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 않지만 가난한 나

절대 가난 하지 않은데 나는 왜 돈이 없을까?

by Jinny


나는 객관적으로 보면 절대적으로 가난한 가정에 속하지 않는다. 서울은 아니지만 서울 근처 변두리에 국평이라 불리는 30평대 자가가 있고, 두 아이를 모두 영어 유치원에 보냈다. 지금은 말레이시아에서 두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다.



남편은 금융회사에 다니며 적지 않은 연봉을 받고 있다. 기러기로 지내고 있음에도 두 달에 한 번은 아이들을 보러 온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우리 집은 ‘가난’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나는 가난하다.


나는 올해 서른여섯 살, 경력 단절 여성이다. 내 통장 잔고는 0원이고, 남편도 모르는 빚이 있다.



스물다섯에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었고, 그 이후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 쓰고, 남편 명의의 카드를 사용하며 살아왔다. 한국에서 살 때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내가 쓰고, 남편이 카드 대금을 납부하는 구조가 익숙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뒤 상황은 달라졌다. 해외 사용 수수료가 부담돼 남편 카드를 거의 쓰지 못하고, 현금으로 생활비를 받아 환전해 사용하고 있다.

지금 나의 말레이시아 생활비를 적어보면 이렇다.


월세 100만 원

아이들 영어 과외 35만 원

수영 수업 35만 원

중국어 수업 30만 원

한국 보험료 100만 원

전기·수도세 10만 원

식비 100만 원

학교 도시락 40만 원



대략 계산해 보면 매달 350만 원 정도가 그냥 나간다.

남편에게 받는 생활비는 380만 원.

겉으로 보면 빠듯하지만 유지 가능한 수준이다.


문제는 내 대출이다. 매달 200만 원가량의 이자와 원리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이 왜 생겼을까.





처음 말레이시아 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매달 300만 원만 받았다. 생활비는 항상 50~80만 원 정도 부족했다. 그 사실을 남편에게 설명하는 것이 너무 껄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말을 하지 않았고, 부족한 돈은 마이너스 통장에서 꺼내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빚이 늘어났다.


이 부분에서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걸 안다. “그냥 말하면 되지, 왜 이렇게까지 만들었냐”라고.



하지만 남편은 나보다 아홉 살이 많고, 금융회사에 다니는, 숫자에 아주 깐깐한 사람이다. 어디에 얼마가 더 필요한지, 그동안 돈은 어디에 썼는지 매번 아주 디테일하게 설명해야 했다.


한국에서도 그는 생활 물가를 잘 몰랐고,“왜 이렇게 많이 나오냐”는 말로 다툼이 잦았다. 게다가 그는 시댁의 가장 역할도 하고 있다.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님의 병원비도 매달 부담하고 있다.

남편의 연봉을 알고 있고,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 지 2년 가까이 된 상황에서 나는 차마 돈을 더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절대적으로 가난하지 않은 가정에서나만 가난해지기 시작했다.



요즘 ‘가난 프레임’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절대적으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이 밈처럼 소비된다.

하지만 나는, 정말 가난하지 않은 이 집에서 유일한 가난뱅이다.



나는 이곳 말레이시아에서 많은 걸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부모님과 남편의 보호 안에서 너무 안전하게, 너무 안정적으로만 살아왔다는 것을.

한국에서 우리 집은 평범했지만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느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는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은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감각은 말레이시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아이 친구 가족과 해외여행을 가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골프를 치고, 다른 엄마들이 추천하면 학원도 보내고, 아이들이 하고 싶다는 건 대부분 다 해주었다.

그게 매달 생활비가 부족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여행은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동행하지 않는 여행에 300만 원을 쓰고도 200만 원만 들었다고 말했고, 그만큼만 받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덜 쓰면 채워지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은 여행도, 골프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사교육만 유지하고 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면 결국 이렇게 가난해진다는 너무 간단한 이치를 서른여섯, 아이 둘을 데리고 타국에 살며 이제야 깨닫고 있다.


이 상황을 돌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남편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대출을 상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내가 죽기 직전에나 가능할 것 같다.




다른 방법은 내가 돈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가디언 비자로 머물고 있는 나에게 말레이시아 현지 취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요즘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들을 찾아 헤매고 있다.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제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영어나 중국어가 저절로 늘지 않는다. 학교는 늘 “투션을 더 하라”라고 말할 뿐이다.


결국 답은 하나다. 무엇이든 해서나 스스로 경제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쓴 게 아니다. 그냥,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적어도 대출 이자만큼은 내가 벌어 내고 싶다.




절대적으로 가난하지 않은 가정에서나 혼자 가난한 이 아이러니를 더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