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다이어트
이십 대 이후 내내 몸무게에 집착했다.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고, 신간으로 나온 다이어트 관련 책은 모조리 사들였다.
당시 유행했던 다이어트 비디오도 사서 한동안은 열심히 따라 했다.
그럼에도 나는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 한 번은 항우울제를 먹었을 때였는데, 감정조절이 돼서 그런 건지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그런 것인지 음식이 당기지 않았다.
항우울제를 끊고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지만.
결혼 전에는 레몬 디톡스 다이어트로 2kg만을 감량했을 뿐, 친구들처럼 ‘날씬한 신부’가 되지는 못했다.
폭음과 폭식의 악순환을 겪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임신 기간에는 유독 식욕을 잘 조절했다.
친구들은 “임신 기간에는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라고 했는데 나는 마음껏 먹을 수 없었다.
이미 임신 전부터도 많이 먹었으므로.
오히려 임신 전보다 적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며 매일같이 한 시간을 걸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근처에 있는 공원까지 걸어갔다 왔다.
걷지 않으면 불안했다.
먹은 만큼 움직여야 한다는 걸 임신을 하고서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만삭이 되어서도 걷는 걸 멈추지 않았다.
만삭인데 살이 많이 안 쩠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했다.
그 결과 첫 애는 2.26kg으로 태어났고, 나의 몸무게는 고작 9kg 정도밖에 늘지 않았다.
첫 아이는 3일 정도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었고, 눕히기만 하면 먹은 모유를 죄 토해 내는 바람에 50일 동안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채 아이를 안고 재워야 했다.
열심히 모유를 먹였지만, 아이의 몸무게는 늘 하위 1%였다.
시어머니는 내 젖이 물젖인 것 같다며 분유를 먹일 것을 권유하셨다.
좌절했다.
‘좋은 엄마’의 젖이 물젖일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분유를 극구 거부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 아이가 너무 말랐기 때문에 분유를 먹일 수밖에 없었다.
분유를 먹일 때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분유를 먹고서라도 살이 쪘으면 하는 바람과, 내 젖 때문에 살이 찌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 마음.
아이는 분유를 먹여도 살이 오르지 않았다.
남편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분유를 먹여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다시 모유수유로 돌아갔지만, 죄책감은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다.
내 모유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유식에 모든 정성을 들였다.
매끼 다른 메뉴를 먹였으며, 가능한 그때그때 바로 해 먹였다.
게으른 내가, 요리를 싫어하는 내가, 그 정도로 애썼다는 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개월수에 맞는 정량을 꾸역꾸역 먹였지만, 아이의 몸은 하루에 똥을 네 번이나 배출하며 흡수를 거부했다.
이유식을 먹지 않고 장난만 치는 아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미친년처럼 울부짖었던 것 같다.
아이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나는 아이의 몸무게가 평균이 되지 않으면 엄마로서의 자질이 없는 여자로 비칠 까봐 두려웠다.
큰 아이는 중학생이 돼서도 ”마름“을 유지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이번에는 절대로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다짐과는 달리 내 몸은 2인분의 음식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비난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나마 다행히 둘째는 2.9kg으로 나왔다.
하지만 둘째도 큰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가감정은 또 한 번 나를 찾아왔다.
둘째라도 평균 몸무게를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과, 둘째까지 살이 찌지 않으므로 유전이라고 당당하게(그러나 스스로도 100% 인정하지는 못한 채) 말할 수 있다는 현실 중 무엇을 더 간절히 원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내게서 죄책감을 완전히 도려낼 수 없었다.
둘째가 평균 몸무게를 유지한다면 나는 더욱더 첫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 테고, 둘째까지 살이 찌지 않으면 나의 ’ 엄마 됨‘에 대해, 엄마의 자질에 대해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될 터였다.
나의 요리 실력에 대해, 엄마로서 역할에 대해, 충분하다 할 정도로 희생을 했느냐에 대해 수시로 의심하며 자책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을 안쓰럽게 보거나, 나를 아동 학대범으로 보지 않는 의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 몸무게를 묻는 간호사에게 당황하는 모습을 들키고 만다.
최근에 첫째가 독감에 걸렸었다.
자주 가던 소아과는 진료가 끝난 시간이라 할 수 없이 늦게까지 진료하는 다른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A형 독감 진단을 받았고, 약을 처방받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약사가 형식상 확인한다는 식으로 물었다.
“아이 몸무게가 40kg은 넘지요?”
나는 또다시 당황했고,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약사는 난감해하며 “처방된 타미플루 용량이 나이 기준 평균 용량인데 의사 선생님께 확인 전화를 해볼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고, 아이는 5층에 있는 소아과에 다시 올라가 몸무게를 재야 했다.
몸무게는 정확히 접수할 때 말했던 몸무게(옷 무게 빼고)와 동일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사과하는 이가 없고, 아이가 평균보다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간다는 말만 메아리처럼 소심하게 쏟아냈다.
마감시간이라 환자도 없었는데 의사는 처방전을 새로 처방해 주었을 뿐 얼굴을 내비치지도 않았다.
나는 다짐했다.
아이가 아무리 병원에 갈 힘이 없다고 해도, 질질 끌고 업어서라도 늘 가는 소아과 진료 시간에 맞춰 가야겠다고.
나는 여전히 나의 몸무게에 집착한다.
엄마만 잘 챙겨 먹고, 아이들 밥은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다는 비난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언제쯤 자격지심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직은 까마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