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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해 한광일 Apr 16. 2024

아주 오만한 글, 명품학부모 안내서

3. 직박구리 관찰기

직박구리 관찰기


  TV 카메라가 비춘 곳은 나무숲이었다.

 화면 가득 아침 숲이 싱그럽다. 후각으로야 수풀의 향을 느낄 수 없는 노릇이지만, 수풀 새로 보이는 하늘도 맑고, 공기도 더없이 상쾌한데, 여기저기서 지저귀는 새소리도 맑고 투명하다.

새 한 마리가 풀숲에서 포르르 솟아오른다. 솟아오르는 작은 새의 날개가 숲 속에 비쳐 든 햇살을 토독톡톡 토막을 친다. 둥지의 둥근 가장자리에 앉은 새의 부리엔 작은 곤충이 물려 있다. 새가 둥지 속 노란 꽃 속으로 고개를 들이미는가 싶더니, 금방 다시 빼어 든다. 새의 부리에선 곤충이 사라져 있다. 새는 잠시의 머뭇거림을 박차고 다시 포르르 숲으로 사라진다.


  카메라가 새 둥지를 위에서 아래로 비추었다

  둥지엔 갓 깨어난 아기새들이 눈도 못 뜬 채 올망졸망 모여 있다. 깃털도 듬성듬성한, 말 그대로 애송이들이다. 그러다가 또 금세 어떤 기척을 느꼈는지  아기새들은 일제히 노란 부리를 꽃처럼 벌리고 아우성이다.  입이 어찌나 큰지 아기새들은 마치 입으로만 된 생물들 같다. 어미새가 날아왔고, 어미새의 부리엔 역시 곤충인 듯 보이는 먹이가 물려 있다. 작은 둥지에 피어난 노란 꽃들이 용을 쓰며 서로 먹이를 조른다. 그중 한 녀석이 어미에게서 먹이를 받아먹곤 순식간에 꿀꺽 삼켜버린다. 먹이가 사라지자 순간 신기하게도 꽃들이 한꺼번에 꽃잎을 다문다. 어미새는 다시 지체 없이 숲으로 사라진다. 어미새가 사라지자, 아기새들은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동그랗게 붙어 모여 서로 의지한 채 쥐 죽은 듯 조용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둥지는 다시 시끄러워지고 아기새들은 작은 둥지에서 기를 쓰고 또다시 노란 꽃을 피워댄다. 어미 직박구리가 벌레를 잡아 금세 돌아온 것이다.

사실 직박구리의 둥지는 조용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어미 직박구리가 정말 부지런히 둥지를 드나들며 아기새들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미새가 어찌나 열심히 둥지를 오가는지 저러다가 고 작은 날개가 남아날까 싶을 지경이다. 고생이 말이 아니다. 어미 새의 육아가 참으로 고되게 느껴진다.

  

  아기새들은 이제 제법 많이 자라 있었다

  며칠이나 지난 건지 모르겠지만 아기새들은 이제 제법 많이 자라 솜털을 벗고 다들 똘망똘망하다. 아기새들은 이제 둥지가 비좁아 서로 몸을 밀치며 자꾸만 꿈틀대며 부대끼곤 한다. 그러다가도 작은 기척에도 어미가 먹이를 물어온 걸 알곤 또 서로 높은 목청으로 재재거린다. 먹이를 먹이고 난 어미새는 또 이내 사라진다.

  카메라가 꺼졌다가 다시 켜진다. 다시 새 둥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한참이나 둥지가 조용하다. 이번엔 어미새가 한참이 지나도록 쉬 나타나지 않고 있다. 카메라가 조금 방향을 바꾼다. 의외로 어미새는 둥지 근처의 조금 떨어진 다른 가지 뒤에 숨은 듯 앉아 있다. 어미새는 그쯤 떨어져 앉아 둥지를 살피고 있을 뿐, 전처럼 부지런히 숲을 오가며 먹이를 물어 올 생각이 그다지 없는 것 같다. 그때 새끼들은 무슨 기척을 느꼈는지 갑자기 재재거린다. 눈치가 빤해 작은 기척에도 어미새가 근처에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하는가 보다. 먹이를 보채는 소리가 요란하다. 어미 직박구리는 그제야 숲으로 몸을 날린다..

