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향 Galadriel Jul 28. 2023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될까?

손바닥으로 가린 하늘



어디서 꺼낸 거니? 

나를 바라보는 그윽한 눈동자, 반듯한 귀와 멋진 코, 볼수록 너무 잘 생긴 네가 내 딸을 공격했어. 커다란 포도알이 목구멍에 걸렸을 때야. 꼼짝도 못 하고 서 있는 내 뒷모습을 보고 기도가 막힌 걸 감지한 내 딸이 달려와 힘차게 등을 두드렸지. 그 장면을 본 네가 10미터도 넘는 거리를  단숨에 날아와  물어버렸어. 내 딸이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알았던 거야. 그때 넌 태어난 지 11개월밖에 안된 아기였어. 도대체 어디에 그런 용기와 순발력을  숨겨 둔 거니?


듣고 있지 리오? 

그날 이후, 그 누구도 내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었어. 손가락은 고사하고 내 옆에 앉거나 가까이 다가서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지. 같이 산책을 할 땐,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기만 하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댔어. 덩치 가 산만한 남자도, 세상 겁나는 줄 모르는 십 대 청소년 무리도 컹컹 지어 쫓아버렸지. 대형 견종들이 맘만 먹으면 한 줌 거리도 안 되는 너였지만 넌 그들 앞에서도 꼬리를 내리지 않았어. 까짓 밥 한 그릇 먹여준 주인에게 목숨을 바치겠다는 너. 사람들은 너 같은 종족을 두고 "사람보다 낫다'라고 해.


그런가 하면"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욕할 때도 있지. 물론 너처럼 충성스러운 종족을 두고 한말은 아니야. 사람으로 태어나 지켜야 할 도리나 행동을 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일 뿐이지. 가난하지만 정성껏 차린 밥상으로 '힘내보자' 응원하고, 생명이 위태로울 때 지켜준 사람을 배신하는 등, 그야말로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인간을 일컫는 말이지. 


그런데 말이야, 누구는 너와 같은 종족에게 "단테"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詩聖)이라 일컬어지는 그 단테 말이야. 많은 이들이 읽으려고 사지만 책꽂이에 모셔놓는 책"신곡"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 그 위대한 이름을 살아서 죽은 자들의 세계를 여행한 개에게 붙였더군. 살아있는 몸으로 죽음 너머의 세계를 다녀왔다는 오디세우스나 아이네아스, 단테 같은 분들이야 워낙 대단한 분들이시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시성( 詩聖)도 인간(人間)도 아닌 멕시코의 흔한 견종인 솔로이츠쿠틀레가 다녀왔단 말이지. 그러니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름 '단테'를 개에게 붙여 주었다고 왈가왈부는 말자고. 



개의 몸으로 저승을 다녀온 단테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코코"의 주인공 미구엘의 단짝 친구야. 미구엘의 영혼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귀엽고 충직한 개지. "코코"를 보게 된 이유도 바로 이 귀여운 친구 '단테' 때문이야. 너도 알다시피 요즘 내가 단테 알리기에리 선생님과 독대(獨對) 중이잖아. 그러다 보니 단테라는 개가 등장한다는 예고편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고 말았지. 단테에 홀려 들어갔지만 사실 큰 기대는 없었어. 영화 초반부에서 음악을 하기 위해 가족을 버렸다는 고조부가 등장하는 순간, 귀여운 단테와 함께 나는 미구엘의 수호천사를 자처하고 말았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족을 버린 남자를 나도 한 명 알고 있거든. 원래 인간이란 좋아하는 사람이 같을 때보다 공동의 적을 가질 때 더 빨리 결속하게 돼 있으니 그 원리가 작동한 거야. 


