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하는 나의 문제인가 간섭하는 그들의 문제인가?
살아오면서 나의 인성이 이렇게 바닥이었나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바로 이곳에서 산 지 2년 만에 내가 그렇게 되었다.
이곳의 특수성 때문인지,
모든 해외살이 엄마들이 다 느끼는 공통점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인성이 바닥을 치게 만드는 데 가장 큰 몫을 하는 두 가지 중 하나는 다른 아이 엄마들의 내로남불과 육아 간섭이다.
나는 내 아이를 꽤 잘 안다고 생각하고 이곳에 왔다.
그러다 큰코다치는 생활을 약 1년 정도 하며, 우리 아이가 떼를 쓰거나 말대꾸를 하거나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우리 아이는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더욱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엄마인 나에게 말대꾸를 하거나 떼를 부리곤 한다.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아, 내가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라고 느끼는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아이를 엄하게 다그치거나
화를 내는 것을 자제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엄마는 밖이라고 해서 화를 안 내지 않아.”“엄마는 다른 사람이 있다고 해서 안 혼내지 않아.”
물론 나의 인성은 이미 바닥이 나 있는 상태라 적당히 화를 내거나 적당히 혼내지 않고,
타인이 보기에 굉장히 심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이 정도 강도로만 제지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는 오히려 ‘우리 엄마는 이 정도만 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약 2년간 아이와 부딪히며, 이 정도 강도로만 화를 내야 비로소 아이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이겨내며 아이를 혼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육아 간섭과 내로남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이번에도 소소하게 예를 들자면 이렇다.
1. “케빈 엄마, 그렇게 하면 애가 나중에 엄마 싫어해”
우리 아이가 친구와 함께 노는 상황에서 순서를 지키지 않아 친구와의 다툼이 생겼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너와 놀고 싶어 하지 않아.”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집에 갈 거야.”
그러자 돌아오는 소리는 이거였다.
“케빈 엄마, 그렇게 공개적으로 아이를 창피하게 만들면 아이 나중에 커서 엄마 원망하고,
엄마랑 사이가 나빠져.”
나는 우리 아이를 안다.
아이를 다른 공간으로 데려가 훈육할 수도 있지만, 그 자리를 이탈하는 순간 아이는 본인이 왜 혼나는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것처럼 그 장소, 그 순간에 아이의 잘못이나 규칙을 알려주어야 아이는 받아들인다.
2.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속상하지? 이모한테 말해”
아이를 훈육하는 과정에 다른 이가 있다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엄마의 훈육을 안 보이는 척, 안 들리는 척하며 관여하지 않는 것이 국룰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장난감을 두고 다툼이 생겼다.
이전에 우리 집에 아이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장난감으로 다툼이 있었다.
전부터 나는 다음에 네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가 장난감을 나누어주지 않아도 네가 우리 집에서 함께 가지고 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생기면 너는 할 말이 없는 거라고 수도 없이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불러
이 상황이 그때의 상황이고, 네가 먼저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가 같이 가지고 놀지 않겠다고 하면 너는 놀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더 이상 떼를 쓰거나 다툼이 생기면 우리는 바로 집으로 갈 거야.”
그 과정에서 아이 친구 엄마가 시무룩해 있는 우리 아이를 불러 말했다.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속상하지?”
“이모한테 말해.” “앞으로 이모가 해결해 줄게.”
그날 이후 우리 아이는 말한다.
“엄마는 말이 안 통해.”
3.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냥 좋게 말해”
아이가 내가 잠시 물건을 구입하는 사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안전에 관해서는 타협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아이에게 크게 화를 냈다.
“엄마는 안전에 관해서는 절대 타협이 없어.”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엄마는 너를 데리고 밖에 나오지 않을 거야.”
“앞으로 물건을 사러 올 때는 엄마 혼자만 올 거야.”
이를 듣고 있던 다른 엄마가 말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냥 좋게 말하지, 뭐 그렇게까지 화를 내.”
나의 경험상,
이런 말을 하는 엄마들은 대체로 아이가 하나이고, 엄마가 한 번 이야기하면 다음부터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얌전한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는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높은 담벼락, 놀이터 꼭대기 등 위험한 곳에서 수도 없이 장난을 친다.
그때마다 좋게 타일러도 보고, 알아듣게 설명도 해보고,“네가 다치면 엄마는 너무 속상해”라며
감정에 호소도 해봤다.
하지만 아이가 다치기 전에 그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내가 화를 내는 것이었다.
나도 안다.
아이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는 면도 있고, 사소한 일로 아이를 다그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고쳐야 할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아이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위의 예를 든 육아 간섭을 하는 엄마들은 대체로 내로남불도 함께 시전 한다.
한 번은 우리 아이가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친구의 얼굴을 가방으로 치게 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즉시 사과시키고, 장난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대로 벌어졌을 때, 그 엄마는 사과하지 않고
“장난친 거야”라며 “친구끼리는 이해하고 놀아야지”라고 말했다.
또한 아이에게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 내로남불 엄마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아이의 안전에 관련된 상황일 때는 체면을 불구하고 버럭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훈육한다.
아이의 체면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고, 본인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모든 행동을
제지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가 소리를 치거나,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보이거나, 타인 앞에서 훈육을 하면
내로남불 엄마들은 앞서 말한 1번이나 3번을 다시 시전 한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그 엄마도 싫어지고, 그 집 아이도 싫어지고,
그 집 아이가 우리 아이와 노는 것도 싫어지며,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스스로를 사람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
결혼 전, 출산 전 나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출산 후 아이를 키워보니 다른 아이들까지도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졌었다.
지금은 우리 아이가 떼쓰는 소리도 싫지만,
다른 아이의 떼쓰는 소리, 우는 소리는 정말 더 듣기 싫다.
내 인성이 점점 바닥을 치는 이유는 결국 스스로의 여유 없음과 육아 간섭의 콜라보인 것이다.
정말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내가 싫어서 남 탓을 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