  

  어미 직박구리는 자꾸만 뜸을 들였다

  한참만에 나타난 어미새의 부리엔 여지없이 벌레가 물려 있다. 단번에 둥지에 내려앉던 지난번과 달리 어미새는, 조금 떨어진 가지에 내려앉아 나뭇가지 위를 깡충깡충 뛰며 둥지로 다가간다. 직박구리 둥지는 전과 다름없이 난리법석이다. 경쟁적으로 먹이를 보채는 통에 둥지에서 밀려난 것일까, 아니면 먹이를 보채고자 둥지 위로 적극적으로 진출한 것일까? 아기 새 한 마리가 둥지 가장자리 위에까지 올라가 위태롭게 기우뚱거리는가 싶더니 균형을 잡느라 기를 쓰며 날개를 파득거린다. 먹이를 물려주곤 어미 직박구리는 곧장 숲으로 날아가지 않고 또 둥지에서 조금 떨어진 나뭇가지에 가서 슬쩍 날아가 앉는다. 어미새는 왜 태세를 바꾸었을까? 배고프다고 지저귀는 아기새들의 목소리를 듣고도 저리 뜸을 들이고 앉아 있다니.


  많이 자란 아기새들이 겨드랑이가 간지러운날갯죽지를 자꾸만 푸드덕거렸다

  다시 카메라가 꺼졌다가 켜진다. 이제 카메라는 어미새가 어디에 있는지 비추지 않는다. 아기새들은 옴치락 거리기도 힘든 둥지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더 편한 자세를 취하고자 서로 밀치며 경쟁 중이다. 아기새 한 마리가 둥지 가장자리로 밀려나 위태롭게 파득거리다가 겨우 다시 둥지로 비집고 들어간다. 아기새들이 갑자기 소란을 떠는가 싶더니 어미새가 휙 날아와 어느 입으로 먹이를 넣어주곤 다시 또 휙 날아가버린다. 어미새는 그 뒤로도 얼마간 돌아오지 않는다. 카메라가 비추진 않았지만 근처 어디엔가 조용히 숨은 듯 앉아 둥지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재재거리는가 싶더니 몸싸움이 일어난다

  아기새들이 다시 재재거리는가 싶더니 몸싸움이 일어난다. 좁디좁은 둥지 속에서의 공간 다툼이다. 한 마리가 결국 다시 둥지 가장자리 위로 밀려난다. 밀려난 아기 새가 둥지 가장자리에 겨우 균형을 잡고 서서 까딱거리며 둥지로 돌아갈 기회를 살핀다. 둥지 가장자리 위에 위태로이 서서 균형이 무너지려 할 때마다 날개를 퍼득거린다. 순간, 균형을 잃고 실족한 것인지, 아니면 과감하게 용기를 낸 것인지 아기새가 갑자기 둥지에서 '툭' 떨어지는 순간을 카메라가 놓치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아기새의 첫 비행이다

  새는 떨어지며 본능적으로 날개를 파드득거린다. 예기치 못한 아기새의 첫 비행이다. 첫 비행이라기엔 그저 풀숲에 툭 떨어진 것과 다름없는 너무도 형편없는 비행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아기새의 푸드덕거림이 포함된 첫 비행이다. 땅에 떨어진 아기새는 잔뜩 겁을 먹은 듯 보였지만, 이내 몸을 추스르고 한 걸 음 한 걸음 땅을 내디뎌 본다. 그것이 신호탄이었을까? 카메라는 다시 둥지를 비추었고, 한참을 망설이던 다른 아기새는  둥지에서 뛰어내렸다. 사뿐히 내려앉는 착륙, 둘째 번 새의 착지는 첫째 번 아기새보다 훨씬 새 다운 안착이다. 아기새 한 마리만 남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참을 홀로 망설인다. 하루가 더 지났지만 여전히  둥지에 남은 새는 혼자다. 그러다가 막내 새도 결국 둥지의 가장자리로 스스로 기어오른다. 둥지 가장자리에 올라서도 새는 한참 더 망설인다. 기우뚱거리다가 다시 균형을 찾는다. 그렇게 한참 더 앉아 있던 새가 갑자기 훌쩍 둥지에서 뛰어내린다.  날개를 푸드덕거린다. 새의 비행은 다른 형제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안정된 비행이다. 결국 마침내 둥지를 떠난 셋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꺼진다.