앞에서 말했듯이 단테에게 홀려서 본 영화 "코코"의 주인공은 12살 멕시코 소년 미구엘 리베라야. 그의 고조할아버지가 음악가가 되려는 자신의 꿈을 좇아 가족을 떠난 이후 "음악은 절대 하지 말라"는 음악 금지령이 내린 집안에서 자랐지. 기타 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미구엘은 그의 우상이며 고조부인 '에르네스토 데 라 크루즈'처럼 뛰어난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야.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그의 개 단테와 함께 불가사의 한 사건이 발생하며 망자의 땅, 그러니까 죽은 자들의 땅에 발을 들이게 돼. 12살 어린 미구엘이 갖은 고생 끝에 자신의 가족사에 얽힌 진실을 밝혀내는 명작이야. 스크린 앞에 바친 105분의 시간이 절대로 아깝지 않은 영화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영화나 소설의 묘미는 반전이잖아? 너도 눈치를 챘겠지만 그의 우상이며 고조부라 믿었던 '에르네스토 데 라 크루즈'는 진짜 고조부가 아니야. 데라 크루즈는 음악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겠다는 헥토르의 곡"remember me"를 가로채기 위해 친구인 헥토르를 독살해 버려. "리멤버 미"는 헥토르가 어린 딸 코코에게 밤마다 불러주고 함께 부르던 곡이었어. 헥토르가 진짜 고조부였던 거지. 리멤버 미 그러니까 "날 기억해 줘"는 코코와 헥토르를 이어주고 가족을 이어주는 소중한 노래였던 거야. 그런 곡을 훔쳐 대스타가 되고 부귀영화를 누린 데 라 크루즈는 "기회는 반드시 잡아라"가 좌우명이었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마" 하던 그는 잘못된 좌우명을 따라 지옥으로 떨어지지.


리오!

미구엘과 함께 죽은 자들의 세계를 다녀온 개 단테처럼, 넌 죽음 이후의 세계에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없니? 너처럼 충성스러운 생명체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겠지만 지옥이 궁금했던 적 없어? 가본 적 없는, 막연하고 희미하기만 했던 지옥을 선명하고 체계적인 건축물처럼 서술한 "신곡"에서 지옥은 모두 9층으로 지어져 있어. 1층부터 9층까지 단면이 원형으로 지어진 그곳은 죄의 경중에 따라 처해지는 층수가 달라지지. 1층엔 가장 가벼운 죄를 지은자들이 들어가. 죄가 무거워질수록 아래층으로 내려가는데, 9층은 가장 큰 죄를 지은자들이 들어가지. 9층은 다시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제1 구역은 가족과 친족들을 배반한 자들이 가는 곳으로 죄인들은 어깨까지 차는 얼음 속에 갇혀있지. 제2 구역은 조국이나 단체를 배반한 자들이 가는 곳으로 목까지 차는 얼음 속에 갇혀있고 제3 구역은 손님을 배신한 자들이 가는 곳으로 얼굴 외엔 모두 얼음 속에 갇혀있어. 마지막 제4 구역은 지옥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곳으로 은인을 배신한 자, 그러니까 배은 망덕한 (背恩忘德)한 자들이 가는 곳이야. 이곳에서는 온몸이 얼음 속에 처박혀 고통을 받지. 그 얼음 구덩이에 악마의 왕이라 불이는 머리가 세 개인 루시퍼가 살아. 세 개의 입에 세명의 배신자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고 있는...   

 

이런 단테 선생님을 따라가다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기회를 잡아라"했던 배신자 데라 크루즈는 지옥의 맨 아래 9층에 있는 것이 확실하지. 그렇다면 폐결핵으로 고생하던 남편을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건강을 찾아준 아내, 원하던 박사학위증을 쥐어주기 위해 자신의 등판을 내어준 아내를 배신한 남자는 어디로 가는 거니?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는 조강지처(糟糠之妻 )는 자신의 이력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였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지워야 했고 지워졌다 생각하는 치졸한 배신자 말이야. 


젊은 여자로 화장을 하고 돈 냄새를 풍기면 못난 얼굴과 악취는 덮을 수 있다 생각했겠지.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고, 돼지 목걸이에 진주목걸이 걸어봤자 돼지 아닌 그 무엇도 될 수 없단 걸 그는 몰랐겠지. 그렇지만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뒷모습을 그렇게 그리지 말았어야 했어. 너무 비겁했고, 이보다 더 할수 있을까 싶을만큼 악랄했어. 몇 달을 집을 나가 살며 이혼을 종용하던 남편이었지만 "한때 바람이려니"하며 가정을 지키고 싶었던 아내를 무참히 짓밟아버린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표본이었지. 말없이 기다리던 아내와 오랜만에 딸의 집을 방문한 장모에게까지 휘두른 폭력과 폭언........ 너라면 용서가 되겠니? 아무리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이해해 보려 해도 자신의 부모가 당하는 모욕과 폭력은 참을 수도 참아서도 안 되는 거였어. 그래서 이혼을 결정했지. 이혼을 하고 양육비 한 푼 보내지 않은 건 물론, 아무도 모르게 행사한 폭력을 감추기 위해 저지른 가스라이팅은 자식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어. 자신이 저지른 악행은 자신과, 자식들을 위해 침묵하고 살아온 아내만이 안다고 생각하겠지. 손바닥 하나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