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는 그들에게
여기서 지내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선’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거다.
외국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살고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나의 정보일 뿐일 텐데,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걸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혼자다.
외롭겠다.
그러니까 쉽게 다가가도 되는 사람일 거다.
그런 식의 단순한 공식.
처음에는 내가 예민한 건가 싶었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걸까,
내가 오해한 걸까,
괜히 혼자 의미를 크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그런데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기 시작하면서
이건 개인의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아이 축구 코치는 어느 날 자연스럽게
같이 밥을 먹자고 했고,
그다음에는 ‘데이트’라는 단어까지 꺼냈다.
순간 당황했지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종류의 말은 아니었다.
나는 분명하게 거절했다.
선을 넘는다고 느꼈으니까.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의외로 가벼웠다.
“아, 그냥 장난이에요.”
“그런 뜻 아니었어요.”
그 말이 더 불편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정리되어 버리고,
나는 괜히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으니까.
추후에 다른 엄마들에게 듣기론 그 코치는
한국엄마들에게 추근덕 대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어쩌면 더 조심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쉽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 친구 아빠 둘은
커피를 마시자, 밥을 먹자며 계속 말을 걸어왔고,
대화의 분위기는 점점 불편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그때도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말은 비슷했다.
“오해하신 거예요.”
“그냥 편하게 얘기한 건데요.”
그 말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이 정도는 그냥 넘겨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다.
선을 넘은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었다.
외국인들도 비슷했다.
헬스장에서,
아이 학교 주변에서,
혹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도
가볍게 말을 걸다가
어느 순간 선을 넘는 질문이나 제안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혼자야?”
“남편은 한국에 있어?”
“그럼 더 외롭겠네.”
그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굳이 듣지 않아도 예상이 갔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건 비슷했다.
아, 또 같은 흐름이구나.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고,
그다음에는 당황스러웠고,
이제는 조금 씁쓸하다.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내가 책임지고 있는 일상인데
그게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접근해도 되는 이유처럼 보인다는 게.
여기에는 나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많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가끔은
‘혼자 있는 여자’라는 프레임이
생각보다 쉽게 소비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외로울 거라는 전제,
누군가를 필요로 할 거라는 착각,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도 된다는 태도.
그게 가장 불편하다.
나는 혼자일 수는 있다.
하지만 약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내가 지키고 싶은 선이 있다.
그 선은
누군가의 해석이나 기분에 따라 바뀌는 게 아니라,
내가 정하는 거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한다.
꺼지라고.
늘 행복하지만은 해외살이가 조금은 버겁게도
느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