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러기 엄마의 인성이 바닥 치는가 1

남 탓이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겠다 싶은 기러기 엄마 육아 한탄

by Jinny

기러기 엄마로 산 지 2년, 내 인내심과 인성은 바닥났다




아이들이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도 요즘은 화부터 버럭 난다. 조금만 시끄러워도 짜증이 치밀고, 아무 일 아닌 상황에서도 이미 마음은 한계선에 와 있다.



내가 말레이시아로 아이들 학교를 보내겠다고 했을 때 주변 엄마들은 걱정과 우려, 그리고 약간의 경외심까지 섞인 반응을 보였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남편도 없이 혼자서 아이 둘을 어떻게 키워?”였다.

나는 그때 꽤 자신 있었다.




2018년 큰아이를 출산했을 무렵, 조리원 동기들이 “남편이 퇴근을 못 해서 아이를 못 씻겼다”는 말을 할 때 나는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이 퇴근을 안 한 거랑아이 목욕이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만큼 나는 나 홀로 육아에 익숙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기러기 육아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르다.




아이들이 조금만 다투는 소리에도 버럭 화부터 낸다. 넘어져 우는 아이에게 “그러니까 앞 보고 다니라고 했잖아!”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엄마, 우리 조금만 더 놀다 가면 안 돼?”라는 질문에는 “엄마 힘들어 죽겠어. 더 놀 거면 너 혼자 집에 걸어와!”라고 말하고, 숙제를 미루며 징징대는 소리에는 “하기 싫으면 한국 가서 아빠랑 둘이 살아!”라는 말까지 한다.


큰아이의 에세이 숙제를 도와주다가 도감정이 순식간에 폭발한다.



‘이 단어도 모르면 어쩌자는 거야.’‘나한테 물어보지 마. 네가 찾아봐.’‘네가 공부하는 거지 내가 공부하는 거니?’




아이의 안일함과 무지함이 이상할 정도로 나를 화나게 만든다. 참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사라져 모든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붓고 만다.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는 말을 자주 보는데, 지금의 나는 딱 그 상태다.

아이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와 현실의 불안정함, 경제적인 불안까지 모두 아이들에게 쏟아내고 있다.

분명 나는 육체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다. 그냥, 여유가 사라졌다.



아이는 자란다. 몸만 크는 게 아니라 생각도, 말도 함께 자란다.

이곳에 올 때 큰아이는 7살, 작은 아이는 5살이었다. 지금은 9살과 7살이 되었다.

불과 2년 사이, 아이들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말대꾸를 하고,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방문을 닫고 들어가 물건을 집어던지며 감정을 표현한다. 내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자신의 옳음을 주장한다.


아주 소소한 예를 들자면 이렇다.


첫째, 자기 친구를 집에 초대해 놓고 “내 장난감”이라며 친구와 같이 놀지 못하게 한다.

아이의 주장은 이렇다. 장난감의 소유권은 본인에게 있고, 함께 놀지 말지는 본인이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아이 스스로 초대한 친구였고,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둘째, 튜터를 바꿔 달라고 했다. 자기를 맨날 “부려먹는다”는 이유였다.

선생님은 자기 신발은 스스로 정리하고, 사용한 컵을 치우게 했고, 선생님의 실내화 정리도 한 번 부탁했을 뿐이다.

아이의 주장은 이랬다. 자기는 선생님 집에 가서 수업을 받는 ‘손님’이기 때문에 일을 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 용돈을 다 쓰면 엄마가 더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이에게는 방과 후 활동 중 물이라도 사 마시라고매달 소액의 용돈을 주고 있다. 그 돈으로 친구들에게 음료수를 사주고, 사흘 만에 다 써버린 뒤 다시 돈을 달라고 했다.

아이의 논리는 이랬다. 아빠가 돈을 벌어 엄마에게 주는 거니까, 엄마 돈이 아니고, 그래서 엄마는 자기가 돈을 다 쓰면 더 줘야 한다는 것이다.



9살은 7보다 말이 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집과 주장만 강해지고 설득은 불가능한 나이인 것 같다.

말이 통할 것 같아서 더 화가 난다. 설명하면 이해할 것 같아서 기대했다가 더 좌절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그래서 아이에게 더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게 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더 미치게 만드는 건주변 엄마들의 육아 간섭과 내로남불이다.

해외에 살다 보니 한인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좁다.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되고, 아이 단속도 더 엄격해진다. 하지만 말레이시 아는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육아관이 전혀 맞지 않는 엄마들의 말과 간섭이 이미 바닥난 내 인내심을 더 갉아먹는다.


다음 글에서 이 내로남불과 육아간섭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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