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실종 사건

영원히 견딜 수 있는 것은 없다

by 인해 한광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모르고 있진 않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돌아가는 법인가 보다. 한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어르신의 돌아가시는 뒤안길을 뵈러 갔다가 내 발바닥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돌아가신 건 내 신발 바닥이었지만.


태생적으로 무엇을 아끼거나, 귀한 것을 추구하는 성격은 아니다. 편리성을 좇는 편이라 막다루기 편하고, 아무 데나 두고 오래도록 잊어도 그만인 것들을 추구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것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줄곧 그것만을 사용하여 금세 닳아빠지거나, 망가지거나 훼손시키곤 한다. 말하자면 무엇을 귀히 여겨 아껴 두고 잘 보관하는 그런 성격은 절대 아닌 것이다.


이번에 새로 꺼내 신은 구두가 그랬다. 4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산책을 다녀오다가 백화점 앞에 펼쳐진 번개시장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제법 코가 번들거리는 구두가 있어 청바지든 정장이든 무난할 것 같아 별생각 없이 사들고 들어왔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아내가 내게 불쑥 캐주얼 신발 한 켤레를 내밀었다. 아내가 내민 물건도 백화점 앞에서 생각했던, 청바지든 정장이든 무난할 것 같은 바로 그런 물건이었다. 오히려 더욱 적절한 물건이었다. 그 물건은 다음 날부터 나의 일상화가 되고 말았다. 반면 내 손으로 들여온 구두는 듬성듬성 공식적인 자리에 나아갈 때나 다른 구두 여러 켤레 중 하나로 가끔 선택되곤 할 뿐이었다. 별 문제 될 상황만 아니면, 그와 비슷한 자리마저도 아내의 캐주얼화가 발에 꿰이곤 했다.


코로나19가 장장 3년이란 세월 동안 세상을 뒤덮은 까닭에 예식장이든 장례식장이든 구두를 신을 일은 거의 없었다. 방역 당국의 거리두기 지침과 권고를 준수하는 것이 오히려 예의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부터 코로나 엔데믹이 거론되더니, 축구장과 야구장은 물론 공연장과 극장까지 열리기 시작했다. 예식장과 장례식장으로도 구둣발들이 다시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안타까운 마음만 전하는 것이 비례(非禮)가 아닌 때였지만, 동료 부친의 이번 장례식은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이 많이 개선된 상황인 데다가 직장의 대표된 입장의 두 사람으로서, 동행과 나는 마땅히 발걸음을 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다.


장례식장에 ktx 열차를 타고 가서 택시로 이동하여 도착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망자에게 예를 표한 후, 망자께서 산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차려주신 음식을 들며, 상주들과 이런저런 얘기로 애도를 표했다. 고령의 망자 시라지만 상주들의 마음은 시리기만 한가 보았다. 고령의 망자를 모시는 상주들에게 호상 운운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상주들을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일찍 돌아가신 자신의 부모님 생각에 무심코 드러내는 문상객의 부러움의 표현인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상주인 동료의 측은한 눈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걸음을 내디뎌 가지런히 정리된 신발에 발을 꿰었다. 구두를 신고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구두 밑에 시커먼 발자국이 드러났다. 내 신발 아래에 생긴 자국이라 심히 궁금했지만, 뒤따라 나오는 상주에게 걸리적거릴 것 같아 그냥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내 발걸음이 깔끔하게 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남몰래 발바닥을 슬그머니 기울여 내려다보곤 아무도 몰래 홀로 경악했다. 구두의 발바닥이 뭉개지고 있던 중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얼굴이 뜨거웠다. 동행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여 겨우 장례식장을 빠져나왔고, 내 발바닥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택시를 잡아 타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택시 안에서 또한 아무도 몰래 혼자 기겁을 해야 했다. 택시 바닥에 구두 앞 바닥 부분이 완벽하게 떨어져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택시에서 내렸으나 신발가게는 눈에 띄지 않았고, ktx 출발 시간은 두 시간이나 남았다. 나는 어디에 앉아 있기도, 그렇다고 어딜 걷기도 마땅찮아, 동행의 찻집 제안에 흔쾌히 찬성했다. 동행은 아직도 내 찐득거리는 걸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찻집이 유명한 곳이었는지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으나 다행히 한 자리가 눈에 띄었다. 찻잔을 받아 놓고 나서 비로소 동행에 내 발바닥 실종 사건의 전모를 고백했다. 동행께선 배꼽이 빠져라 웃으셨다. 한참 웃고 나서 내 민망함을 덜어주려고 '폭신폭신한 신발이 오래되면 그렇게 되더라' 하며, 신발 모양은 멋지다는 둥의 칭찬 아닌 칭찬을 내밀었다. 찻집을 나가면서 이번엔 왼쪽 발바닥이 찻집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여길 들어올 때쯤 떨어져 나간 발바닥이리라. 결국 발바닥에 고무질이라곤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신발 가게가 있을까 하여 근처 백 년 시장이라는 델 들렀으나 별게 다 있는 시장통에 이상하게도 신발 가게만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온전히 신발 바닥을 잃어버린 채 ktx에 올랐고, 지하철을 타고 발바닥을 다른 승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고 서서 목적지 역까지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다행히 전화가 연결되어 아내가 급히 운전을 하고 마중 나와 발바닥이 모두 실종된 구두를 구출해 주었다. 아내는 몇 번 신지도 않은 새 신발이었잖느냐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으나, 새 거는 무슨? 오래되니 다 이렇게 뭉개지네. 남들은 아껴 뭐 된다던데, 이건 아낀 것도 아니 건만…. 실은 나도 따로 변명할 말이 없어 발바닥이 사라진 구두 바닥을 아내에게 들어 뵈었다. 아내가 잠시 웃으려는 건지 어쩌려는 건지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가자, 신발 하나 당장 새로 사자' 하며 시동을 켰다. 비로소 맘 편히 구두를 벗어 들고 이리저리 밑바닥을 살펴보았다. 오늘의 내 걸음을 참담하게 만든 신발의 실상은, 그러나 내 걸음보다도 더욱 참혹하여, '이 놈의 신발 때문에', 해놓곤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늦은 지하철에서 쏟아져 내린

늦은 발길들의 흐름이

서울역 지하도에서

떡바위를 만난 듯

잠시 고였다가

우회하며 풀어진다


사람들이 눈길을 쏘고 가는 곳에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든

노숙을 다 가리지 못한

구불텅 펼쳐진 박스가 보인다


노숙의 잠과 사람들의 발길은 서로 무심하다

에이, 쯧 하는 말 부스러기들이 이따금

잠 위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쯤은 박스로도 얼마든지 튕겨낼 수 있지만


엄마, 저 아저씨 발 나왔다, 춥겠다

아이가 떨구고 간 말에는

갑각류를 닮은 잠도

한 번쯤 꿈틀거린다


아이를 잡아끄는 엄마는

노숙의 잠이 불편하기만 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남몰래 울든 말든

박스 이불 한 채나 온전할 일이지


노숙의 발끝에 놓인 신발에

집히는 대로 지폐를 놓고

아주머니의 뾰족한 걸음이

아이의 종종걸음을 이끌고

노숙의 선잠에서 바쁘게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