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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은 9시인데, 왜 나는 새벽 5시에 깨는가

통제는 작은 습관으로 위장된다.

by 오병도

회사의 공식 출근 시간은 9시다.

그런데 우리 팀은 항상 10분 전에 미팅룸으로 출근하는 게 '사실상 규칙'처럼 굳어져 있다.


이 강제 조기 출근의 논리는 이렇다.

"연말부터 실적을 쪼이면 채우기 어려우니, 연초부터 좀 쪼이면서 가야 연말에 실적을 맞출 수 있어요"

그래서 공식 출근 시간보다 10분을 당기자고 했다.

처음엔 10분이야 싶었지만 그 10분은 업무 시작을 앞당긴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없애는 역할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자율좌석제'를 운영 중인데 우리 팀만의 룰이 있다.

매일 새벽 5시에 리셋되는 시스템 시간에 맞춰 무조건 팀장 근처로 예약해야 한다.

운 좋게 예약에 성공하면 별일 없이 지나가지만,

놓치기라도 하면 "왜 오늘은 근처에 자리를 안 잡았냐"라는 말을 듣는다.


말로는 '자율'인데 행동은 '지시'다.

'자율좌석제'는 결국 우리 팀 안에서 '지정좌석제'가 됐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도, 앉는 자리도, 출근 시간도

정해진 규정보다 앞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

그 안에서 우리는 조용히 피로를 축적한다.


처음엔 "이 정도쯤이야 감수해야지"라고 넘기지만,

그 사소한 강요들이 쌓이면 결국 자율은 사라지고

일보다 눈치 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췄다.

출근은 9시인데 말이다.




조직은 자율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작은 방식으로 사람을 통제하기도 한다.

10분 빠른 출근, 특정 자리 예약과 같은 사소한 규칙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실적은 수치로 남지만 감정의 피로는 기록되지 않는다.

그리고 조직은 종종 그 피로를 너무 쉽게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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