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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이 Jul 05. 2023

이혼을 생각하다

매일 글을 쓰기로 다짐하고 요 며칠 위기가 왔다.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이혼 얘기까지 오갔더니 글을 쓸 수 없었다.

이혼하면 아들 둘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걱정도 되고,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나 막막했다.

이혼을 생각할 때 제일 큰 걱정은 ‘아들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이다.

우리 집은 행복한 편인 것 같다고 말했던 큰아들에게 실망을 안겨줘야 할 터였다.

남편과 싸우는 중에도 밖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는 큰 시련 없이 자란 아들들.

사춘기를 겪기도 전에 부모가 이혼을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겠지?

나는 다른 사람들(특히 학부모)에게 이혼을 했다고 떳떳이 밝힐 수 있을까?

이혼 가정이라는 이유로 우리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는 건 아닐지.

심각하게 이혼 얘기가 오갔기 때문에 이혼에 대한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편은 사업을 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술자리가 잦아 남편 없이 아이들과 셋이 노는 것이 더 익숙하다.

남편과 있으면 언제 또 욱해서 소리를 질러댈지 몰라 마음 한편이 불안하다.

아이들 또한 아빠가 큰 소리를 내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과 놀아줄 때는 또 잘 놀아준다.

요즘 너무 피시방만 가는 것이 못마땅하긴 하지만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아들들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어린 시절 새아빠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면서도 이혼을 하지 않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의 엄마보다 나이를 더 먹고 나니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와 새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남동생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 참고 버틴 것이다.

이미 나와 오빠는 아빠 없는 자식으로 친구들에게 따돌림도 받고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동생만큼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으셨을 터.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흉악한 괴물 같았지만, 동생은 나와 입장이 다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친 부모.

동생은 자신의 아빠를 정신병원에 쳐 넣어야 할 괴물로 보진 않았을 것이다.

같은 가정폭력 집안에서 자랐지만 동생과 나는 처지가 다르다.

양심에 어떤 걸림돌이 없었기에 나는 새아빠를 바닥끝까지 끌어내려 있는 힘껏 증오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원망도 미움도 쪽방으로 밀려났다.

아직도 꿈속에선 괴물 같은 새아빠가 나를 두려움에 벌벌 떨게 하지만.


동생은 여전히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동생이 아빠에게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를 대할 때는 원망의 날이 서려있다.

건들기만 하면 언제라도 들이받을 준비가 된 사람처럼.

서른이 넘어서 제2의 사춘기가 온 듯하다.

하지만 반드시 치르고 넘어가야 할 의식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안전하고 편안한 집을 꿈꿨다.

요즘 우리 집은 위태위태하다.

지진이 잦고 불안감에 출렁인다.

아이들과 경제적 문제가 걱정되면서도 이혼을 생각했던 건 편안한 집이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서로 좀 더 노력해야 한다.

비난을 멈추고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혼은 피하고 싶기에 당분간은 평온한 호수처럼 잠잠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 파도가 몰아쳐 요동치는 바다가 될지 모른다.

그 파도가 집을 집어삼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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