정이 필요한 때와 수용이 필요한 때

by 하루찌

1. 문제 제기: 임상적 접근의 유용성과 한계


현대 심리학은 인간 특성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고,

비정상에 해당하는 성향을 “교정”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이러한 임상적 접근은 인간을 지나치게 정형화하며, 때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나 또한 인간 존재를 정상/비정상으로 가르는 모든 규범적 체계에 대해, 우리는 근본적 회의를 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이 접근이 유용할 수 있다고 본다.

가령,

극심한 자기혐오,

일부 극단적 정신질환,

반사회성,

극단적 고립과 사회적 붕괴

등은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될 수 없다.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관용을 가장한 무관심이자 방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 특성 중 어디까지가 교정 대상이며, 어디부터가 개성으로 수용 가능한지를 구분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이 글은 그러한 구분을, 임상적 접근이 아니라,

실존철학의 관점에서 명확히 하려는 시도이자

현대인들로 하여금 자기개발과 자기혐오 사이 균형을 잡도록 하려는 호소이다.




2. 기존 이론 검토: 심리학과 철학의 접근과 한계


(1) 심리학적 접근

자기 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은 인간이 자율성과 유능성, 관계성의 욕구를 충족할 때 건강하다고 본다. 그러나 “교정”과 “수용”을 구분하는 근본적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상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은 인간 내면의 결손을 설명하지만, 존재론적 차원에서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품을 것인가”를 스스로 사유하는 기준을 설정하지 않는다.


(2) 철학적 접근

실존주의(사르트르, 하이데거)는 인간이 스스로 존재를 구성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자유와 책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존재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무차별적 수용이 개인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3. 새로운 접근: 교정과 수용의 구분


교정 대상을 방치하는 것은 자기 방임이며, 수용 대상을 교정하는 것은 자기 학대이다. 오직 교정 대상을 교정하는 것만이 자기 개발이다.


교정(correction)이란, 실존적 책임에 따른 자기 긍정이 안정적으로 가능한 미래가 도래하지 않을 때,이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의식적 실존적 노력이다.


수용(acceptance)이란, 어떤 특성이 존재 지속성과 자기 긍정을 저해하지 않을 때, 그것을 긍정하고 품어내는 실존적 수용이다.

존재가능성이란, 세계 속에서 살아남는 힘을 말하며

자기 긍정이란, 살아 남는 것 이상의, 스스로 존재를 수용하는 감정을 말한다.


나는 교정과 수용 대상을 구분하는 기준을

“실존적 책임의 감당 가능성”에 둔다.


실존적 책임이란,

존재가 자신에게 부여된 자유를 자각하고,

그 자유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구성하고 선택할 의무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다음의 철학적 기반을 가진다:

사르트르는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고 말하며,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선택으로 구성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로 규정하면서, 현존재는 항상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며, 이러한 가능성을 실존적으로 떠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실존적 책임이란 단순한 현재 상태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존재 가능성 전체를 끌어안는 책임이다.




4. 시뮬레이션 개념의 필연성


그렇다면

교정이 필요한 특성과 수용할 수 있는 특성을 어떻게 가를 수 있는가?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시뮬레이션이다.


교정과 수용의 기준이

“실존적 책임의 감당 가능성”에 있다면,

그 감당 가능성은 단순히 현재 상태만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존적 책임의 감당 가능성은 본질적으로 미래를 향한 개념이다.

지금 이 특성을 지닌 채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을 스스로 긍정할 수 있을 것인가?

세계와 타자 안에서 존재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물음은

미래의 삶을 상상하고 예측하는 상상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시뮬레이션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작동 그 자체다.


시뮬레이션 없이는

교정과 수용 대상을 구분하는 판단은 이루어질 수 없다.




5. 시뮬레이션의 성격


시뮬레이션은 단순한 논리적 연산이 아니다.


인간 존재는

이성적 사고,

감정적 떨림,

심미적 직관

이 세 차원이 동시에 작용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상상한다.


따라서 시뮬레이션은 동시적(concurrent)이자 비이성적(non-rational)인 작용이다.


시뮬레이션은 한 순간에,

감정, 이성, 미적 감각의 얽힘 속에서

“이 특성은 감당 가능한가?“라는 실존적 판단을 낳는다.




6. 교정과 수용을 가르는 내부 신호들(제안)


(1) 이성적 신호

교정 신호: 반복 실패, 존중감 훼손

수용 신호: 적응성과 논리적 일관성


(2) 감정적 신호

교정 신호: 수치심, 고립감, 분노

수용 신호: 긍정감, 연결감, 안정성


(3) 심미적 신호

교정 신호: 존재에 대한 이질감과 조잡함

수용 신호: 존재에 대한 유기성과 조화감


(4) 통합 직관

교정 직관: 깨진 느낌, 분열감

수용 직관: 이어진 느낌, 통합감


이러한 신호들을 통합적으로 읽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 존재의 분별이다.




7. 마무리: 실존적 탐구로서의 구분


나는 이 글을 통해

“올바른 교정/수용 구분 매뉴얼”을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


임상적 조언은 심리학자들의 몫이다.

나는 오로지,

존재의 고유한 책임과 선택에 대해 사유하려 했다.


존재는 외부의 매뉴얼로 살아갈 수 없다.

존재는 오직,

스스로의 자유를 직시하고,

자기 존재를 감당하고,

자기 긍정을 이루어가야 한다.


존재를 감당한다는 것은, 아무도 대신 져줄 수 없는 이토록 무거운 운명을 홀로 짊어지는 일이다.

교정과 수용은, 그 고독하고 아름다운 실존적 결단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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