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by 늘보

우리 집 베란다 밖에는 꽤 오래된 감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가을이면 주황색 대봉이 무척이나 탐스럽게 열린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지만, 굳이 따지 않는다. 그 빛깔이 고와 두고 보는 맛도 있지만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학창 시절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접했을 때 ‘까치밥’이라는 표현을 처음 알았다. 먹을 것이 귀했을 시절이었음에도 겨울에 배곯을 까치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꼭대기에 감을 남겨둔다는 것이었다. 그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때 기억 때문인지 창밖의 감은 내 몫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겨울의 초입, 찬 바람이 휘몰고 지난 자리에 먹을 것이 궁해졌을 새들이 감을 쪼며 허기를 달랜다. 맛집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꽤 많은 수의 새들이 다녀간다. 새들은 제 먹을 만큼 먹고 나면 다음 새를 위해 남겨두고 미련 없이 자리를 뜬다. 결코 필요이상의 것을 욕심내어 움켜쥐는 일이 없다. 소파에 앉은 나는 귀여운 새들의 식사시간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먹거리가 많은 내가 굳이 따먹지 않으니, 나와 여러 새들에게 모두 즐거움을 준다. 저 감의 '쓸모'는 나에게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 어릴 적 한복이나 물품들처럼 한 때 잘 사용하였으나 나에게서는 ‘쓸모’가 다 한 것들이 있다. 소중한 추억들이 묻어있어 버리기 아까운 것들을 욕심껏 집안 어딘가 꾸역꾸역 모아두다 보니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물건들도 빛을 잃어간다. 그럴 때 아직 쓸만한 것들을 모아 중고 거래 플랫폼에 내놓으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나 역시 그곳에서 다른 이들에게는 가치를 잃었지만,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을 구매한다. 이렇게 새 주인을 만난 물건들은 다시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의 ‘쓸모’는 제 주인을 만났을 때 가장 크게 빛난다. 내가 소유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곳에서 더 가치 있게 쓰이는 것이 나의 마음을 더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물건을 소유하기보다 덜어내면서 혹시 오늘 나의 욕심으로 더욱 가치 있게 사용될 것의 빛을 내가 스러지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본다.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더 큰 마음의 풍요가 찾아온다. 창밖에서 만찬을 즐기는 귀여운 새들을 보는 재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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