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과 모유수유
나는 수시로 나의 모성을 의심했다.
처음 의심이 들었던 건 아이를 낳은 직후다.
눈도 못 뜨는 작은 아이를 품에 안았는데 눈물이 터지기는커녕, 고통이 끝났다는 몽롱한 안도감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들을 드라마에서 수없이 봤는데, 극심한 고통으로 모든 감정이 마비됐던 걸까?
내 의사와 상관없이 투여된 촉진제의 영향으로 수직으로 치솟던 산통에서 해방됐다는 사실 외에는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여유 있게 진통을 기다려 주기에는 담당 의사의 시간이 부족했거나 수술실의 빠른 회전율을 위한 조치였겠지만, 진통이 시작된 지 세 시간도 안 되어 촉진제를 투여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받지는 못했다.
첫째를 낳을 때도, 둘째를 낳을 때도.
아기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리기 위해 아이를 다시 품에 안았을 때는 솜털처럼 가벼운 작은 몸과 살이 없어 날카로운 턱선을 보며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갓 태어난 아이의 빨갛고 퉁퉁 부은 얼굴을 내 아이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다.
눈도 뜨지 못한 아기는 갑자기 들이밀어진 젖꼭지에 어리둥절했으리라.
그럼에도 작은 입을 열어 낯선 것을 받아들이려고 애써주는 아이가 고마웠다.
탯줄이 아닌 보드라운 입술과 따뜻한 체온으로 아이와 연결됨을 느꼈고,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제야 내 몸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실감이 남과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작고 소중한 아이를 내가 지킬 수 있을까.
숨이 들락날락하는 연하디 연한 머리통을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없는 돌덩어리로 키워낼 수 있을까.
자신은 없었지만, 해야만 했다.
힘겹게 열린 작은 입술이 나의 젖꼭지에 닿았던 감촉과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아이의 살 냄새가 몸과 가슴에 각인됐기 때문에.
젖을 빨기 위해 본능적으로 벌린 입으로 희미하지만 절실한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에.
조리원에서 만난 한 여자는 가슴이 망가지는 것이 싫어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 난 우월감을 느꼈던가.
적어도 저 여자보다는 모성애가 있다고 안심을 했더랬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두 아이 모두 14개월 동안 모유수유를 했다.
모유수유 기간이 모성애의 척도가 아니거늘 그거라도 붙잡고 싶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내가 보인 행동은 모성애와 거리가 멀었기에 모유수유를 열심히 했다는 걸 보여줌으로 죄책감에서 해방되고자 했다.
끝내는 스스로를 설득하는데 실패했지만.
설득당했다 하더라도 얼마 못 가 다시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엄마가 된 이상, 내가 죽기 전까지는 갖가지 죄책감에서 해방되지 못하리.
지금은 조리원에서 만났던 여자의 마음이 이해된다.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늘어진 가슴은 나의 섹슈얼리티에 경고음을 울려댔다.
노화로 처진 엉덩이나 뱃살은 어쩔 수 없다지만, 유난히 축 늘어진 가슴은 몸 여기저기에 이유 없이 붙어있는 ‘점’처럼 불필요해 보인다.
점은 안 보이는 척하면 그만이지만, 소모되어 쓸모없어진 가슴은 꽤나 눈에 거슬리고 성가시다.
쪄 죽을 것 같은 여름에도 브래지어로 가슴을 옭아매고 있어, 살갗이 비치는 얇은 옷을 입어도 해방감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2년에 한 번 받아야 하는 굴욕적인 유방암 검사.
유방암 검사를 받을 때 나의 가슴은 그야말로 걸리적거리는 거죽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다.
검사를 받을 때만이라도 가슴을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복부 초음파를 받을 때처럼 젤로 뒤덮인 피부를 장애물 없이 부드럽게 오갈 수 있다면 쓸데없이 굴욕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시간도 절약될 텐데…
샤워를 할 때마다 나는 나의 가슴과 마주한다.
거죽만 남은 그것은 이제 그만 ‘나이 듦’을 인정하라고 다그친다.
가슴의 모양이나 크기가 나의 가치를 매길 순 없지만, 모유수유를 한 대가로 얻은 텅 빈 가슴은 공허함을 남겼다.
그 공허함을 끌어안은 채 남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마흔이 넘어서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난 언제쯤 내 ‘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강박적으로 몸무게를 재는 것도, 처진 가슴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도, 내 ‘몸’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탓은 아닌지.
새치와 주름, 기미도 신경이 쓰이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는 건 어쩌다 한 번씩 하는 새치 염색과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는 것뿐이다.
얼굴보다 몸에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얼굴이 나를 대표한다면 몸은 그 자체로 ‘나’이기 때문인가.
내가 먹는 것이 곧 내 몸이 되듯, 내 몸만큼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마흔이 넘었음에도 마른 몸을 유지하고 싶은 건 여성 구성원에서 퇴출되기 싫은 마음도 있다.
노화는 막을 수 없지만, 적어도 ‘여성’이라는 틀 밖으로 내몰리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틀에 갇혀 사는 게 좋은 것도 아닌데, ‘여성성’에 집착하는 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이리라.
여성으로 살아오며 안 좋은 일을 경험했음에도 아직은 여자인 게 좋았다.
여전히 성폭행의 두려움을 가슴에 품고 불안에 떨면서도 계속 여자로 살고 싶은 것은, 어린 시절부터 내면화된 남성에 대한 불신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가부장제로부터 완벽하게 독립된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럴지도.
처진 가슴으로 속을 끓이지만,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또다시 모유수유에 목을 맬 것이 틀림없다.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면 변하지 않을 결말이다.
모유수유는 아이의 건강만을 위한 게 아니다.
내 몸에서 만들어진 영양분으로 아이의 배를 채우는 과정은 내가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있고, 적어도 내 품에 안긴 작은 아기에게는 내가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확인받을 수 있다.
엄마를 향한 꽉 찬 검은색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다.
자신을 안고 있는 인간이, 배가 고플 때는 언제든 자신의 허기를 채워줄 거라는 걸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아이.
모유수유를 통해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얻었지만, 아이와 가장 친밀하고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던 시기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평생 잊지 못할 기쁨을 얻었으면서 이제와 가죽만 남은 가슴을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것은, 단물만 쏙 빼먹고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이 사람, 저 사람의 신발에 짓밟혀 보기 흉한 검은 점이 된 껌의 처지와 비슷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