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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향 Galadriel Jul 09. 2024

방화범을 찾습니다(1-2)

라면 같은 남자

방탄복을 입고 왔더군. 얇고 투명한 비닐로 한번, 올록볼록 에어버블랩으로 또 한 번, 그 위에 넓적한 투명박스 테이프로 단단하게 동여 멘 우체국규격봉투를 입고 왔어. 먼지 한 톨 묻어있지 않았지. 보랏빛 은은한 책을 가만가만 만져보았어. 왼손으로 받쳐 들고 오른쪽 손바닥으로 만져 보았어. 


걸어 놓고 싶을 만큼 예쁜 표지그림은 낯설지 않았어. 오른쪽 중간에 하얀 글씨로 새긴 책제목 [영화처럼 산다면 야]. 그 밑에 나란히 앉은 이름, 동선과 이연. 저자 이름을 오른쪽 검지로 천천히 쓸어 주고 서둘러 책장을 넘겼어. 책장을 넘길 땐 외출준비를 하던 중이었어. 추천사만 읽고 나갈 참이었지.  약속시간에 늦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선채 몇 꼭지를 읽었어. 그러다, 늦은 약속에 미소로 기다려주신 마음을 갚으려고 밥과 커피를 쏘았어. 그러고도 자꾸만 쏘고 싶은 심장이 벌렁거렸어. 


리오!

휴가철이라 모두들 어딘가로 떠나고, 또 떠날 계획이라고들 전해와. 모두가 떠난다지만 떠날 곳 없는 나는 영화 속으로 여행을 떠나. 너도 알다시피 내게 있어 최고의 휴식은 영화감상이잖아. 예전엔 책 읽기가 최고의 휴식이요, 가장 경제적인 여가활동이었어.  언제부터인가 최고의 휴식과 여가생활은 영화감상이 되어버렸지. 타국에서 책을 구입하기란 얼마나 번거로운지. 거기다 얼마나 비싸기까지 한지... 여하간,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누군가 나에게 '당신이 꼽는 최고의 영화는?'하고 물어온다면 그 누군가에게 나는 되묻게 될 거야. '질문을 거두심이 어떠하올런지요?' 하고. 십 년을 고민해도 고를 수 없는, 너무 많은 '최고의 영화'고르기는 나에게 고문이기 때문이야. 어디 고문당하는 사람이 나뿐이겠니?  어눌한 말로 쏟아낼 영화제목과 주인공... 흐려져 가는 기억을 가져오느라 연발할'그 있잖아'와 '유명한 배운데 생각이 안 나네'를 거듭 들어야 하는 질문자의 고통을 내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니.


그러니, 그런 물음을 가진 누군가를 안다면 전해 주겠니?  또 혹시 시간이 나면, 내가 십 년이 걸려도 대답하지 못할 영화의 대부분이 여기 다 들어있다고 말해 주겠니? 정리 안된 말로 토해낼 최고의 영화와 '그 있잖아'와 그 배우가 여기에 다 나온다고. 사실, 영화보다는 영화를 빌미로 자신들의 심지에 시선을 맞춘.... 그래서 보고도 보지 못한 장면을 다시 보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는 두 사람의 찰진 수다. 화려하지도 시끄럽지도, 그렇다고 모자라거나  넘치지 지도 않는...... 


추천사를 쓰신 김진해작가는, 자신은 아무것도 넘어가지 못한 사람이라 하셨어. 암을 넘어간 (지금도 넘어가는 중이지만) 저자 이연과 시간을 넘어간 이민자 동선의 '사소한 것들을 남다르게 보는 눈'과 '거창한 이론'에 기대지 않은 두 작가의 삶에 밑줄을 그으셨지. 그러고는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가진 가장 인간적인 능력이 타인과 함께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능력'이라고 하더군요"라며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시작한다는 건 새로운 일일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선을 갖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하셨지.


새로운 시선을 갖는 일. "작정했으면 딛지 못했을 이 땅, 못 내렸을 뿌리. 계획도 뭣도 없이 떠밀려 와 보니 이 자리."라는 저자 이연의 여리고 아픈 눈동자를 보았어.  글 쓰는 일이 "그냥 징징대면서 나 하나 위로하는 것 외에 도무지 무슨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는 동선님의 프롤로그 끄트머리, "우리 지금, 잘하고 있는 거 맞나요?"하고 커다란 물음표를 달았더군. 꼭꼭 씹어 두 번 읽은 내가 답했어. '네, 잘하고 있어요. 아주 잘...' 그리고, 나는 내게 물었어.'넌 잘하고 있니?'  


리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친구나 가족, 배우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걸음 더 멀리, 컴퓨터 속 활자로 만난 타인을 우리는 얼마만큼 알 수 있을까? 

벼룩시장에서 산 다이버 나이프(자진이나 다른 생명을 해할 용도가 아닌)를 품고, 죽자고 올랐던 지리산에서 살아나 라면을 먹는 남자. 그 남자의 심정을 짐작이나 하는 걸까? 그 흔한 음식을 마주하고 "라면처럼 썩지 않고 나대지 않고 조용하고 겸손하게 살겠다"다짐하는 저자 동선. "단지 찌르고 베기 위해 태어난, 용도가 단 하나뿐인 단검을 보고 있으면 인간 역시 그렇게 담백하게, 잔머리 굴리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는 저자. 그는 자신의 다짐과 반성대로 단검이고 라면이었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보여주는. 단검처럼 예리하고, 신라면 국물처럼 매콤하고 따뜻한 저자. 그 삶의 궤적속에서 조금, 아주조금은 알수 있었어.    


새벽 6시에 가게에 나가시는 엄마에게 4시에 일어나 김밥 싸 달라는 엄두가 나지 않아 소풍에도 김밥을 싸간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저자의 각자말이 김밥은 먹어보지 않고도 따뜻했어. 혼자 들어야 하는 밥상의 무게를 그것은 그저, 전통일 뿐이라 하는 자들에게  곤장형을 언도하는 목소리는 매콤하지만 달콤했어. 어쩐지, 튼튼하고 미끈한 곤장을 보내줘야 할 것 같은 부채감을 갖게 하는 사람. 다른 건 몰라도 마음의 온도가 180도라는 건 알 수 있었어. 언젠가 아프다는 내 글 밑에 "십전대보탕이라도 가져갈까요?"라고 달아준 그의 마음이 180도였거든. 튀김을 할 때 밀가루 반죽이 금세 떠오르는 온도. 지금도 둥 하고 떠오르게 하는........ 그렇게 떠오르는 나에게 저자 이연은 짧고 묵직한 목소리로 속삭여. "그렇게 떠 올랐으면 이제, 나랑 같이 혼자 걷자". 


(1-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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