  어미새는 어디선가 다 지켜보고 있었을까?

  어미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 날개를 가지고 비행을 시작한 아기새들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었지 않았을까? 아기새들이 자신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을 지켜보며,  어미새는 홀가분하기도 했겠지만, 동시에 진하고 깊은 감동으로 아기새들을 응원하고 있었을 터이다. 물론 카메라가 어미새를 비추지 않아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너무 인간적인  상상일까? 그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어린 새 한 마리가 빛을 뚫고 날아올랐다

  카메라가 다시 켜졌을 땐, 각기 굵기가 조금씩 다른, 맑은 유리막대 같은 햇살 기둥들이 키 큰 나뭇가지 사이를 사선으로 비쳐 들고 있는 아침이다.  처음처럼 아침은 싱그럽고 맑다. 그때 새 한 마리가 푸드드득 날아오른. 카메라가 새를 쫓는다.  솟아오르는 새 한 마리가 카메라의 한가운데쯤에  잡힌다. 그렇게 새 한 마리가 카메라 한가운데 박힌 채 영상이 종료된다.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새는  어린 직박구리다. 둥지 속 직박구리 아기새 중 한 마리였지 싶다. TV카메라도 그걸 암시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직박구리 아기새가 참 기특도 했지만, 잠시 눈을 감고 어미새를 생각한다. TV카메라가 어미 직박구리에서 아기 직박구리에게 집중하고 있는 동안의, 어미새의 태도 변화를 생각한다. 지금 나는 어쩌면, 육아와 교육에 관한 직박구리 어미새의 연수를 받은 것인가? 방송이 끝나고 남은 커피잔을 기울이면서도 직박구리 어미새의 잔상이 아련하다.


  어머니 생각

  막 깨어난 핏덩이 같은 아기새가 예쁘고 귀엽게 자랄 때까지, 어미새는 그야말로 헌신적인 우리네 어머니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 어린 아기새들을 먹이고 키우느라 쉴 새 없이 날개를 혹사하는 모습이 육아에 지친 아기 엄마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직박구리 어미도 확실히 어머니 그 자체이지 않은가? 


  어미 직박구리의 분별심을 보았지 싶다

  아기새가 어느 정도 자라자 직박구리는 분별력을 보였다. 조금 억지스럽게 말하자면, 직박구리는 아기새들이 자라면서부터 어미새가 아니라 ‘학부모새’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다만 직박구리에겐 다닐 학교가 없으니 어미새는 선생님 노릇도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을 것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들 역시 교육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미 직박구리는 아기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방법이란 것은 바로 '결여'와 '결핍'이 아니었는가.  아기새들의 몸이 커졌음에도 먹이를 줄이고,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음에도 끝까지 '좁은 둥지'를 고수함으로써,  아기새들이 더 크게 목청을 돋우어 목청을 돋우어  먹이를 간구하게 하고, 부족한 먹이를 서로 받아먹겠다고 경쟁적으로 푸드덕거리게 하여 날개 죽지에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이었지 싶다. 결국  스스로 배고픔을 극복하고, 비좁은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찾아야 할 필요를 주는 것이었지 싶다.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미로서 아기들의 울부짖음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좁은 공간에서 버둥거리는 아기들이 애처로웠을 것이다. 

직박구리 어미새는 어미라는 본능의 육아자에서 사랑의 절제라는, 인내의 학부모 역할을 잘 수행해 냈다. 훌륭한 선생이다. 이로써 아기새들은 결국 숲 속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순전히 어미 직박구리의 학부모 노릇과 선생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낸 덕이다. 특히 ‘학부모로서의  안타까움’을 견딘 공(㓛)이다.


  새들의 비상(飛上)을 두고 오래도록 나 자신 적지 않은 오해가 있었음을 밝힌다. 그동안은 새들의 이소(離巢:자라서 둥지를 떠남)를, 아기새들이 성장함에 따라 미련 없이 과거의 둥지를 버리고, 미래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조류들의 위대한 본능의 소치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에는 새들의 날갯죽지 근육에, 어미새의 절제된 사랑과 인내의 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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