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현 Jul 25. 2023

돌봄에 대한 가치저하로 저출산 해결 못해

성평등이 저출산문제 해결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다. 남들한테 “불쌍하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같은 일을 하는 남성 동료에게도 듣기도 하고,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여성 조합원에게 자주 들었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집에서 주로 내 역할은 아침밥 하기, 아이와 놀아주기, 아내보다 먼저 퇴근하면 저녁밥 하기, 쓰레기 버리기, 그리고 둘째 자기 전에 책 읽기 등이다. 첫째는 올해 중학생이 되면서 ‘놀아주기’와 ‘책 읽기’는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만 누리는 특권이 됐다.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때는 개인적인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시원한 맥주나 소주 한잔 먹으러 가는 날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주로 올곧이 나만의 시간은 아이들 재우고 나서다. 그마저도 업무가 많으면 그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졸린 눈을 비벼가면 일을 했다.      


장시간 노동사회인 한국에서 육아와 가사는 주로 여성의 몫이다. 누군가 육아와 가사노동의 책임을 옴팡 뒤집어써야 장시간 노동사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했냐고요. 감히 말한 건데 ‘평등육아’를 했다. 아이가 둘이라 육아휴직도 두 번 했다. 길지는 않았지만 한 때 한겨레신문 베이비트리에 ‘박진현 평등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빠의 육아휴직’이라는 제목으로 KBS 사람과 사람이라는 다큐 프로그램에도 나왔다.      


그래서 나는 “불쌍하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 불쌍함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이었다. 결혼하면 나에게 뭐해줄 거냐고 물었다. 돈도 없고, 집도 없던 나는 호기롭게 아침밥을 차려주겠다고 말했다. 직업의 특성상 야근이 많아 저녁에 뭐를 해줄 수는 없겠고, 그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 결혼하고 나서 땅을 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후회를 했다. 차려진 밥상을 내 발로 찬 것이었다. 아내가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고대 이래 끈끈히 내려온 가부장적인 남성의 권리였는데 말이다. 



둘째 은유가 5살일 때 자기가 크면 “아빠랑 결혼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아빠랑 결혼하겠다는 아들은 찾아보기 힘들건대”라며 웃었다. 그 말을 들은 5살 은유는 “아빠가 좋아. 아빠가 따뜻해”라고 말했다. 평등육아를 한 덕분에 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지금도 그렇다. 중학생 1학년 남학생 윤슬이도, 초등학교 3학년 은유도 “아빠 사랑해”를 종종 말한다.      


제주에서 살 때 구성원 모두가 엄마인 육아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중 한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커서 어떻게 자랄지 궁금하다”라고. 최소한 돌봄을 ‘가치 없는 노동’으로 취급하는 남자로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지난해 9월 SNS에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 원~76만 원 수준”이라며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도입정책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조정훈 의원은 최저임금 없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까지 꺼내 들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거들었다.      


모두 부끄럽게도 남자다. 아이를 직접 돌보는 일을 해봤더라면 그 일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동남아 출신 도우미 제도로 욕을 먹었다. 저임금 도우미 제도를 도입해 가정의 육아 부담을 덜고, 저출산 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취지인데, 돌봄에 대한 ‘가치 절하’가 깔려있다. 육아는 아무나 할 수 있고 때론 최저임금도 아까우며 더구나 ‘동남아 이모님’이라면 더 싼 값에 부려도 된다는 인식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생각이다. 


물론 현재 구체화되고 있는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은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고용허가제(E-9 비자)를 통해 시행한다는 방침이어서 ‘값싼 노동력 활용’ 방향과는 선을 긋는 모양새다.      


‘외국인 가사 도우미’가 저출산에 도움이 될까. 지난 25일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외국인 가사노동자 관련 공개토론회’에서 홍콩,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아시아 4개국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했지만, 합계출생률 증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현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사례 및 시사점’ 발제문에서 “외국인 가사 노동자 제도 도입의 주요 정책 목표로 여겨지는 저출생 극복과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 증가는 아시아 4개 국가에서 통계상 유의미한 관계를 찾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아시아 4개국 합계출생률이 모두 감소하는 추세, 특히 홍콩, 대만은 2020년부터 합계출생률이 1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홍콩, 싱가포르는 1970년대, 대만은 1990년대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은 2017년부터 도쿄, 오사카 등 6개 특별구역에서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만, 싱가포르, 홍콩은 수요자가 민간 중개기관 알선을 거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한다. 가사노동자는 입주 형태로 일을 하며 해당 국가의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다.      


아시아 4개국 사례에서 보듯이 저출생 근본대책은 성평등 강화와 노동시간 단축이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아니다. 스웨덴은 경우 2022년 합계출산율이 1.52이다. 스웨덴도 합계출산율이 하락하는 추세지만, 한국의 0.78 비교했을 때 두 배 정도 높다. 스웨덴의 성평등 정책은 ‘가정의 성평등’에서 구현되면 확실한 ‘저출산 해법’으로 부각됐다. ‘보육의 성평등’은 지금까지도 스웨덴 가족정책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개념이다. 세계 최초로 도입한 ‘의무 부성휴가’도 그렇게 나온 정책이다. 현재 스웨덴에선 부모 각자에게 240일간 육아휴직이 제공된다. 이 중 90일은 반드시 아빠가 사용해야 한다. 스웨덴도 합계 출산율이 2016년 1.85에서 2022년 1.52로 떨어져서 이런저런 고민이 크다. 하지만 한국 사회처럼 ‘돌봄 노동’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값싼 노동력 활용’이라는 저렴한 아이디어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다. 둘을 데리고 목욕탕을 가는 길에서 “에휴.. 힘들어”라는 말이 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이 말을 들은 윤슬이가 “아빠 고생이지. 힘내”라고 말을 했다. 형 말을 들은 5살 은유는 “사랑고생이지”라고 말했다. 남자 셋이 동시에 “깔깔깔” 웃음이 터졌다. “사랑고생”이라니. 그래 “사랑고생” 맞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