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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Jan 12. 2023

과도한 책임감에 짓눌리다

어린 시절 아홉 살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과도한 책임감이 부담스럽고 두려웠다.

동생을 돌보다 다치게 하거나 밥을 제때 챙겨 먹이지 않으면 엄마에게 혼나거나 엄마가 새아빠에게 욕을 먹어야 했다.


간밤 꿈에도 나는 예전의 집으로 돌아간다.

친구집에서 놀다가 들어가 보니 동생과 새아빠가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서둘러 준비를 돕는다.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잔뜩 긴장한 채다.


책임감에 대한 두려움은 아이를 낳고 다시 나타났다.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날이 많아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특히 저녁이 되면 더 두렵고 불안했다.


남편에게 일찍 들어오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친구들과 술 마시는 일을 세상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기였다.

남편은 나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했고, 총각 때 누리던 자유를 결혼과 아이가 막을 수는 없었다.


어두워진 저녁 거실에 아이와 덩그러니 남은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적막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거실에서 아이에게 한 수저라도 밥을 더 먹이려 애를 쓰며 우울과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이미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비누거품으로 미끌미끌한 아이를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손아귀에 힘을 주고 사방에 물을 튀겨가며 목욕을 시키고 나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아늑하고 포근한 침대에 누워 향긋하고 고소한 아이의 머리 냄새를 맡으면 그제야 정신없이 떠돌던 불안이 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형광등 불빛이 외로움과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비추지 않으니 마음도 한결 편하다.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고 두려웠을까?

아이의 안전과 생존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부여되면서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어릴 적 동생을 돌봐야 하는 과도한 책임감과 정신적, 육체적 폭력이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도.


요즘에도 밝은 빛을 싫어한다.

밝은 빛이 집안 곳곳을 비추면 눈 둘 곳을 찾을 수 없고,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흐리멍덩하고 느슨했던 정신에 순간 전구가 빠바박 들어오듯 각성이 된다.


이제는 아이를 혼자 돌보는 일이 익숙해졌다.

손 갈 곳이 거의 없어 부담감도 줄었다.

수다스럽고 시끄러운 아들들 덕에 적막했던 그 시절이 그리울 정도다.

남편은 여전히 바쁘고 술 약속이 많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은 두 아이와 셋이 있는 집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이는 너의 분신이 아닌 또 다른 하나의 생명체고, 아이와 너는 한 팀이니 외로워할 필요 없다고.

아이가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고 조금만 지나면 우는 엄마를 꼭 안아주며 토닥여주는 날이 올 거라고.

아이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더 강력하여 그렇게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된다고.

적어도 네 다리 밑에 깔려 숨을 못 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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